국제 일반 · 번역/서평

I 100년 전, 미국 노스 다코타에서 전미 최초의 공공 은행을 설립하다 I

사진=(1919년)「초당파 지도자 The Nonpartisan Leader」 9 미네아폴리스: 전미 초당파 리그, 위키 미디어 커먼즈/

포퓰리스트 초당파 세력 동맹 – 그들의 기관지는 「초당파 지도자 The Nonpartisan Leader」였다 –

은 100년 전에 미국 노스 다코타주에서 공공은행 설립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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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철/국제정치 대표작가

[역자의 글]

1

미국의 ‘공공 은행’ 역사에 관한 영문기사를 번역해 보았다.

글쓴이들의 정치적 좌표는 미국 민주당 내 급진 분파 정도 된다. 그러니까 버니 샌더스’ 꽈’다. 이들에겐 공화당이 ‘주적’이다. 미 연준 일당은 노동대중으로부터 그러라고 결코 허가받은 적이 없는데도 지들이 금리를 올리네, 마네 하면서 세계 경제의 주인 행세를 한다. 금리를 통해 경제를 파탄 낼 권능을 가진 자들…. 이들 권능이 지속하는 한 신자유주의, 부채 자본주의, 비정규직, 외국군 주둔 등등은 영원히 지속한다. 그들의 권능은 ‘지구평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들은 언젠가부터 ‘파생상품’이니 뭐니 하면서 글로벌 자본주의를 카지노 도박판으로 만들어 놓고 판돈을 불리다가 갈 데까지 가다가 급기야 2008년 막장에 이르러서는 ‘묻지마 대출’ 서브 프라임으로 ‘금융 위기’를 불러들인 장본인이다. 그리고 최고로 경악스러운 사실은 지들이 벌여 놓은 금융 위기의 확산을 막는다며 ‘양적 완화’를 통해 12.3조 달러를 찍어냈는데 . . . 글쎄 그 돈을 모두 지들 아가리 속에 다 털어 넣은 것이다. 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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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http://pubrecord.org/…/pentagon-papers-wall-street/index.php
Dec 10th, 2010
「The Wall Street Pentagon Papers: Biggest Scam In World History Exposed: Are The Federal Reserve’s Crimes Too Big To Comprehend?」
By David DeGr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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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조 달러 . . . . 12.3조 달러 . . . . 12.3조 달러 . . . . 12.3조 달러 . . . . 12.3조 달러 . . . . 12.3조 달러 . . . . .

좀처럼 믿기 힘든 ‘대담함’이다. 통이 커도 너무 크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12.3조’ 원’이 아니라 12.3조 ‘딸라’를 지들끼리 뿜빠이해서 나눠 가졌으니 말이다. 이게 도대체 얼마나 되는 액수인지 극빈자인 나는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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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008년 금융” 위기”야말로 이들에게는 진정 노나는 ‘38광땡’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 고통으로 죽어 나가는데 이 금융 외계인들만 유독 아늑하게 부를 축적하며 울트라 해피하게 살아가는 이 기막힌 현실 . . . .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뭐 다 아는 얘기지만 세상은 ‘금권 악마들의 성전’이다. 우리 모두는 피 흘리는 가련한 재물이고 . . . 아니라고 부정도 해보지만 하나둘 알게 되면 결국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뭐 어려운 정치경제 용어 쓸 것도 없다. 지구정치를 간단히 단 ‘한방’에 정의해 보자면…. 그건 그냥 ‘글로벌 조직 범죄단이 지구를 독사 이빨로 움켜쥐고 알 카포네처럼 다스리는 시실리(Sicily)’다. 전 지구의 시실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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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이 이런 곳이니 “너, 태어날래 말래?”라고 물어본다면 . . . 우리 중 거의 대다수는 아마도 ‘출생’을 거부했을 것이다. 세계는 언제나 시실리(혹은 시칠리아) 조폭 단원들로 득실거리며 활개 치는 약탈, 살상, 파괴공작에 여념이 없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국제정치를 연구한다는 것은 결국 이와 같은 글로벌 알 카포네 들이 벌이는 다양한 유형의 범죄를 재구성하고 해설하는 것에 불과하다. ‘국제정치학’은 그래서 ‘글로벌 범죄 연구학’과 일맥상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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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너무 길어지려고 한다. 장광설은 집어치우고 100년 전 미국 깡촌 변방 노스 다코타(North Dakoda)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번역]

/노스 다코타(North Dakota)의 급진적 역사가 오늘날의 공공은행운동(public banking movement)에 주는 소중한 교훈/

by 토마스 M. 한나 & 아담 심슨 (THOMAS M. HANNA AND ADAM SIMPSON)

2019년 7월 28일

 

1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전역에서는 ‘공공은행’을 위한 활발한 캠페인이 부상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7월 28일, 노스 다코타주 비스마르크(Bismarck) 에서는 특별한 은행이 처음 문을 열었다. 이 은행이 주 전체 주민들에 소유되는 공공은행이 아니었다면 은행 설립은 그다지 주목할 만한 사건이 아니어서 역사 속에 파묻혔을 것이다. 노스 다코타 은행은 이후 한 세기 동안 여전히 아메리카대륙에서 유일하게 공공 소유 은행으로 자리매김 해오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비록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 공공은행이 최근 미국령 사모아에 설립되었다).

활동가들은 노스 다코타 은행의 조직과 운영방식을 현재 대중과 철저히 괴리된 금융에 맞서 ‘민주적 통제’를 되찾을 수 있는 구체적 실례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후 위기’라든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주2) 이라든지 하는 수많은 시급한 문제도 함께 해결될 실마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노스 다코타 은행은 관심의 중심으로 떠올라 주목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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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 “뜨는 동네 — 밀려나는 원주민”으로 압축되는, 슬럼가가 고급 주거공간으로 변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 빈민가가 개발되면서 임대료 등이 치솟아 원주민은 주거권을 상실하고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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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공공은행은 월스트리트의 각종 금융 투기에 쓰일 자금을 지역 사회에서 추출해가는 행위를 허용치 않는다. 대신 지역 경제를 안정화하고 지역 공공사업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 지원하는 데 자금을 사용한다.

 

2

공공 금융 연구소(The Public Banking Institute) 의장인 엘런 브라운(Ellen Brown)*은 그녀의 신간 『공공 은행: 디지털 시대의 화폐 민주화 Banking on the People: Democratizing Money in the Digital Age』(2019년 6월 발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공은행 시스템은… 지속 불가능한 부채, 추가 과세 또는 환경 파괴 없이 대중의 요구와 경제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상품, 서비스 및 인프라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 전역의 사람들이 공공은행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우선으로 노스 다코타 은행(BND)을 설립할 당시에 다양한 농민들과 사회주의자 그리고 인민주의 정치세력이 타파하고자 했던 경제적 병폐들 ㅡ 기업 지배, 부채 부담으로 찌든 경제, 격차 일로의 불평등, 무능한 개혁가들, 매수된 정치인 등 ㅡ 을 고려해 본다면, 100년 전 그들 또한 우리가 지금 직면해 있는 신 “도금 시대(gilded age)”의 경제적 뒤틀림과 대단히 흡사한 상황에 부닥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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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미국 변방의 비교적 새로운 주인 노스 다코타 주는 기업 이익의 확고한 통제하에 있었다.

과중한 부채에 시달리는 소농들과 소상공인들이 더욱 넓은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주의 메이저 철도 회사들과 독점 곡물 회사들이 설정한 계약 조건에 긴박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두 종류 회사들은 모두 대규모 기업적 은행(big corporate banks)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특히 노스 다코타 주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철도회사들은 악의적인 세금 회피를 통해 주 정부가 절실히 필요로 했던 지역 개발 자금의 수입원을 약탈했다. 주 정부는 이러한 강력한 기업 이익 집단에 의해 무력하게 포획되어 있었으며 한동안 부패한 전직 철도 에이전트였던 알렉산더 맥켄지(Alexander McKenzie)와 그가 장악했던 공화당의 통제하에 놓여 있었다.

초기 활동가들은 규제 및 법적 조치를 통해 이러한 정치·경제적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본 파업’의 위협에 직면해 약화했다. 예를 들면, 기업 소유주들은 1891년 규제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침해한다고 여겨 곡물 저장소를 폐쇄하겠다고 위협했다.

궁극적으로 보면 당시 그들의 개혁 노력은 ‘핵심 문제’에 대한 답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것에 불과했다. 당시 대기업들은 경제적 조건과 관계를 규정짓고 명령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주 정부는 그에 맞서는 개혁 대안을 진척시킬만한 이렇다 할 ‘금융 수단’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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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15년에 전 사회주의 정당 조직자이자 아마(亞麻) 재배 농민이었던 아서 타운리(Arthur C. Townley)가 초정파 연맹(Nonpartisan League)을 설립해 노동임금 적정화, 주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누진소득세, 은행(제분소, 창고)에 대한 공공 소유, 보험 제도 구축 등 여러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는 기업의 경제 지배력을 완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농민들 사이에 광범위한 지지에 기반을 두어 초정파 연맹(Nonpartisan League) 후보들은 1916년과 1918년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승리를 거두며 노스 다코타의 주의회와 주지사직을 장악하게 되었다.

취임 후 그들은 그간 왜곡되었던 경제 지배를 해체하기 위해 급진적이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경제 안건들을 하나씩 실행하기 시작했다.

일단 개혁의 첫 과업으로 1919년 7월에 200만 달러 자본금을 기반으로 노스 다코타 은행이 설립되었다. 주와 지방 정부 차원에서 모든 자금이 이 은행에 예치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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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금융 패거리들은 이런 움직임을 수수방관하지 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스 다코타 주의 공채 불매 보이콧을 주도했다. 그러나 넉넉한 자금과 맹렬한 대중의 지원으로 노스 다코타 은행은 월스트리트의 초기 반격을 무사히 돌파할 수 있었다. 이후 초정파 연맹(Nonpartisan League)은 이들의 급작스러운 성공을 시기하는 [대기업 후원을 등에 업은 정당들의] 정치적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스 다코타 은행은 꿋꿋하게 살아남았고 결국 번창하기에 이르렀다.

초정파 연맹에 대한 반대자들은 대기업 후원 아래 ‘독립 유권자 협회(The Independent Voters Association)’를 결성하였고, 연맹의 개혁적 조치들을 고꾸라뜨리기에 혈안이 되었다. 이들은 1920년 선거 기간에 “이번 선거의 진짜 이슈는 어메리카니즘(Americanism)과 사회주의 사이의 대결이다”라고 선언하면서, 실험적 개혁을 좌초시키려 했다.

초정파 연맹 후보자들은 이 선거에서 패배해 하원 의회의 통제력을 상실했다. 주 의회에 새로 입성한 신참 의원들은 그간 시행되었던 초정파 연맹의 개혁 정책들을 훼손시키는 입법안을 통과시켰으며 1921년에는 급기야 린 프레지어(Lynn Frazier) 주지사를 소환해 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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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대불황 시기 동안 사멸해 가던 초정파 연맹의 정치적 자산은 다시 살아났고 그들은 오늘날까지 노스 다코타 주에서 공식적인 민주당 계열의 지부로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의 활동가들에게 던져 주는 교훈 또한 적지 않다.

즉, 일단 개혁 기관이 ‘제도적 성취’로 자리 잡게 되면, [대기업과 금권 과두의 이익이 아닌] 노동대중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노스 다코타 은행(과 이에 수반하는 공공 소유의 곡물 제분소와 곡물 창고)의 예에서 보듯이, 대중적인 성공을 지속하고 탄력적인 기관으로 자리 잡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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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서 1933년 사이에 노스 다코타 은행은 주에서 16,000명 이상의 농부들에게 거의 4천1백만 달러를 빌려주었고 특히 대공황 기간에는 국가적 경제 붕괴에 직면하여 노스 다코타 주가 지탱하고 빠르게 경제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이는 이후 70년가량의 시간적 격차를 두고 벌어진 2008년 써브 프라임 금융 위기로부터 공공은행이 주의 경제를 버팀목처럼 지켜주는 역할을 했던 것과 ‘유사한 성공’을 미리 보여주었다.

대공황 당시 전국의 교사들이 기본적으로 15%의 손실을 떠안고 상환되었던 약식 차용증서(IOU)로 급여를 받았던 반면에, 노스 다코다 은행은 주의 교사들에게 급여 전액을 지급할 수 있었다.

1940년대에 노스 다코다 은행은 대공황 동안 압류되었던 농지를 많은 경우에 그 원소유자인 경작 농민들이 되찾아 갈 수 있도록 되팔았다.

1945년에 은행은 수익 일부를 ‘노스 다코타의 일반 기금(North Dakota’s general fund)’으로 사회적 환원을 시작했다. 이 기금은 수십 년에 걸쳐 총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주 정부에 공급함으로써 다양한 공공 서비스 사업을 가능케 했다.

1967년에 은행은 최초로 연방 보험 학자금 대출을 개시했고 현재는 노스 다코타 주민 및 노스 다코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낮은 이자율은 물론이고 수수료가 없으며 대학 졸업 후 빚을 재설계하는 융자 옵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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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늘날 노스 다코타 은행은 최초 설립 당시 초당파 연맹의 기획자들이 염두에 두었던 ‘사회주의적 엔진’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민간 부문의 은행들과 경쟁하거나 그들을 대신하기보다는 그들과 협력하여 은행이 운영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말이다. 그런데도 1960년대 민주당 초당파 연맹 소속 윌리엄 가이(William Guy) 주지사는 이 은행의 역할을 공익이라는 원칙에 따라 “경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엔진”이라고 옹호했다.

작년 2018년에 노스 다코타 은행은 총 1억7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으며, 총 70억 달러의 자산과 45억 달러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노스 다코타 은행의 기록이 대단히 인상적이지만, 우리가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공공 기관으로서 이 은행은 노스 다코타 주가 지난 100년 동안 심대한 변화를 겪어 지금 현재는 정치적으로는 공화당의 지배를 받고 경제적으로는 석유, 가스 기업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공공은행 또한 노스 다코타 주에 존재하는 다른 민주주의 기관들처럼 궁극적 차원에서 보자면 ‘부분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노스 다코타 은행은 ‘다코타 경유 파이프라인’에 저항하는 아메리칸 인디언들 주도의 스탠딩 록 시위를 저지하기 위한 경찰력 강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주 당국에 1천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빌려주었다는 ‘정당한 비판’을 각계각층으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노스 다코타 은행이 실천으로 보여주었던 ‘금융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약속이야말로 오늘날의 운동가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호소력을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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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몇 년 동안, 공공은행 설립을 위한 활발한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등장했다. 이는 기업 지배와 엘리트 통제를 거부하고 새롭고 더욱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가장 진일보한 캠페인들이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2018년 11월 11일에 시행된 공공은행 설립 찬반 주민 투표에서 찬성 42 반대 58이라는 결과로 비록 패배하긴 했지만, [거의 아무런 홍보도 없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찬성 42%는 거의 50만에 육박하는 주민들이 공공은행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은 그 의미가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다(LA의 총인구는 2017년 약 400만). 그리하여 활동가들은 이제 주 의회로 투쟁 공간을 옮겨 공공은행 설립 안을 관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최근에 지방 및 지역 공공은행 설립을 위한 일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법안이 주 의회를 통과했고 주 상원으로 이전되어 올해 6월과 7월에 걸쳐 두 개의 주요 위원회를 통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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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안의 운명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 공공은행 연합(California Public Banking Alliance)이 힘을 모아 함께 한 이 캠페인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주민 중 330만 명을 대표하는 100개 이상의 단체가 이 법안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노동 조합들(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간호사 협회, SEIU 캘리포니아, AFSCME 캘리포니아 및 UFCW 서부 주 협의회)과 커뮤니티 그룹(예를 들어, 환경 및 경제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조직된 사람들과 모든 캘리포니아인을 위한 보건 의료)과 환경 그룹(예를 들어, 350.org, 지구의 친구들, 지역 청정 에너지 연합) 및 정치 단체들(캘리포니아 민주당과 캘리포니아 녹색당)이 포함되었다.

게다가 10개의 도시 정부가 이 노력을 뒷받침했다. 그 중에는 로스 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그리고 샌디에고가 대표적이다. 캘리포니아와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공공은행은 ‘주변적 관심사’에서 ‘주류 정치 이슈’로 매우 빠르게 부각되고 있다.

이는 노스 다코타 은행과 같은 장기적인 성공 사례와 더불어 100년 전의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금융과 자본의 통제’가 보다 공평하고 공정하고 민주적인 희망 세상을 만드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신세대 사회운동 설계자들과 활동가들의 노력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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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런 브라운(Ellen Brown)은 또한 민주주의 협력(The Democracy Collaborative)의 연구원이기도 하다. 저자들은 그 단체에 속해 작업하며 그녀의 저서 『공공은행』 역시 그 단체에 의해 출판되었다.

참고: 상기 기사의 이전 헤드라인에서는 노스 다코타 은행을 미국 최초의 공공은행으로 잘못 설명했다. 공공은행은 수세기 전에 이미 존재했었다. 그러나 노스 다코타 은행은 미국 최초의 현대적 공공은행으로서 미국 대륙에서는 유일한 기관임을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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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M. 한나와 아담 심슨

토마스 한나(Thomas M. Hanna)는 민주주의 협력(The Democracy Collaborative)의 연구 책임자이며 『공공 재산: 미국에서 공공 소유권의 귀환』의 저자이다. 아담 심슨(Adam Simpson)은 민주주의 협력의 프로그램 협력자로서 [다음 시스템 The Next System]이란 제목의 팟 캐스트를 진행한다. 그는 또한 팟 캐스트 [미래 좌파Future Left]의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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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