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완정 시론

I 중동 이야기(1): 미국의 일관성 = ‘나 홀로 뛰쳐나가기’ I

신현철/국제정치 대표작가

 

I 중동 이야기(1): 미국의 일관성 = ‘나 홀로 뛰쳐나가기’ I

/ 이란 그리고 하노이 /

 

1
1979년 이란에서 ‘호메이니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부추겨 그 이듬해 이란과 ‘8년 전쟁’을 치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란은 무너지지 않았다. 시리아가 무너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중동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미국 패권은 이때부터 균열이 생긴 것 같다. 미국에 더는 ‘이용가치’가 없어진 사담 후세인에게 미국의 월가 양복쟁이들이 방문했다. 그동안 미국이 지원한 전비 지급 독촉을 하기 위해서였다. 후세인이 돈 없으니 배 째라고 하자, 갚을 돈이 없으면 원유나 국가자산을 다 털어서라도 갚으라고 몰아댔다. 언제는 간이며 쓸개며 후세인에게 다 빼줄 듯이 굴다가 이란 정권 붕괴작전이 실패하자 ‘안면’을 바꾼 것이다. 물론 후세인은 발끈했다. 그래서 이라크 옆에 붙어 있는 쿠웨이트 알 사바 왕가에게 돈을 좀 달라고 부탁했다.

이라크가 이란과 전쟁을 해서 쿠웨이트를 보호해 준 측면이 있으니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 줄 알았다. 그리고 원래 쿠웨이트가 역사적으로 따져 들어가면 이라크와 한몸이기도 해서 어느 정도 ‘형제애’를 발휘해 줄 줄 알았다. 이 양국은 마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같은 관계였다. 그러나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금전 요구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게다가 쿠웨이트는 한술 더 떠 국경분쟁지역에 유전까지 ‘떠억하니’ 설치해놓고 그 소유권을 행사하는 데에 이르자, 후세인의 ‘분노 게이지’는 급상승했다. 미국 덕분에 가진 게 군사력밖에 없는 이라크는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기로 한다. 결과는…. ‘이라크의 참패’였다. 이렇게 사담 후세인은 미국과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리고 2003년 2차 걸프전쟁에서 미국에 패배해 급기야 2006년 12월 30일 넋이 하늘로 돌아가게 되었다. 귀천(歸天)…. 후세인 스토리가 주는 교훈은 뭘까?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전쟁하라고 부추기는 친구와는 절대 사귀지 마라!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게 될찌니…. ”

 

2
그럼 후세인이 사라진 이라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후 자신의 꼭두각시로 내세운 시아 이슬람 분파 가운데 ‘무크타다 알-사드르(Muqtada Al-Sadr)’라는 성직자가 전 국민의 열화와 같은 숭배를 받으며 ‘이라크의 호메이니’가 되어 버리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니까 미국은 자신이 권력에 앉힌 사람들로부터 ‘미군 주둔 협정(SOFA)’의 체결을 거부당하고 이라크에서 쫒겨나는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역사라는 ‘뫼비우스의 띠’는 정말로 심오하기 짝이 없다. 아무래도 스피노자의 범신론이 맞는 것 같다. ‘신(God)’은 모든 사물에 특히 역사 속에 침투하여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어떤 끈적끈적한 ‘아교 물질’이 아닌가 싶다. 곳곳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아무 데도 존재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아교 물질’….

 

3
그럼 이란-이라크 전쟁이 종료된 후 이란은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 정부는 1984년부터 —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8년에 끝났다 — 이란을 “악의 축”의 일원으로 그리고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여 꾸준히 ‘경제제재’를 지속시켜 왔다. 이란 제재와 관련된 미국 내 규정으로는 이란제재법(ISA), 국방수권법(NDAA), 이란위협감소 및 시리아 인권법(ITRSHRA), 이란자유 및 반 확산법(IFCA) 그리고 대통령 행정명령 등이 있다. 많기도 많다.

미국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달러 패권 붕괴다. 이거 무너지면 ‘좋은 시절’ 다 끝난다. 국채가 다 빚이고 무한대로 달러 찍는 것도 임계점이 있는 법이다(미국의 빚은 1년에 1조 달러씩 불어난다). 너무 많이 찍어내 이젠 지급 능력조차 의심되는 달러 패권은 알고 보면 폰지(Ponzi)사기 수법과 같은 자동붕괴 메커니즘을 그 안에 내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달러 패권의 붕괴를 불러들이는 요인이 바로 패권의 균열을 막기 위해 미국이 타국에 가하는 ‘경제제재’로부터 연유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는 나라 중 대표적 나라가 이란, 러시아, 터키다. 이 나라들이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고 나서,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며 반성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의 달러) 없이도 잘 굴러갈 수 있는 금융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있다. 이제 이 나라들은 ‘외환 보유고’랍시고 달러를 잔뜩 쌓아 놓고 공포에 떨며 ‘위기’에 대응하는 허망한 짓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지역 청산 시스템’을 실행 중이다. 미 달러 패권을 떠받치는 산유 킹 사우디(Saudi)마저 ‘달러 종말 이후’를 착실히 대비하고 있다. 사우디 동생인 카타르(Qatar)는 진즉에 이란과 붙어 서로 간에 ‘연모의 정’을 나누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빚이 돈이 되는 희한하기 짝이 없는 금융시스템을 어떻게 국제적으로 용인할 수 있단 말인가? 주지하다시피 ‘달러 본위제’는 ‘군사적 강제’ 없이는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4
다시 이란으로 돌아오자.

글로벌 금융 뱀파이어들은 2012년 국제결제수단인 ‘국제 은행 간 금융정보 통신망(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 SWIFT)’으로부터 이란을 차단했다. 원유를 미 달러로 결제하지 않는 ‘만행’에 대한 금융제재 징벌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가장 무서워하는 게 달러 패권 붕괴다. 이란이라는 산유국에 미국이 ‘경제제재’를 내린다. 그러면 이란은 그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서 미 달러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결제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 미국의 ‘경제제재’는 달러 패권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붕괴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단축하는 달러 패권 붕괴를 조장하고 있다. 역사의 ‘뫼비우스의 띠’는 다시 한 번 그 위력을 발휘한다. 미국 말을 듣지 않는 ‘난폭한’ 정권을 길들이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기반 골조를 무너뜨리는 자멸적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5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참모들은 ‘경제제재’의 이런 자기 파괴적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7월 이란과 P5+1(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독일) 국가들이 ‘단체로’ 달려들어 ‘이란 핵 합의’로 알려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체결시켰다. 제재만이 능사가 아니라 최종 목표인 ‘달러 패권 유지’를 위해서는 이란을 살살 달래 ‘달러 궤도’ 안으로 끌어들여 달러의 ‘달콤함’을 맛보여 줌으로써, ‘반미의 무익함’을 깨우쳐 주려고 했다.

마침 당시에는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라는 ‘부드러운 남자’가 대통령을 하고 있었다. 전임 대통령인 아흐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는 사실 우리처럼 ‘속세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눈떠 있는 모든 시간에 이란을 괴롭히는 미국을 ‘성전(聖戰)’으로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야 한다는 사명감에 활활 불타며 그의 삶 전체를 알라에게 바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지냈다. 옷도 맨날 잠바때기 같은 거 하나 걸치고 잠도 맨바닥에 매트리스 달랑 하나 깔고 자면서 오직 ‘자신의 조국 이란(Iran)’만을 생각하며 지낸 ‘비세속적 인물’이었다. 탁발 수도승이 무색해질 만큼 물질적 욕망과는 ‘완전히’ 절연하고 살았던 인물이다.

 

6
그러나 로하니는 달랐다. 일단 용모부터가 산악 게릴라 타입의 아흐마디네자드의 후줄근한 모습과는 달리 뭔가 ‘모더니티’가 뚝뚝 떨어지는 귀공자 타입인 데다가 그의 생각 또한 미국과 척을 지기보다는 사이좋게 지내자는 ‘화해와 공존’이었다. 마치 고르바초프가 테헤란에 나타난 것 같았다. 확실히 로하니는 이란의 ‘페레스트로이카 대통령’이었다. 오바마 정책 담당자들은 그에게서 뭔가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네탄야후와 미국 내 그의 동지들인 네오콘 세력이 용가리 불을 뿜듯이 성토하며 반대했는데도 이란에 계속 다가갔다.

게다가 CIA는 이란이 2003년에 이미 핵 개발을 포기한 상태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오바마 행정부가 굳이 이란과 핵협정을 시도해야 했었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즉, 이란이 — 조선(DPRK)과 달리 — 스스로 알아서 개발을 멈추고 있는 핵 개발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는 뭐하러 굳이 네오콘 마구니들에게 욕먹어가며 여러 나라 끌어들여 합의하는 번거로운 짓을 했을까? 물론 합의를 맺은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3년 뒤 트럼프 대통령이 ‘나 홀로 탈퇴’를 하는 바람에 그 합의서는 휴짓조각이 되었지만 말이다.

 

7
어차피 이란을 직접 침공하는 것은 미국의 ‘동시 멸망’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화적인 방법을 써서, 이란을 어르고 달래며 부드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경제제재 완화’였다. 궁극적으로 보면 이것도 변형된 형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시도이다.

경제제재의 완화를 ‘의도적으로’ 허용해서 달러의 ‘달콤한 맛’을 한껏 보여주어 내부적으로 로하니 류의 ‘비둘기파’가 아흐마디네자드같은 ‘매파’를 물리치고 득세하기 바랐기 때문이다. 경제제재를 완화해 이란에 ‘물질적 풍요’와 ‘자유’가 넘실대면, 이란 사람들이 미국과 서방을 우호적으로 여기며 문을 활짝 열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전략 목표인 ‘달러 패권’도 ‘기스’ 하나 내지 않고 온존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잔대가리’는 완전히 예측을 빗나갔다. 비둘기파 수장 로하니는 서구에 문호를 개방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게다가 미국 입장에서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그가 알고 보니 달러 패권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매파와 입장이 완전히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이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는 미국측 정책 담당자들의 ‘인물 탐구 분석’과 ‘이란 정치역학 분석’이 엉터리였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미국은 스스로 잔꾀가 효력이 없음을 눈치채자마자 이제는 그 역으로 대단히 ‘공격적으로’ 나왔다.

이란이 아무런 위반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무 이유도 없이 화를 내며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탈퇴했다. 이제 미국과 맺는 조약을 신뢰할 국가를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조변석개하는 그 ‘예측불허성’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8
정확히 2018년 5월 12일 트럼프 행정부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탈퇴했고,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합의 참여국들은 눈만 끔뻑이며 ‘아연실색’했다. 미국 정부가 ‘일부’ 해제했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는 그해 8월 7일부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이란은 ‘달러 패권으로부터 탈출만이 이란이 갈 길’이라는 평소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9
북도 이란처럼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국제법은 경제제재 자체가 전쟁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보여준 행동은 이란에 보여준 행위의 연속이다. ‘나 홀로 뛰쳐나가기’의 재판이다.

핵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미국은 홀로 성질에 못 이겨 뛰쳐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기회에 가감 없이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네오콘에 대적한다는 것도 이제는 못 믿겠다. 그의 재선도 우리가 고민할 대상이 아니다. 미국이 다른 곳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지금뿐 아니라 앞으로도 북에 어떻게 할지 환히 보이는 것 같다. 아래 지도가 그것을 웅변해준다.//

 

 

__

0 - 포스팅이 마음에 드셨나요? 왼쪽 하트를 눌러주세요
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