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유라시아 통합을 저지하기 위한 세기의 전투 I
2020년 1월 28일 • 신현철/국제정치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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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사건을 맥락 속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가 지금 정확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글로벌 패권 권력들이 지금 어떤 관계 국면에 들어 서 있는지 아는 것이 필요하다. 평화로운 안정 국면인지 아니면 격동의 세력교체 국면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미 신질서가 태동하기 시작한 여명 국면인지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미 그 답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전 지구는 세력 교체의 격렬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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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세계사적 세력 교체기 한가운데 서 있다(물론 국내에서는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마치 갈라파고스 섬에 고립된 주민들처럼 우리는 강성 네오콘파와 – 이들에 의해 “좌파”라 불리우는 – 연성(軟性) 리버럴 네오콘파 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투쟁 활극을 즐기고 있다).
글로벌 헤게모니 측면에서 보면 대항해 시대(15~18세기)를 거치며 팽창한 서구 해상세력이 지난 200년간 아시아/중동/아프리카/남미 등을 식민지나 반(半)식민지로 만들며 지구를 짓밟아왔다. 그러나 영원한 패자(覇者)란 있을 수 없는 법이라 바야흐로 유라시아 양대 세력이 발흥하기 시작했다. 굴욕적인 청 제국의 몰락을 딛고 원기를 회복한 중국 대륙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용(龍)이 되었고 로마노프 러시아는 소비에트 제국이라는 ‘붉은’ 북극곰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북극곰은 내적 취약성과 외적 공격으로 인해 70년 단명한 삶을 마감하고 미 제국 날개 밑으로 들어가나 싶더니 어느새 내적 자강을 통해 ‘군사 강국’ 신흥 러시아로 부활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이 있었고 재건의 물적 토대로서 유가의 고공행진이 있었고 가장 중요하게는 미 제국의 ‘방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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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보이즈(Chicago Boys)와 제프리 삭스(Jeffrey D. Sachs)를 앞세운 미 연준과 재무부, 월가, IMF의 연합 점령군은 러시아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 체제전환만 시켜놓으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다. 그러나 자본주의로 이행한 러시아는 워싱톤 콘센서스(Washington consensus)가 의도한 대로 신자유주의로 이행하지 않았고 실로비키(Силовики) 권력이 올리가르히를 통제하는 ‘크렘린 자본주의’로 이행했다. 주1) 워싱턴 콘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는 미국과 국제금융자본이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를 개발도상국 발전모델로 삼도록 하자고 한 합의이다.
서구 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은 경제[기업]권력이 우위에 서고 정치권력이 이를 뒷받침해주는 ‘경갑정을(經甲政乙)’인 반면에 크렘린 자본주의는 정치권력이 우위에 서고 경제권력이 하위 파트너가 되는 ‘정갑경을(政甲經乙)’ 형태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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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러시아 체제의 극명한 사례가 바로 ‘유코스 사태’였다. 간단히 말해 경제권력이 ‘허파가 뒤집혀’ 정치에 개입하려는 만용을 부리게 되면 곧장 철퇴가 날아드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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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옐친 때 헐값으로 인수한 러시아 최대 민간 석유회사였던 유코스의 소유자 미하일 호도로프스키(포브스 집계, 2003년도 세계 갑부 랭킹 16위)가 정계에 뛰어들어 푸틴을 적으로 삼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대권 도전 발표가 난다. 그러자마자 크렘린 실로비키는 유코스에서 사기 및 횡령, 돈세탁, 조세 포탈 등 혐의를 “적발”해 280억 달러라는 가공할만한 벌금을 때리고 호도로프스키를 감옥에 처넣었다. 유코스는 해체되었고 자산은 국가에 매각되었다. 그는 9년 형을 선고받고 2005년 5월부터 수감되어 2013년 12월에 사면되어 출소했다(만기출소가 2014년 8월이었으니 몇 개월 일찍 ‘빵’을 나온 것이다) 당시 유코스 공동 창업자 레오니드 네프즐린은 구속을 피해 이스라엘로 후다닥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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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서유럽에서 출현한 것과 같은 강력한 부르주아계급이 역사적으로 부재했다. 따라서 서구와는 달리 금권세력이 사회 여러 제도적, 문화적 모세혈관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지는 못했다. 바로 이것이 실로비끼 권력이 들어설 수 있었던 조건이 되었다. 서구식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현존 최고의 정치시스템으로 칭송하는 자유주의적 성향 사람들은 러시아의 이 같은 ‘정갑경을(政甲經乙)’ 권력 체제를 “독재”라고 성토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자본과두독재’를 쉴드치는 ‘페이크 민주주의(fake democracy)’의 일종인 서구식 (금권) 민주주의 또한 과거 한때 잠시나마 존재했던 일반민주주의 공간마저 사라져 이제는 노골적이고 파렴치하게 온갖 공작을 일삼으며 민주주의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부패하여 누더기가 된 상태다. 이제 미국과 유럽이 “민주주의”의 원리에 의해 작동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수많은 당들(혹은 거대 양당)이 난립해 우리만이 소수 과두들의 이해에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표를 달라며 경쟁적으로 난리 치는 게 무슨 민주주의이겠는가! (물론 극소수 인민 지향적 정당들이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변방에서 우짖는 새’에 불과하다. 인민 지향적인데 인민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일방적 구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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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용이 된 중국은 ‘대룡굴기(大龍堀起)’ 하여 일대일로의 글로벌 문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경제 강국이 되어 그간 넘버 원으로서 일방적 특권을 누려왔던 미국 기반 글로벌 자본과두들을 몸서리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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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지금 위안화에 기반을 둔 글로벌 디지털화폐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별 이변이 없다면 중국은 가까운 미래에 발전된 블록체인 기술과 양자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국제금융뿐 아니라 정보통신과 군사 분야까지 미 제국을 앞지르는 획기적 도약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아래 유틉 영상은 쇠락해가는 미 제국이 중국을 저지시키기 위해 벌이고 있는 다각적 전쟁이 그 표면상의 이유와는 무관하게 바로 기축통화를 둘러싼 경제/금융 독점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벌이는 혈투임을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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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계사적 세력 교체기에는 반드시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중동, 남미, 아시아, 러시아, 중국… 미국이 전쟁을 벌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전선에서 지금 미국은 연거푸 패배를 거듭하고 있다. 누가 봐도 대세가 이미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 제국 핵심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조차도 이제 전세를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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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미 제국의 브라만 계급에게 대외정책을 구상해주는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CFR)의 저명한 중동외교전문가 마틴 인디크(Martin Indyk)조차도 워싱턴포스트(WP)에서 미국이 중동을 더 이상 폭력으로 뭘 어째 보겠다는 ‘돈키호테식 야망’을 버리고 그곳이 ‘가망 없는 지역’임을 순순히 인정하고 뒤로 물러나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피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미국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2)

마틴 인디크(Martin Indyk)는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근동 지역 차관보로 근무했으며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의 특명 전권공사였고 이스라엘 대사를 역임하기까지 한 ‘중동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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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인디크는 ‘전향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확실히, 세계 경제 – 따라서 미국 경제 – 는 걸프 지역으로부터 석유 공급에 주요한 파열 때문에 피해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천연가스 혁명, 다른 여러 곳에서 에너지원 발견과 개발, 그리고 “청정에너지”로 대체가 증가하면서 중동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시장은 놀라우리만치 탄력적이게 되었습니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아랍 국가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석유의 자유로운 흐름으로 판단컨대 [중동국가들을 인위적으로 장악하는 것이] 더 이상 미국에 핵심적 이해가 아닙니다. 즉, 그것을 얻기 위해 싸울 가치가 없습니다. 비록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중국과 인도는 걸프와 그들의 항구들 사이해로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 해군이 더 이상 그곳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3)
이 말은 미국이 중동에서 그만 손을 떼자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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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뚜렷한 입장 변화도 보인다.
“이스라엘의 경우, 유대 국가(이스라엘)의 안보를 지원하는 것이 미국 국익에 부합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수십 년에 걸친 미국의 경제 및 군사적 퍼주기식 지원과 긴밀한 안보 협력으로 이스라엘은 이제 스스로 방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파괴하려는 반복적인 위협에 대해 미국이 우려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오늘날 핵으로 무장한 이스라엘이 이란을 무너뜨릴 수단을 가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불가능합니다.” 주4)
이 말은 미국이 이스라엘 ‘뒤치닥꺼리’하는 짓도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주장이다. 네탄야후가 들으면 격노할 주장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이렇게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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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광석이 멤버였던 <동물원>의 노래가 생각난다. 「변해가네」. 노랫말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쇠락해가는 미국의 브라만 지배계급의 쓸쓸한 내면 풍경을 놀랄 만큼 정확하게 포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 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혼자 남겨진 거로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했지그러나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가네
나의 길을 가기보단 너와 머물고만 싶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 가네우~~ 너무 쉽게 변해 가네
우~~ 너무 빨리 변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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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혹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런 유약한 감성적 이면과는 달리, 온갖 무리수를 써서라도 세계를 장악해 금권 천년왕국의 신세계질서를 끝끝내 수립하려는 초국적 브라만 계급의 전략적 목표를 결코 자발적으로 내려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잘한 소규모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언제든지 대혈투가 벌어지는 확전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지정학자 페페 에스코바르(Pepe Escobar)는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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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커다란 충돌이 향후 10여 년 간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을 한 축으로 하고 유라시아 통합의 세 교점(交點)인 러시아와 중국과 이란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New Great Game)의 엄청난 충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십 년 동안 지정학 및 지경학(geoeconomics)적 차원에서 벌어질 모든 게임 변경 행위는 이러한 장엄한 충돌과 관련하여 분석되어야 합니다.
초국적 심층 국가와 미국의 핵심 통치계급은 유라시아 양대 국가들에 완전히 겁을 먹고 있습니다. 중국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국가”인 [숙주 국가로서의] 미국을 이미 경제적으로 앞지르고 있으며,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미국을 앞질렀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펜타곤은 공식적으로 유라시아 삼국을 “위협”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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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 원이었던 조직 보스(boss)가 개심(改心)해 더 이상 주먹을 쓰지 않고 ‘차카게’ 사는 사람이 되는 사례가 현실에서는 있는지 모르겠으나, 국제 정치 느와르판에서는 그런 건 절대 존재할 수 없다. 누군가 반드시 하나 죽어 나가야 비로소 끝이 나는 ‘죽음의 검투장’이기 때문이다. 어떤 글라디에이터(Gladiator, 검투사)가 끝까지 살아남아 승리를 환호하며 유혈 낭자한 경기장을 빠져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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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에 발발한 중국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왜 중국일까? 왜 지금일까? 왜 우한일까? 왜 중국에는 유독 사스(2003), 조류독감(2010), 아프리카 돼지열병(2019)같은 감염성 전염병이 끊이질 않고 활개 치는 걸까? 이로 인해 결국 누가 피해를 입고 누가 이익을 볼까?? ㅡ [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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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주1)
실로비키(siloviki)는 푸틴 집권기에 등장한 신흥 지배엘리트로서 구소련 KGB, 군부, 검찰, 내무부(MVD) 등 안보 및 권력기관 출신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이들은 대체로 푸틴의 고향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연고를 가진 삐쩨르스키(Петерски)들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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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wsj.com/articles/the-middle-east-isnt-worth-it-anymore-11579277317?fbclid=IwAR0OC58c4zv3ZJ9V97tvilkZHSgXsOynySh5jz4er1yzYuu2f7whf25x13A
Jan. 17, 2020
「중동, 그 무익함에 대하여」
「The Middle East Isn’t Worth It Anymore」
: With few vital American interests still at stake there, the U.S. should finally set aside its grandiose ambitions for the chaotic region
By Martin Indyk
주3) ibid.
주4) ibid.
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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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siatimes.com/2020/01/article/battle-of-the-ages-to-stop-eurasian-integration/
JANUARY 16, 2020
「유라시아 통합을 저지하기 위한 세기의 전투」
「Battle of the Ages to stop Eurasian integration」
: Coming decade could see the US take on Russia, China and Iran over the New Silk Road connection
By PEPE ESCO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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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최상단 이미지]
승리한 검투사
https://www.pinterest.co.kr/pin/294493263108180782/?lp=true
[이미지1]
유치장에 갇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Михаи́л Бори́сович Ходорко́вский)
[이미지 2]
전(前) 이스라엘 대사, 마틴 인디크(Martin Indyk)
Should the US be neutral on Israel-Palestine?: Head to head with Martin Indyk
[이미지 3]
검투사들
https://store.steampowered.com/app/339700/I_Gladi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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