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안석호의 세계음악 3번째 음원 ㅡ 수록곡 감상 I
1
우리가 맺는 거의 모든 관계는 결국엔 시들해진다. 관계 속에서 내가 사라지고 상대와 하나가 된 듯한 혼연일체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에 불과하다. 그런 감정이 지속해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고독’은 숙명이다.
2
새로 산 차, 새로 입주한 아파트, 새로 결혼한 여자[남자], 새로 만난 신념 체계나 종교 . . . 모두가 처음에는 황홀하지만 지나면서 새로움은 점점 마모된다. 세월을 이겨내지 못한다. 어떡해서든지 굴절이 일어나고 새로움은 반드시 손상된다. 새로움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새로움보다는 익숙함과 지루함이 많아진다. 모든 것이 심드렁하고 그 어느 것에도 쉽게 열정이 가질 않는다.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살아는 있되 죽은 사람!
3
하루하루 삶을 새롭게 산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매우 신기하게도 ‘고독’은 매일매일 새롭다. 고독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고독 속에서 듣는 음악도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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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종류는 다양하기도 하지만 똑같은 음악을 시간이 지난 뒤 들으면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같은 음악을 들었을 뿐인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건 아마도 사람이 서 있던 시점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거의 흡사하겠지만 3년 전의 나 혹은 1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거의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이렇게 변화해 달라진 다른 사람이 같은 음악을 들으면 전혀 다른 감정이 추출된다. 그게 바로 음악 듣는 묘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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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호의 세계음악 3번째 음원이 나왔다. 차분히 들어 보았다. 시그널 음악부터 심상치 않다. 이란 출신 뉴에이지 음악가 모레자(Moreza)의 《엘리제를 위하여(Fur Elise)》, 인트로 음악으로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역시 모레자의 편곡된 곡 《사랑 이야기(Love Story)》, 기타 선율이 원곡 이상으로 눈밭에서 뒹구는 두 연인의 감정이 내게로 이입되게 만들어 준다. 마누엘 프랑호(Manuel Franjo)의 《오직 너의 사랑을 위해(Solo Por Tu Amor)》는 반복되는 가사가 매력적이다. 이길 필링(Egil Fylling)의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은 다가올 새해에는 왠지 신비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르세데스 소사와 레온 기에꼬(Mercedes Sosa & León Gieco)가 부르는 《하늘께 바라는 오직 한가지(Solo le pido a Dios)》는 대단히 사회참여적이고 투쟁적인 가사를 가진 기원곡이다. 김학래의 《하늘이여》라는 노래에서는 “내 사랑 피어나게 하소서”라는 개인적 기원을 하늘에게 바래는 반면 《하늘께 바라는 오직 한가지(Solo le pido a Dios)》는 악의 무리를 척결하는데 소홀함이 없는 자아를 견지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악의 굴레 속에서 수백년 동안 살아왔고 앞으로도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악과 동반하여 힘겨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우리들과 우리의 후대들이 가끔씩 불러 정신을 정화하는 노래로 아주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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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자키 안석호님께 감사를 표해야겠다. 대대적인 치아 공사 때문에 정상적 구강 구조가 아니어서 발음에 곤란을 겪는 와중에도 [완정] 독자들을 위해 음악 콘텐츠를 보내 주신 것,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이 겨울 또 다시 어김없이 다가올 추운 ‘고독과 그리움’을 견뎌내는데 안석호님의 음악이 도움이 될 터이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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