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완정 시론

I 서구 근현대 사상의 ‘시원(始原)’을 찾아서 (1 of 3) I

신현철/국제정치 대표작가

 

I 서구 근현대 사상의 ‘시원(始原)’을 찾아서 (1 of 3)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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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근현대 사상이 다양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의 ‘아버지’에게 나온 ‘다른 자식들’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버지의 이름은 바로 ‘유대교(Judais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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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유대교는 단순히 <토라(Torah)> ( = 모세오경, 구약성서 첫 다섯 편인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통한 야훼 유일신 종교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토라에 대한 신비주의적 해석이자 ‘영적 수행의 길’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Kabbalah)의 주요 경전인 <조하르(Zohar)>도 포함되며, 다양한 랍비들 어록이자 토라의 주석서이며 참고서인 <탈무드(Talmud)>도 포함된다. 즉 모세오경은 ‘성문 토라’고 탈무드는 ‘구전 토라’로 분류된다. <탈무드(Talmud)>는 쉽게 말해 간결하게 서술된 모세오경인 ‘성문 토라’에서 구구절절이 밝히지 못한 구전 가르침을 랍비들이 현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행위의 준거를 끌어내는 ‘유대 신학의 응용’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그 분량이 방대하다. 원래 ‘경전’보다 경전 ‘주석서’가 방대한 법이니까. 역사적으로 누적되다 보니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주석은 지금 이 시각에도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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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듯, ‘같은 아버지’(유대교)를 둔 사상적 자식들 또한 균질적이지 않다. 자식 중에는 ‘체제 전복적 사상’도 있고 ‘체제수호적 사상’도 있다. 그것들은 서로 뒤엉켜 있으며 때론 서로 적대적으로 ‘죽일 듯이’ 싸우기도 한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용광로’에 존재하는 다른 쇳물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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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Judaism)’ — 정확히 말하면 ‘탈무디즘(Talmudism)’ — 에 사상적 젖줄을 대고 있는 하위 계보 사상으로는 공산주의, 아나키즘, 자유주의,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 네오콘이즘), 시오니즘(Zionism)을 열거할 수 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가장 논쟁적 지점이기 때문이다. 시오니즘 신봉자를 제외하면 나머지 사상들에 호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호 사상이 유대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연결’이 되었는지 아닌지 하나씩 따져보는 작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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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대교와 공산주의 간 ‘연결의 통로’를 밝힌 연구로는 엘리자베스 딜링(Elizabeth Dilling) 여사가 저술한 『유대 종교: 오늘날의 영향력 The Jewish Religion: Its Influence Today』(The Noontide Press. 1983)를 들 수 있다. 딜링 여사는 “유대교는 바빌로니안 탈무드에 근거한 바리새주의라고 정의하며 한마디로 ‘사탄주의’라고 규정짓는다. 바리새인들이 모든 형태의 사탄주의를 도입해서 현대 유대교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좀 쎈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딜링 여사의 저작 말고도 탁월한 저작들이 적지 않으나, 지금까지 내가 본 책 중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저작은 아마도 E. 마이클 죤스 박사(Dr. E. Michael Jones)가 저술한 『유대인의 혁명 정신과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 The Jewish Revolutionary Spirit and Its Impact on World History』.(Fidelity Press. 2008)이 아닌가 싶다. 후주 빼고 본문만 1,077 쪽이나 되는 이 방대한 저술은 근 2,000년 간 서구 역사 속에서 면면히 흘러내려 온 ‘유대 혁명 정신’의 계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정말로 도움 ‘왕창’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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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때려 부수자 스피릿’인 <근대 자유주의> 급진혁명 사조 — 1848년 “혁명들”로 대표되는 — 와 과거 러시아와 동유럽과 중국과 베트남과 쿠바와 DPRK를 비롯한 그 밖의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제3세계 국가들”을 휩쓸며 성공을 거둔, 한류(韓流) 아닌 ‘적류(赤流)’인 <공산주의>는 유대교(Judaism)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자식 중의 하나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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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사상사는 유대교의 도전에 대한 절망적 응전과 패배의 산물로 점철된 것 같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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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추측에 확신이라도 주듯이, 데이비드 니렌버그(David Nirenberg)는 『반(反) 유대 정신: 서구의 지적 전통 Anti-Judaism: THE WESTERN TRADITION』에서 서양의 지적 전통에 내재해 있는, 유대교에 대한 “과민반응”과 “병리적 판타지”를 “폭로”하고 있다. 서구 사상들과 유대교가 서로 물고 뜯으며 줄기차게 싸워왔다는 것이다. 도발 주체는 서구 사상들로 지목되고 있다. 유대교는 가만있는데, 서구 사상가들이 괜히 트집을 잡으며 깡패처럼 호전적으로 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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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쉽게 말해, 이 책 논지는 비유대인인 서양 사람들이 마치 “여러분, 제 귀에 도청되어 있어요!”라고 주절거리면서 편집증 환자처럼 발작적으로 유대교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과 ‘경계와 ‘탄압’을 일삼아 왔다는 것이다. 뭐랄까, 유대교에 적대적인 ‘서양 사상가 무뢰배들’이 마치 세르반테스의 ‘동기호테’처럼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적’을 풍차에서 발견하고 마구 돌진하는 ‘광인(狂人)’처럼 행동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 책 집필 목적이 ‘유대교 쉴드치기’가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실제로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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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무구한 유대교에 자꾸 시비 걸고 죄인 취급하는 불순한 서양 사상가들, 야 이 미친놈들아, 쳐 돌았느냐? 왜 그러는 건데? 나찌가 괜히 나온 게 아니야. 너희 그 썩어빠진 지적 전통 속에 히틀러와 괴벨스가 잠복해 있었던 거라구…. 정신 차려, 이 나쁜 놈들아! (씩 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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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목적’이 엿보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호기심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저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사용해 유대교 쉴드를 치는지 그 ‘방법’과 ‘논리’를 탐구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유대교에 ‘비호감’을 드러냈던 서양 사상가들을 ‘한 명씩 한 명씩’ ‘옥상’으로 불러내 ‘쪼인트’를 까는 이유가 무척 흥미롭다. 이걸 만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이유가 기발하다. 그러나 기발할 뿐 ‘설득력’을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나하나의 비판을 들어 보면, 저자 또한 동키호테’ 꽈’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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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일진’이 되어, 유대교에 작은 트집이라도 잡은 이력을 가진, 우리에게 친숙한 서양 근대 사상가들(신학자 포함)을 죄다 ‘옥상으로’ 호출해서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종교개혁”의 기수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해 “계몽”의 기수들인 볼테르와 칸트는 물론 헤겔, 쇼펜하우어를 거쳐 하이네, 피히테, 막스 베버와 그의 동료 베르너 좀바르트 . . . .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마르크스까지 전부 옥상으로 불려 나가 ‘쪼인트’를 까인다. 그들이 쪼인트를 까이는 이유는 너무 길어 생략한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렇지만 루터는 잠깐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가 말년에 집필한 『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에 관해 On the Jews and their lies』(1543년)에서 표출되는, 유대인들에 대한 분노는 거의 수소폭탄 급이다. 자신에게 성경 지식을 가르쳐준 ‘친절한’ 유대인들에게 왜 이렇게 분노하는 걸까. 한때 유대 랍비들에게 배운 신비주의 카발라(Kabbalah)에 심취한 적도 있었던 루터는 왜 그토록 맹렬하게 유대인과 유대교를 공격했을까?…? 아마도 그들에게 뭔가 속았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신학적으로 뭔가 단단히 속았다는 느낌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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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두서없이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무튼 다시 말하지만, 서구 근현대에 출현한 사상 조류는 모두 한 가지 시원인 유대교에서 비롯된다는 ‘가설’을 제시하는 바이다.

서양식 인문 사회과학 대학(원) 커리큘럼에 스며든 ‘유대적 사유’가 본체인 학습 내용을 죽으라 공부한 우리(학사/석사/박사)는 스스로가 다른 무엇에 얽매이지 않는 ‘주체적 자아’가 되어 독창적으로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사유’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자뻑적 정신승리’),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처럼 ‘유대적 사유구조’ 안에서 맴돌 뿐이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우리는 거기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뛰어봤자 벼룩’인 것은 아닌지. 쳇바퀴를 맴도는 다람쥐나 햄스터는 아닌지 너무너무 의심이 든다. 왜냐하면 ‘유대-기독교적 신학’으로부터 출발해 ‘자유주의’와 ‘사회[공산]주의’로 이행하고 ‘세속화’와 ‘이성’과 ‘계몽’과 ‘혁명’을 두루 거치는 동안에 그것 중 어느 것도 ‘유대적 사유 패러다임’과 맥이 닿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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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적 사유 패러다임’이란 게 ‘정확히’ 무엇이며, 서구 근대 사상들이 그것에 어떻게 영향받았는지는 다음 기회에 상술하도록 하자. 그것이 좋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영향받아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인류의 지적 흐름에 오·폐수를 방류하는 것이라면 막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맘 놓고 음용 가능한 일급수와도 같은 ‘메이드 인 코리아 사상’을 만들려면 이런 검토와 성찰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본다. ‘포스트-아메리카 시대’를 대비해 사상 플랜트 공사를 미리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닥쳐서 벼락치기로 하지 말고 미리미리 공부해 놓자는 계산이다. 맨날 서구에서 수입한 (의심쩍은) 사상들에 입 쩍 벌리고 침 흘리며 감탄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명품 사상’을 만들어 수출해야 되지 않겠는가! 사상 분야가 의의로 ‘블루 오션’이다 자신이 신봉해왔던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모두 ‘수구적으로’ 그걸 그냥 껴안고 산다. 이 또한 ‘경로 의존적’이다.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자니 ‘견적’이 너무 크게 나오고, 안 하자니 너무 뒤처지는 것 같고…. 그래도 결국은 안 하는 방향으로 간다. 그냥 즉흥주의와 상황주의 논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그냥 ‘박쥐’처럼 산다. 낮에는 ‘들짐승’하고, 밤에는 ‘날짐승’ 하면서.

우리는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가 최고야!”, “아니야, 맑스-레닌주의가 최고야!”, “아니야 주체철학이 최고야!”…. 라고 말들은 하지만 속으로는 뭔가 2% 부족한 공허감을 제각기 지닌 게 사실이다. 밖으로 표출하지 않을 뿐이다. 남들에게 약하게 보이기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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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