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완정 시론

I 서구 근대 “시민혁명”의 해부 I

신현철/국제정치 대표작가

 

I 서구 근대 “시민혁명”의 해부: “유대 세력은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일으켜 주권국가를 양분한 뒤 가볍게 전복시키고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는다. 그리고 이를 ‘혁명’이라 부른다!” I

/ 기획된 혁명 제1편: “영국 혁명” ––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과 ‘더치 커넥션(Dutch Connection)’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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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근거지를 둔 ‘더치 커넥션(Dutch Connection)’ 수장은 포르투갈 콘베르소(converso)인 메나세 벤 이스라엘(Manasseh Ben Israel)이다. 그는 랍비이며 공동체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최고위급 실무자이기도 하다. 크롬웰과 수시로 연락하며 지령을 전달하고 전반적 작전을 지휘한다. 크롬웰의 ‘의회파’ 군대인 신형군(New Model Army)에 군수품을 납품하는 사람은 역시 포르투칼 콘베르소 출신의 페르난데즈 카르바잘(Fernandez Carvajal)이다. 군수품뿐만 아니라 용병과 무장 시위대 공급책을 맡고 있기도 하다. 지금으로 말하면 미국 용병 회사 블랙워터의 후신 아카데미(ACADEMI)사 대표인 에릭 프린스(Erik Prince)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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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암스테르담 유대 마라노 작전 본부와 올리버 크롬웰 사이에 오간 전문이다. 빼박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찰스 1세 국왕시해에 대한 의견 교환과 대금 지급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전문은 독일어로 쓰여 있고 뮬하임 유대회당(the Mulheim Synagogue) 당국이 보내고 받은 편지의 발췌를 포함하고 있다. 그가 내게 보낸 첫 번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A) 1647년 6월 16일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 에베네저 쁘라트(Ebenezer Pratt )에게

재정적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유대인의 영국 입국을 옹호할 것입니다. 그러나 찰스가 살아있는 한 그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찰스는 재판 없이는 처형될 수 없으며, 현재 그를 처형할 적당한 구실이 없습니다. 따라서 찰스를 암살할 것을 권고합니다만, 비록 암살 후 무사히 도망치게 도와준다는 옵션을 내걸었지만 암살자를 구하려는 계획은 진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B) 1647년 7월 12일 답신
에베네저 쁘라트(Ebenezer Pratt)가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에게

찰스가 제거되고 유대인들의 영국 입국이 허용되는 즉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할 것입니다. 암살은 너무 위험합니다. 찰스에게는 도망칠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를 사로잡으면 그것으로 재판과 처형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재정 지원은 후하게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찰스의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의미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이 몇 줄 안 되는 전문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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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각 지역 사료들에 따르면 1647년 이후 전투를 동반한 본격적 내전이 전개되면서 대부분 잉글랜드인은 내전 당사자인 양측(“왕당파”와 “의회파”) 중에 어느 한쪽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립을 지키며 ‘지역시민군(clubmen)’을 만들어 어느 군대도 자기들이 사는 지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극도로 경계하였는데, 이는 자의적인 왕권의 폭압에 맞서 대중적 기반에 따른 의회파의 항거라는 기존 스토리텔링이 엉터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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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 커넥션(Dutch Connection)’ 작전세력은 영국 내에 합법적으로 입국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양한 루트를 통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잠입해 온갖 간첩질, 분열책동, 프로파간다용 지하 인쇄소 운영, 비합법 테러조직 구성과 난동부릴 폭동 무리 파견(1637년 <에딘버러 기도서 소요사태>처럼 난동꾼 심어 놓기), 귀족 상층부 침투와 돈으로 매수하기, 반대파 협박, 요인 암살 등의 체계적인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주도면밀하게 찰스 1세 국왕시해를 목표로 하는 작업을 했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지금의 CIA 이상의 네트워크와 자금을 기반으로 하는 단일한 암스테르담 지도부가 오케스트라처럼 실시간 지휘하는, 결국은 영국이라는 나라 하나를 통째로 꿀꺽하는 대규모 <오션스 일레븐>, 혹은 <오션스 에잇>과 같은 조직범죄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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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펼쳐진 “아랍의 봄”이라는 기획된 쑈에서 잠입한 나토 지상 용병 IS 테러세력이 리비아를 전복하고 시리아(Syria)에서 민주화 시위를 가장하며 아싸드 정부에서 싸움을 걸어 기어코 나라를 피로 물 들이는 ‘7년 내전’ –– 사실은 “내전”이 아니라 테러용병 부대 ‘침공’이라 불리는 것이 현실과 부합되지만 — 으로 이끌어 갔듯이, 이 당시 영국이라는 연합왕국에서도 겉으로는 우발적 사건처럼 보이는 굵직한 분쟁들이 실은 더치 커넥션의 지도를 받는 칼뱅 급진파 지도자들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된 사건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찰스 1세의 충직한 3인방 신하들(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로드-버킹엄 공작 조지 빌리어스- 스트래퍼드 백작)은 하나씩 하나씩 제거당하면서도 범유럽적 유대 네트워크의 상상초월의 ‘레짐 체인지’ 방식을 전혀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고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의 그 어떤 국왕이라도 그와 같은 전방위적 파상 공격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 혁명”의 업그레이드된 복사판 수법인 “프랑스 혁명”에서도 루이 16세가 그렇게 허망하게 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무한자금과 용병 그리고 스파이 네트워크를 갖춘 ‘유대 커넥션’은 이미 오래전부터 왕실 내부에 사람들을 침투시켜 고위 관직에 눌러앉아 고정 간첩질을 해오고 있었다. 사태가 이러하다 보니 이를 당해 낼 왕가는 없었다. 스페인 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을 거느리고 있었던 합스부르크 왕가 또한 유대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카톨릭 제국을 붕괴시키기 위해 프로테스탄티즘 국가와의 30년 전쟁을 자연스럽게 유발하여 신성로마제국은 해체일로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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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를 통한 대중 선동’ 전문가들인 강경 퓨리탄 일당은 급기야 찰스 왕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던 충신 스트래퍼드를 처형한다. 그는 런던탑에 갇혀 있다가 참수형을 당한다. 이 악마 같은 퓨리탄 일당은 찰스 주변의 사람들을 차례로 모조리 도륙 내는 데 성공한다. 무장한 이들까지 포함해 수천 명의 군중들을 궁전에까지 난입하게 하여 ‘기획시위’를 대대적으로 벌여 깽판을 놓고 사태 안정을 위해 추밀원이 스트래이퍼를 처형해야 한다고 제안하게끔 하여 찰스 1세가 원통하고 분하여 괴로움에 치를 떨게 하지만 끝내는 어쩔 수 없이 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스토리를 읽고 있노라면, 이 칼뱅 퓨리턴 무리는 기독교판 IS 테러집단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들의 난동이 얼마나 엽기적이었던지 처음에 왕에게 적대적이었던 의원 중에서 퓨리턴의 행태가 치 떨리는 관계로 태도를 바꾼 이가 적지 않았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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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스콧 강경파는 ‘국민맹약(National Covenant)’을 국왕 찰스 1세에게 들이대며 도전장을 던진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전술이다. 너무나 적대적이어서 둘 중 어느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상황을 만들려고 최대한 노력했던 강경 퓨리탄들을 제압하기 위해 만약 찰스 1세가 스코틀랜드 온건파를 규합해서 칼뱅 강경파의 대중동원을 사전에 차단하고 왕정 전복 노력을 파악해 초장에 이들을 때려잡았더라면 피비린내 나는 ‘영국 내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영국 내 칼뱅 강경파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유대 마라노 세력의 현지 용병들이었다.

이 세력의 목표는 종교적 외피를 두르고 벌어지는 영국의 국가 분열 속에 침투해서 1290년 에드워드 1세가 유대인들을 추방한 것에 대해 복수도 하고 — 재입국이 주된 목표였다 — 저물어가는 스페인 카톨릭 제국에서 내부 반역자로 낙인 찍혀 쫓겨났기 때문에 차세대 대안 근거지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일단 네덜란드로 대거 이주해 이곳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도전정신’을 발휘해 급부상하는 신흥 패권국인 영국 연합왕국을 집어삼키고 ‘국가 안의 국가(state within a state)’를 건설하려는 포부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찰스 1세를 반드시 제거하고 자신들의 현지 대리 정권을 만들어 놓을 혁명적 상황이 필요했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자신들 의도를 실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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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1세 국왕시해 후 들어선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퓨리턴들을 대동하고 대규모 인종청소 학살을 벌인다. 그리고 미션을 완수한 크롬웰은 돌변하여 군사독재 무단통치를 자행하며, “절대주의 스튜어트 왕정과 이들이 저지르는 봉건적 압제에 항거하기 위해 의회군을 조직해 싸웠다”는 거추장스럽고 꾸며낸 대의를 내팽개쳤다. 이제 크롬웰과 그의 공화국은 의회 민주주의 자체를 압살하는 ‘공공의 적’이 되었다. 자신을 도와 국왕시해에 적극적으로 활약했던 수평파(Leveler)의원들을 전격 숙청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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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