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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반(反)근대 전통주의, 세계의 걸작을 찾아서: 《완정문고》 제1권(1) I

I 반(反)근대 전통주의, 세계의 걸작을 찾아서: 《완정문고》 제1권(1) I
– 끌레어 꼴롬비(Claire COLOMBI). 『“암흑” 중세 신화 뒤집기(La légende noire du moyen age)』. KONTRE KULTURE. 2017

2019년 11월 25일
우리말 번역: 류소민/불문 번역가
해제: 신현철/국제정치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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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시작된 지도 어언 20여 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 지금, 우리는 왜 굳이 몇백 년도 더 지난 그 옛날 유럽 중세와 근대 시기를 살펴보려 하는가? 지금 당장 우리 삶을 입체적으로 위협하는 다급한 문제들이 해결을 아우성치며 산적해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 화급(火急)한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동분서주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이 무슨 한가한 고답적(高踏的) 취미란 말인가? 현실과 유리된 음풍농월(吟風弄月)이 아닌가라는 질책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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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 곰곰 생각해보면, 생애주기에 걸쳐 끊임없이 우리 삶을 옥죄는 구속복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더 화급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병인(病因)도 모르는데 어떻게 치료가 가능하겠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누군가 아무렇게나 혹은 의도적으로 역사에 돌팔이 진단을 내리고 나서, 성분이 의심스러운 약재를 사용해 만든 이론의 알약을 특효약인 줄 알고 사회개혁(혹은 혁명)을 위한 처방에 남용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사회는 비판적으로 비평할 줄 아는데 막상 자신이 비판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회이론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무지하고 무비판적인 것이 우리 지적 풍토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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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붕괴 이후 국내 지식인들이 지혜를 모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분하게 밀도있는 작업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내로라하는 논객들은 하룻밤 만에 모두 어디론가 ‘포스트모던하게’ 종적을 감추었다. 그때 청산주의적 분위기에서는 “뜬구름 잡는” ‘거대담론’을 주절거리면 ‘컨츄리꼬꼬(촌닭)’ 같은 취급을 받았다. 대신 미시적인 것에 무슨 대단한 진리라도 숨겨져 있는 양 눈을 부라리며 미시적 알갱이를 연구하는 것이 트랜드였다. 거대담론의 과잉 시대가 끝났으니 이제부터는 착실하게 미시 담론이나 붙잡고 늘어지자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과 마지막 인간』에서 말한 것처럼 이제 소련도 몰락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최종적으로 승리했으니, 역사가 급기야 ‘종착역’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소련이 몰락하기 바로 이전에 ‘거대담론’에 대한 열띤 논쟁이 하나 있었다.

80년대 후반에 민주화 바람을 타고 불사조처럼 부활한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해 ‘사회구성체 논쟁’이 한동안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구소련 몰락에 즈음해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논의가 게눈 감추듯 쏙 들어가 버렸다. PD 계열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신식국독자론), NL 계열은 식민지반봉건론(식반론), ND 계열은 식민지반자본주의론(식반자론) 등을 주장하며 제각기 입장에서 대단히 ‘격렬한’ 논쟁을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보면 당시 그런 논의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부질없는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서구 역사 자체에 대한 총체적 무지는 말할 것도 없다(지금도 그때와 비교해 크게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계몽’과 ‘진보’를 정언명제로 삼는 사관에 기반을 둔 각종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머릿속이 이미 기형적 인식 체계로 점령당한 상태에서 무슨 놈의 논쟁을 한다고 설쳐대는 모습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조용필 노래 「그 겨울의 찻집」이 이런 ‘웃픈’ 마음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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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맹’ 네오콘의 뇌 구조를 가진 이들은 “북한만 비핵화”와 “김정은 참수”를 정답으로 떠올린다. 마찬가지로 서구 역사를 유대 파워엘리트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도록 훈련된 ‘유대맹’ 진보파의 뇌 구조를 가진 이들은 “봉건 참수”만을 정답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부르주아계급의 ‘상대적’ 진보성을 인정하며 부르주아계급이 ‘나쁜 놈들’이긴 하지만 그들이 “암흑의 중세” 봉건 시대를 “시민혁명”으로 무너뜨리고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시킨 것은 ‘발전’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슬며시 면죄부를 쥐여준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역사 발전의 다음 단계인 사회주의(공산주의)로 가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어찌 보면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정교한 이론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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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단계적 이행론은 근대 시민혁명의 대표격인 “영국혁명”과 “프랑스혁명”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라 불리는 “러시아혁명”이 한결같이 영국을 위한, 프랑스를 위한 혹은 러시아를 위한 정치변동이 전혀 아니며 민중혁명은 더더구나 아니며, 일부 귀족층과 동맹한 유대 파워엘리트의 해방을 위한 혁명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모든 신기루 유리창이 와장창 산산조각나며 박살 나 버린다.

세가지 혁명 후에 누가 가장 이득을 보았는지 ‘계산서’를 뽑아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테러통치를 정당화하는 혁명 속에서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는 최대의 수혜자들이 누군지 알면 금방 답이 나온다. 혁명 한 이유가 나온다. 여기에 더해 혁명이론의 신학적, 이데올로기적 제공자들이 누구며 혁명의 구체적 전개 과정에서 누가 뒷돈을 댔으며, 누가 봉기 주체를 ‘알뜰살뜰’ 조직했는지 자세히 살펴보면 답이 어렵지 않게 나온다(《완정 문고》 씨리즈를 통해 앞으로 이를 하나씩 하나씩 소상히 밝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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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해방을 위해 휩쓸리듯 동원된 당시 유럽 인민들은 지금의 홍콩 시민들처럼 자신들이 거시적으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홍콩인들 입장에서 보면 대륙의 중국인들이 홍콩을 망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홍콩인들은 대륙인들과는 판이한 ‘외국인’에 해당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주입되는 의도적 미디어 뻠뿌질 이외에 그들의 격한 감성적 분노는 주로 ‘이질적 정체성’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정체성이 다른 집단들은 – 그것이 종교적 정체성이든, 정치적 정체성이든 뭐든지 간에 – ‘전쟁’으로 몰아가기가 쉽다.

90년대 발칸반도를 인종청소의 피로 물 들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코소보 지역은 제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두 집단을 아주 쉽게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미국은 자신들이 뒤를 봐주는 코소보 지역 무슬림 민병대를 동원해 미국식 체제 이식을 거부하는 세르비아 세력을 초토화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누가 죽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세르비아 사람들이 집단 학살당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는 곧 코소보 무슬림들의 세르비아인 집단학살 만행에 대한 세르비아인들의 보복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상호 학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져 발칸은 증오의 피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나토는 “인도주의적 개입”을 표방하며 군대를 진입시켰다. 그 무장력을 배경으로 미국의 어젠다를 관철했다. 알고 보면 간단한 수법이다(미국은 워싱톤의 명령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세르비아의 밀로세비치를 “인간 도살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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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없이 떠도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차별”과 “엄격한 제한”을 철폐하고 핵심 유럽국가들에서 자신들이 사회 상층부로 진입해 별도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안전을 도모할 수 있으려면 사회가 특정한 위계질서 아래 안정되어 있으면 안된다. 자신들의 그 목표는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전술적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식을 사용해 비유대인들이 서로 물고 뜯으며 ‘전쟁’을 벌일 수 있도록 무엇인가 다른 정체성을 주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다. 그래야 싸움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 안정과 번영이 비유대인들 간 상호 투쟁 속에서 확보될 수밖에 없는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되면 유럽 근현대사의 9할은 이해한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달리 말해 유럽은 신학적으로 보면,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전쟁사로 이루어져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강고한 유대 상업 금융 네트워크로 응집된 자본주의와 무방비 상태의 왕정 경제 간 대결이었다. 군사적으로 보면, 유대 파워엘리트가 지원하는 해상세력과 군주제 왕정의 대륙 세력의 대결이었다. 정치적으로 보면 유대 세력이 선호하는 세속공화정과 가톨릭 왕정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체질적으로 비유대인들의 위계 잡힌 기사도적 국가를 혐오한다. 그들이 보기엔 그런 사회는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언제든지 그들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슨하고 허술하고 자유롭고 모두를 평등하게 대해주는 사회 속에서 그들은 안심할 수 있고 번영도 할 수 있다. 우리야 일제 강점기를 제외하면 그래도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았든 착취를 받았든 지에 상관없이 – 계속 살아왔다. 때문에 수천 년 나라 없이 떠도는 유대인의 심정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에게 있어 안전한 삶의 터를 확보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들이 이민족 공동체에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했느냐 하는 도덕적 문제는 일단 논외로 치자. 그들은 언제 날벼락처럼 내쫓길지 모르는 혹은 언제 불현듯 집단학살(pogrom)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언제나 마음 한 켠에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에겐 없는 그 엄청난 불안감과 초조감이 집단 정체성으로 그들의 뇌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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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기본적으로 그들은 정치적으로 매우 강고하게 조직된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민족적/문화적/신학적 정체성이 타민족에게 결코 동화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유별나리만치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미움과 질시를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라가 없다뿐이지 그 어느 민족도 가지고 있지 못한 탁월한 돈 버는 기술이 있었다. 그들은 마치 움직이는 상단처럼 조직된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였기 때문에 영토국가는 없었지만 전 세계에 그들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전 세계가 그들의 국가였다고 볼 수 있다. 토박이처럼 한 곳에 정착해 사는 다른 이민족들과 다르게 그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코스모폴리탄적 기질이 있었다. 세계를 무대로 상업과 무역과 금융업에 종사하며 돈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모던한’ 유대인들의 의식구조가 평생 땅뙈기에서 농사만 짓고 살아가는 전통적 봉건 유럽인들의 의식구조와는 판이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대서양 무역을 장악하고 식민지 구축을 진두지휘한 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중상주의 시대를 거치며 무역을 통해 세계의 부를 거머쥔 자들은 포르투갈인들도 아니고 에스파냐인들도 아닌 바로 유대 경제 엘리트들이었다. 마라노(Marranos) 혹은 뉴 크리스천(New Christians)이라 불리는 그들이 바로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숫자는 많지만 궁핍하기 짝이 없는 쿠르드족과는 다르게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난 재력이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종족종교인 유대교는 기독교의 모태이기도 했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에 침투할 수 있는 신학적 자산도 풍부했다. 에라스무스를 비롯해 칼뱅, 루터 등이 모두 유대교로부터 영감을 받았거나 신학적 자문을 구했거나 직접 연계되어 있었다. 중세유럽의 단일성을 해체한 30년 전쟁(1618~ 1648)에서 로마 카톨릭에 저항해 가열하게 투쟁한 프로테스탄티즘의 탄생 이면에는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유대교의 ‘손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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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중세 유럽의 정치적 저항은 모두 신학적 외피를 두르고 표출되었다. 따라서 당시 가장 두드러진 정체성 전쟁 게임(identity war game)은 종교를 둘러싸고 벌어지게 되어 있었다. 중세유럽은 종교 전쟁을 통해 균열하였다. 유대인들을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네덜란드가 역사상 최초로 왕 없는 ‘공화국’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유대인들은 결정적 역할을 했다(아르마다 해전에서 스페인을 누르고 해적국가 영국이 해상제해권을 차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왕의 권위가 없는 자유로운 시민들이 맘껏 상공업에 종사할 수 있는 도시들로 구성된 공화적 과두정치체제는 유대인들에게 유토피아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혹은 그 이후에 근대 시민혁명이 발발했다. 말이 좋아 시민혁명이지 결국 최종적인 수혜자가 누군지 판독해 보면 결국 유대인들 해방에 이바지하는 레짐 체인지 혁명이었다. 지금의 색깔혁명(color revolution) 같은 것이었다. 시민혁명은 ‘국왕살해(regicide)’를 필수적으로 요구했다. “영국혁명”에서는 찰스 1세를 “프랑스혁명”에서는 루이 16세를 그리고 한참 나중에 “러시아혁명”에서는 니콜라이 2세를 비롯해 네 명의 어린 로마노프 공주들(올가, 타탸나, 마리야, 아나스타시야)까지 모조리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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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암흑’ 근대에 관한 역사 바로 보기는 “혁명”의 성격에 대한 인식 교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정교하게 조율되고 진행되는 ‘장기(長期) 유대 혁명들’은 유대인들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해주는 동시에 그들에게 상업 행위를 맘껏 펼칠 수 있는 제한 없는 경제활동권을 부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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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유대 혁명’이란 개념은 필자가 지오반니 아리기의 『장기 20세기: 화폐, 권력, 그리고 우리 시대의 기원 The Long Twentieth Century: Money, Power, and the Origins of Our Times』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 낸 개념이다.주1)

유대인 신분 해방이 혁명의 최고 부산물로 도출되는 ‘장기 유대 혁명들’을 인민혁명으로 오인하는 것에서 모든 개념 혼란이 발생한다. 달리 말하자면, 워싱톤이 지휘하는 색깔혁명과 얼마 전 프랑스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노란 조끼운동과 같은 맹아적 인민혁명이 전혀 다른 것임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조기 흔드는 홍콩시위는 5.18 광주 금남로 시위와 아무 상관이 없다.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 유대인의 해방을 가져온 유대 혁명인 근대 혁명들은 토착 인민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혁명이다. 이것이 명확해지면 필자가 자체 제작한 아래 [이미지 1] 유럽 근대 형성사를 순식간에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보이는 6개의 원을 만들기까지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 차원에서 이런 정식화된 견해를 제출한 학자를 아직 본 적이 없다.

 

[이미지 1] 유럽 근대 형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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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동시에 정치적 좌표를 설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서양 역사를 엉뚱깽뚱하게 잘못 알도록 꾸며놓은 어둠의 가짜 역사서가 지껄이는 승자의 거짓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야간투시경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유대혁명’이나 ‘종교개혁’ 같은 것을 먼저 들여다보기 보다는, 일단은 역사의 승자들인 계몽 금권세력이 서양 중세 역사를 왜 그렇게 악의에 차서 헐뜯는지 《중세역사 왜곡 공정》의 진의를 파악하는데서 부터 출발하는 것이 쉬울 것으로 본다. 본격적으로 역사를 재료로 하는 서양 요리 풀코스 만찬 식사를 하기에 앞서 ‘살짝’ 지식욕을 돋우는 에피타이저(appetizer)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많은 책을 읽었다고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다. 난삽한 사람이 될 확률만 높아진다. 적게 먹으며(小食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적게 읽어도 핵심을 찌르는 간결한 책(이나 글)을 읽고 올바른 의문과 문제 제기를 통해 사고 역량을 키운다면 불필요한 책을 읽느라 인생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필자처럼 멍청하게 불필요하고 쓰잘떼기 없는 책을 읽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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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레어 꼴롬비(Claire COLOMBI). 『“암흑” 중세 신화 뒤집기(La légende noire du moyen age)』. KONTRE KULTURE. 2017

우리말 번역: 류소민/불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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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이 책은 분노로 탄생했다. 매일 겪은 분노였다. 대학생활의 포근한 품에서 나오자 내게는 친구, 가족, 지인 등과 나누는 대화가 무척 어려워졌다. 어디에서나 내가 대학에서 배우고 읽었던 중세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는 게 너무 힘들어진 것이다. 우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머리를 진흙 같은 물질이 에워싸고 형성해 놓은 딱딱한 껍질을 부수어야 하는 일차적 과정을 거쳐야 했다. ‘중세’라고 불리는 시기에 대한 터무니 없고 뻔뻔한 거짓말들을 수없이 반복적으로 들어줘야 했다. 엉터리 의견들은 사회의 계층이나 종교, 부류, 나이에 상관없이 거의 일관된 내용이었다.

대다수 프랑스인 머릿속에 중세라는 관념은 이렇게 심겨 있었다. 중세시기는 풍습이나 사회적으로 뒤처졌고, 거칠고, 폭력적이었으며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사회였다. 하지만 이런 비판들이 어떤 실증적 근거나 구체적 사실들에 기반을 둔게 아니었다. 대체로 흐릿한 느낌들이 모여 차츰 견고한 확신으로 변신해 자리 잡혀 있는 것들이었다. 여러 직종을 거치면서 그곳이 식품공장이거나, 노동현장이거나, 보험회사 경제고문들이거나, 모두에게 들은 것은 일관된 맥락이었다.

그러면서 내 안의 분노는 점차 ‘의문’으로 변하게 되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이 같이 중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천차만별 다른 부류의 모든 사람에게 일관되게 주입되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는 이어서 중세를 전공한 몇몇 역사학자들이 이런 근거 없는 중세에 대한 편견을 속속들이 분해했던 전통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동시에 이 학자들 이름을 대학 과정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 중 탁월한 한 명의 저자가 1977년 『중세에 대해선 인제 그만』이라는 책을 낸 레진 페르누였고, 1992년 『중세라는 사기』를 내 파문을 일으킨 자크 에어가 있었다. 이 책들을 읽으며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이 책들은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남았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딱히 집히지 않았다.

2015년 부르곤뉴 지방의 ‘가족과 대지’라는 시민연대 창설팀 초대로 ‘중세에 관한 거짓’ 을 주제로 강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과거 역사학자들의 막대한 분량에 달하는 연구서들을 읽으며 내 차원에서도 무언가 작은 이바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베르나르 드 샤르트르의 중세철학을 정의하는 유명한 문구인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처럼 말이다. 거인들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볼 수 있는 난쟁이가 된다면…? 나는 중세 모략 프로파간다의 실을 잡아당기게 된다. 이 공론이 오늘에 와서는 견고한 물질처럼 보이지만 애초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물에 퇴적층이 쌓이듯이 오랜 기간 쌓여온 결과일 뿐이다.

내게는 갑자기 수백 조각으로 부서져서 먼지에 덮인 고대 단지의 모습이 고고학자의 눈 앞에 펼쳐지듯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쌓여온 모략 선전들이 우연이나 오류에 의해 발생하여 축적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 것이다. 천천히 의도, 이념, 파벌 같은 것들이 지면 위로 떠올라왔다. 중세를 겨냥한 선전과 프로파간다 뒤에는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전쟁은 언어를 매개로 한 이념들, 형이상학적 원칙들, 문명의 선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전쟁이었다. 수없이 펼쳐졌던 선동의 전선은 바로 사회의 [조직] 구성을 다투는 전투들이었다.

이상한 것은 여태껏 수많은 중세 학자들과 신중한 작가들, 또 열정적 연구가들이 수십 년째 이 모략을 밝히기 위해 끈질기게 반론하고 증거를 제시했건만 도대체 왜 이제껏 아무런 성과도 없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이들의 노력은 몇몇 전문가나 연구자들, 극소수의 정통 카톨릭 부류와 왕정주의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이었다.

2016년 새해에는 잡지 ‘르 푸엥’에 이런 제목의 기사까지 오르고 있었다. “1016년으로 회귀하면 꿈같이 살겠네요~ 차도 없고 테러도 없고 몽땅 유기농이라니까요!” 제목 밑줄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다. “카페 왕조 2세, 로베르 르 삐어의 시대로 전염병과 기근, 연속 전쟁 등 한마디로 낙원임….”

기사 내용은 물론 지독한 무지와 뻔뻔한 푼수들의 잔치였다.

중세에 대한 부정적 관념은 절대로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같이 중세에 대해 극혐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전파하고 있는 주체들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반론하고 증거를 제공하고 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도 허구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지시를 따라가는 대다수는 한편으론 무지하고 또 한편으론 체제의 정당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이 거짓말들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중세는 500년 가까이 못난이 취급을 받아왔다. 여태껏 소위 모든 [근대적] ‘진보’의 아첨꾼들이 즐겨 이용하는 ‘나쁜 증거’로 쓰여왔다. ‘르네쌍스'(재생)가 나오기 위해선 어두운 숲이 있어야 했고 ‘계몽'(빛)이 있으려면 암흑이 필요했고, ‘혁명’이 나오려면 그 전에 끔찍한 시기가 필요했고 ‘자유’가 있으려면 구속이 필요하듯이 끝없는 예를 들 수 있겠다.

인터넷 영향으로 몇 년 전부터 프랑스 혁명, 제3공화정 또 계몽주의에 대한 진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점점 많은 사람이 정보를 찾아다니고 이제는 무기장사들, 거짓 선동자들, 적대국들이 만들어 보급하는 티브이와 주류 미디어들의 거짓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자본주의의 종착점인 세계화로 인해 고삐 풀어진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뿌리가 절단된 사회에서 개인은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든다거나 제대로 읽고, 쓰고, 세는 것조차(80년대 도입된 총체 습득론의 결과다) 힘들어진 상태다. 경제 노예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만들어 공급하는 물건들의 과다소비에 오로지 의존하며, 과다한 성개발 증세, 공산업 저질식품들, 신경안정제 등 약물 과다소비, 공기 오염, 수질과 토양 오염, 전쟁들, 이런 것들이 현대사회의 성과물들인 것이다.

이런 것들을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생각하라고 한다!

유일하게 남은 명분이 기술 개발인 우리 사회는 과속으로 달리는 열차가 되어 질주하고 있다. 모두가 의무적으로 숭배해야 하는 기술 발전이라는 신화는 이제 힘의 논리가 되었다. 같은 수준의 기술이 없는 민족들을 무차별 공격을 정당화하는 빌미로 이용되고 있다. 서구 사회들은 자기 선조들의 모든 가치관을 기술과 공학의 발전을 위해 희생시켰고, 심장을 도려내며 혼을 팔아넘긴 셈이다. 이 기술의 발전을 위해 유럽의 권력자들은 민중들을 땅에서 잡아 뜯어내었고 프롤레타리아 노예들로 변신시켰다. 이후 서구사회는 3차 서비스산업으로 전환하며 제삼 세계를 노예노동 소굴로 변모시켰다. 오늘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한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목표가 소비와 쾌락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났을 즈음에는 ‘악마는 옷을 벗고 서 있고, 지갑에는 땡전 한 푼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가 바로 이 질주하는 기차의 종착역 이름이다. 과거에 있던,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인류의 파괴가 그 목적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교육의 혜택을 받았거나 예민하거나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이 조작된 현실을 보며 경악하게 된다. 악마가 거짓의 부모라면 이제 악마는 세계를 정복했다고 할 수 있다.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밝히려면 악마와 그의 첨병들과의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인 거다.

요한복음 18장 37~38절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빌라도가 말하기를; “네가 왕이란 말이냐?” 예수가 대답하기를; “그렇다. 내가 왕이다. 나는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 진실을 아는 자들은 나를 따르리니.” 빌라도가 말하기를; “진실이 무엇이냐?”….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우리는 당시 예수의 처형을 결정했던 유대법관들 산헤드린들을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즈의 마법사처럼 커튼 뒤에 숨어 있었다. 나자렛의 예수를 욕하고 고문하고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은 로마인들이었다. 범죄의 ‘몸통’은 절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몇몇이 사원의 커튼 뒤에 숨어있는 무리를 여러 번 지적하며 고발해도 우리가 모두 진실을 보려는 의지도 없고 빌라도처럼 진실의 의미조차 모르는 상태가 된다면 이제 우리는 모두 진실을 외면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사실과 자료들에 따라서 의견과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러나 그 사실과 자료들이 왜곡되고 날조되었다면 아무리 총명하고 치밀한 사람도 잘못된 사고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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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스타브 코헨은 『중세를 조명한다』라는 책에서 “중세의 어둠은 우리의 무지를 반영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보태어 말하자면 ‘중세의 암흑’은 플라톤의 동굴 속에 투사된 그림자일 뿐이며 그 의도는 우리를 노예 상태로 묶어두기 위한 것이다. 즉, 과거에는 오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암흑시대가 있었다고 ‘사기’를 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어두운 현실을 상대적으로 합리화시키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벽에 보이는 그림자들은 바로 우리의 정신적 감옥의 간수들인 셈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중세가 끝없는 기근과 병과 전쟁의 연속이 절대로 아니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출 필요가 있을까?

과거로 회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 미련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큰 절망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앞에 보이는 거대한 거짓의 벽을 향해 전력을 다해 돌진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생각한다.

거듭해서 시도하는 [비본질적 것들의 교체에 불과한] 정치개혁이나 유토피아에 목을 매는 종말론적 메시아주의에 입각한 사회 운동이나 불행과 처절함만을 불러온 19세기 혁명 이념들을 재생하느라 애쓰는 것보다는 한때 조화롭고 번영했던 사회가 존재했던 중세 시대를 연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히듯이 각 나무에는 저마다의 열매가 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가 열리지 않고 가시밭에서 포도가 수확되지 않는다”

그러면 공산주의, 신디칼리즘(syndicalism), 트로키즘 등이 낳은 열매로는 무엇이 있을까? 이 모든 이념이 기능적이고 안정된 사회를 만드는 데 성공했는가 하는 의문인 거다. 이런 유토피아 지향의 이념들은 적용되었을 때마다 지속은커녕 재앙만이 몰려왔을 뿐이다.

★★★ 대부분 프랑스인들이 의식도 못 하고 있지만 프랑스라는 나라가 아직도 서 있는 그 근간에는 중세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주인은 우리 자신들이고 과거를 평가할 권리도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다. 아무리 신랄한 비판을 받는 과거라도 그 과거는 우리의 집단기억에 속한다. 한편으론 ‘기억의 의무’를 귀따갑게 떠들면서도 중세역사는 이제 교과서에서 사라져 버렸다. 성당과 수도원들은 폐쇄되었고 성들은 외국의 갑부들이 매입한 후 값비싼 가구들만 챙겨가고 나머지는 방치해 두고 있다. 그러는 동안 오라두르 쉬르글란(“1944년 독일군에게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되었다”고 알려진) 같은 마을은 완벽히 관리 보존되고 있다. 정말 엽기적이지 아닌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프랑스 어린이들 모두가 각자 2차대전에 사라진 유대인 어린이 한 명씩을 기억하고 추모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샤를마뉴, 클로비스, 생 루이 등의 역대 프랑스 왕들이 중등 교과서에서 사라진 것을 지적하면 ‘국수주의적 반동’이라며 비난을 받게 된다.

리베라시옹 신문 인터뷰에서 앙리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쇼아(la Shoah, 2차대전 중 유대인 학살의 고유명사. 홀로코스트를 말함)는 그야말로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모두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유일한 특성을 보인 보편적 원칙이 되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을 잣대로 쓰면서 한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쇼아의 추모나 거부에 따라 동서유럽에 걸쳐 최소한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잣대로 서구 문명을 축소해 본다는 게 기가 막힐 뿐이다!!

우리는 긴 역사와 문명을 소유한 오래된 민족이다. 클로비스(466 – 511)와 생 루이 사이의 간격은 우리 시대로부터 생 루이(1214 -1270)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의 긴 기간이었다. 이 간단한 인식에서 새로운 전망이 열리는 느낌이 든다. 어서 빨리 우리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 전망이다. 그러려면 우선 알아야 한다.

★★★ 중세를 그토록 모함하고 미워하도록 만들려는 오랜 시간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던 만큼 그 안에 혹시 놀라운 보물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든다. 어쩌면 보석같이 소중한 지혜와 힘이 그 안에 있기에 민중에게 알려지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다시 삼단논법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 중세가 어둡고 후진적 시기가 아니었고 우리의 현재 사회가 평화도 번영도 정의도 없는 사회라면 논리적 결론은 어떻게 될까?

우리가 알고 있던 “암흑의 시대”가 중세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사는 지금이라는 사실을 긴 역사적 여정을 함께 하며 발굴하는 좋은 독서가 되길 바란다. ㅡ [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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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주1)
아리기는 이 책에서 서구 자본주의 역사가 네 번에 걸친 체계적 축적 순환이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첫째는 15세기부터 17세기 초까지의 제노바 순환이고 두번째는 16세기 말에서 18세기에 걸친 네덜란드 순환이고 세번째는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걸친 영국 순환이고 네번째는 19세기 말에 시작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국 순환이라고 분류한다.

이는 세계 경제 패권의 이동을 순차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패권이동이 발생하는 이유는 초기의 ‘건전한’ 실물경제 확장에서 벗어나 – 벗어나게 되는 원인으로 그는 ‘자본의 수익률 하락’을 지목하는데 이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주된 레파토리에 해당한다 – ‘불건전한’ 금융으로의 팽창이 결국 ‘망쪼’로 가는 길을 연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물경제와 유리된 금융 거품으로 인해 한때 잘 나가던 국가의 헤게모니가 쇠약해지고 경제 패권이 다른 국가로 이동한다고 주장한다.

아리기의 경제패권 이동 현상 분석은 이렇게 해석해 볼 수 있다. 사실 경제 패권을 쥐는 국가들은 모두 유대인 경제 파워엘리트들과 그 네트워크가 안착한 국가들이다. 그들은 메뚜기떼처럼 신흥 국가를 훑고 지나가는데 그들은 국가를 조화로운 산업 발전으로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보다는 최대한 단기에 이익을 챙겨가는 것에 주로 관심이 있기 때문에 금융을 통한 카지노 자본주의로의 경향은 이미 그들에게 내재한 속성이다. 이 속성을 알게 되면 금융을 지배하는 그들이 한 국가에서 최대한 이윤을 섭취한 후 경제 사막을 만들어 버린 후, ‘젖과 꿀이 흐르는’ 다른 신흥 국가를 찾아 옮겨 가는 ‘유대인 루트’ 메커니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국적이 없고 노마드이며 코스모폴리탄적이다. 따라서 애국심이니 향토애니 하면서 지역에 붙박이로 눌러 사는 컨츄리꼬꼬(촌닭)들처럼 특정 지역에 뼈를 묻겠다는 멘탈이 없고 항상 이윤을 찾아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따라서 경제의 지속가능성 같은 개념은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지 않다. 한탕 크게 하고 ‘먹튀’하면 그만인 것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대우 김우중 회장의 모토이기도 하지만원래는 유대 상인들의 모토이다.

국가를 모두의 공동체로 간주하고 지속가능한 생태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경제 엘리트들은 절대로 금융 축적 우위의 카지노 자본주의(신자유주의)를 실행할 수가 없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라인 모델에서 보이는 ‘인내 자본’ 같은 것은 유대 네트워크 메뚜기떼 자본주의와는 달리 자본의 도덕성과 공공성을 배려한 경제 운용의 측면이라 볼 수 있다. 자본에 국적이 없다는 둥의 얘기는 사실무근의 헛소리다. 정치권력의 통제를 받으며 책임감과 도덕성과 공공성을 가지는 ‘도덕 자본’은 얼마든지 국적을 가질 수 있으며 공동체 번영에 복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식 메뚜기 자본주의나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가 문제인 것이지 자본주의 일반을 모두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이론은 대단히 현실과 유리된 탈레반식 사고에 불과하다.

트로츠키주의자인 로버트 브레너도 『혼돈의 기원:세계 경제 위기의 역사 1950∼1998 The Economics of Global Turbulence』에서 자본주의 위기의 진앙지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제조업 부문에서 빚어진 경쟁의 격화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본 간 경쟁의 격화로 인해 1965-1973년까지 지속되었던 ‘황금 시대’가 종료되고 자본주의의 위기가 도래했으며 이는 자본을 수익률이 저조한 제조업에서 고수익의 금융업으로 이동시켰으며 2008년과 2010년의 금융 버블과 금융위기가 그래서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모든 책임을 ‘제조업의 이윤율 저하’로 돌린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인 것처럼 만만한 게 제조업에서의 경쟁이다.

브레너는 국제금융과두들의 카르텔적 메뚜기성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그는 제조업에 이윤이 많든 적든 그것과 하등의 상관없이 세계경제를 훑어내리며 뼈까지 발라먹는 무국적 메뚜기떼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 이래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 스탈린주의이건 트로츠키주의이건 아니면 마오주의이건 그 무엇이든지간에 – 모두 한결같이 국제 유대금융엘리트들에게 공격의 화살이 돌아가지 않도록 쉴드를 치는 수호천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를 멀리해야 하는 많은 이유들 중 하나다. 너무나 비과학적은 것은 물론이며 정치적으로 자본 대마왕들에게 쉴드를 쳐주는 모습이 너무나 역력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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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