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철/국제정치 대표작가
I 르네쌍스와 ‘왕의 살해’ I
/ “이성과 과학의 서구 근대”라는 ‘인식론적 최면’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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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티(modernity)의 출발점은 ‘르네쌍스’다. 르네쌍스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탈리아 도시국가들과 북유럽 등지에서 ‘곰팡이’처럼 번져나간 ‘과두지배용 이데올로기 펌프질’로 정의할 수 있다. 다분히 목적 의식적이다. 사회의 사건들을 예외 없이 ‘자연 발생적’이고 ‘우연적’이고 따라서 ‘자연사적’ 과정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자해적인가 하는 것은 르네쌍스의 이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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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교회에 짓눌려” 괴롭게 살지 말고, “인간의 재발견”을 통해 “휴머니즘”을 부둥켜안고 살자는 이 르네쌍스 레토릭은 얼핏 듣기엔 상당히 그럴듯한 ‘사탕발림’이다. 그러나 이는 유럽 기독교 군주제가 상업 과두들의 사익 실현을 방해하는 것에 대한 ‘난장까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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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 상업 과두들의 머리 속에 잠깐 들어가 보자. 그들 ‘본심’을 알기 위해 그들 독백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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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회 세력에 기초한 유럽의 군주제 . . . 그거 솔직히 우리 돈 버는데 너무 너무 방해되는 거라 정의할 수 있지! 우린 말이야 . . . ‘공익’이라든지 ‘신민을 보호’한다든지 하는 그런 어줍짢은 멘탈리티 너무 너무 싫어하잖아! 지천으로 널린 돈을 긁어 모으는 것만 해도 바빠 죽겠는데,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이 어딨어? 그런 건 돈 안 버는 한가한 애들이나 하는 거지 . . . 안 그래? (이빨 사이로 침을 찍 찍 몇 번 뱉고 나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간다.)
“지상에서 신의 통치를 실현한다”고 주장하며 똥폼 잡고 다니는 저 어리버리한 교황놈과 세속 군주와 그 밑의 귀족들은 정말이지 너무 너무 역겨운 놈들이야! 저것들은 얼마나 멍청한지. . . 지들 힘으로는 해외무역도 못하고 세금수납도 못하고 국가재정 운영도 못하고 고도로 복잡한 금융회계 같은 건 더더욱 못하고 . . . 우리의 영원한 4차산업인 돈놀이 ‘금융’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저 깡통들을 파산시키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지. . . 그저 부모 잘 만나서 높은 자리에 감투 쓰고 앉아서 우리한테 이래라저래라 호령하는 꼴을 보자면 정말이지 꼴사납고 구역질이 나서 미치겠다는 거 아니야! (다시 이빨 사이로 침을 찍 찍 몇 번 내뱉는다.)
신은 자연법(natural laws)을 만들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고 지상의 군주는 인간법(human law)의 수호자이며 국가를 로고스(logos)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기독교에 기반한 군주제의 책임이래나 뭐래나 . . . 돈 계산 하나 제대로 못하는 저런 얼빵한 똘팍들을 모두 싹쓸이 제거해버리고 우리 ‘고상한 상인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단다. . . . 이거야 원 배알이 꼴려서 사람이 살 수가 있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고 . . . 우리는 돈 버느라 쎄가 빠지는데 저 씹쌔끼들은 우리한테 ‘우아하게’ 갑질이나 하고 말이야 . . . 이거 뭔가 잘못 된 거 아냐? 돈 가진 놈이 갑이 돼야지, 어째서 교황이나 세속 군주가 갑이 되냐고?? . . . 뭔가 확 뒤집어 엎어버릴 수 있는 좋은 계획 없을까. . . . 맞다, 일단은 ‘반기독교 이론투쟁’을 하자. 최고의 안티-카톨릭 이론쟁이들을 동원해 기독교 교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묵사발을 만들어 버리자. . . 신은 무슨 놈에 신 . . . 돈이 최고지,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순 없으니, 그래 ‘신(神) 중심’이 아니라 ‘인간(人間) 중심’이라고 말하자! ‘인간의 재발견’ . . . OK! 뭔가 있어 보이고 폼 나잖아 . . . 안 그래?
군주제 국가에서는 사회를 가족(family) 개념으로 파악해서 군주는 대가족의 아버지고 그는 신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니지. 그리고 사회는 종교와 민족성(ethnicity)과 언어와 공통되는 관습 혹은 풍습으로 통합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거든. 물론 100% 순수한 형태로 단일하게 묶인 사회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겠지만 아무튼 군주제의 기본 원리는 ‘연대의 원리’야. 그래서 ‘군주제’와 ‘민족주의’는 연동되어 작동하는 거구 . . . 우리 같은 과두세력들은 말야, 종교법이나 대의명분따위에 사로잡힌 군주들처럼 신민들의 사정 하나 하나 구질구질하게 다 들어주는 거, 우린 관심 없어! 그래선 절대 돈 못 벌지! 내 이익을 억누르고 남 생각하는 이타적 사람들이 돈 버는 거 봤어? 잔인하고 가혹하게 몰아쳐야 ‘오까네’가 들어오는 거라구!
아무튼 군주제 때려 치고 우리 상인 과두들이 지배하는 ‘인공적 과두 통제사회’를 만들려면 기독교 파괴는 필수야, 그래서 “대상인 출신인 밀라노의 비스꼰띠(Visconti), 피렌체의 메디치(Medici) 가문과 같은 과두들이 인문주의자들 활동에 충실한 후견자 역할을 하게 되었”던 거라구. 뻬뜨라르까, 보까치오, 부르니, 마르씰리오 피치니, 마키아벨리, 토마스 모어, 에라스무스, 몽떼뉴, 니꼴라우스 꾸자누스 . . . 많기도 많은 인문주의자(Humanist) 군단, 우리와 한 패거리인 줄 몰랐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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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오그렌(Brian Ogren)은 『르네쌍스와 재생: 근대 초기의 이탈리아 카발라의 환생 Renaissance and Rebirth: Reincarnation in Early Modern Italian Kabbalah』. (BRILL. 2009)에서 인문주의자들 이외에도 이탈리아 르네쌍스에 깊숙히 개입해 있는 유대 카발리스트들을 상세히 고찰하고 있다. 특히 카발리스트들이 제시한 영혼과 우주에 관한 숱한 ‘썰’들을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카발리스트들의 임무는 이런저런 밀교적 ‘구라’를 까대면서 사람들을 기독교적 규범과 위계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게 하고, 자연주의와 개인주의 숭배의 방향으로 나가게 만들며, 모든 권위와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무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해방투쟁을 할 것을 온 유럽에 권장했던 것이다. 기독교 군주 권력의 이론적 기반을 붕괴시키는데 카발라(Kabbalah)만한 것이 없다. 카발라는 주지하다시피 이후 르네쌍스에서 ‘필’받아 “종교개혁” — 아마도 종교 개악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유대교의 카톨릭 침투 현상으로 ‘단일 기독교’를 수십 수백 개의 ‘종파’로 잘게 쪼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 — 을 선도하는데도 중추적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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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쌍스는 정확히 말해 유대신비주의 카발라(Kabbalah)의 개념인 ‘아인 쏘프(Ein Sof)’를 재생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아인 소프(Ein Sof)는 ‘순수한 무(pure nothingness)’ 혹은 ‘순수한 혼란(pure chaos)’ 상태를 의미하는데, 카발라에서는 이 단계에 진입해야 비로소 ‘새로운 질서’가 태동된다고 ‘씨부리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질서”가 대체 뭘까? . . . . 그건 바로 메디치 가문 같은 울트라 과두들이 국가를 낼름 집어삼켜 민영화해버린 ‘과두국가의 질서’를 지칭하는 것이다. 뭐랄까, ‘삼성공화국’ 같은 새로운 질서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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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카발라적 순수 이론이 상업-금권 과두들의 권력팽창용 정치 투쟁 전술과 결합되면 대단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즉 ‘어리버리한’ 군주제(monarchy)를 작살내고 과두제(oligarchy)를 구축하기 위해서 ‘전복’과 ‘혁명’을 통해서 ‘아비규환 카오스’를 만든다는 투쟁의 맵(map)이 그려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혁명은 — 우리가 오랫동안 속아온 바와 같이 “민중의 자기실현”이란 함의를 가지는 것이 전혀 아니라 — 단지 과두제로 가기 위해 필요한 극한 혼란과 백지 상태인 ‘아인 쏘프(Ein Sof)’를 얻어내기 위한 것으로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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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보(progress)”라는 개념 자체도 유대신비주의 카발라(Kabbalah)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메시아’에게로 향하는 일직선적 돌진이 ‘진보’다. 끝까지 돌진해서 만나게 되는 메시아는 누군가? . . . . . 그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구원자로서의 메시아’가 아니고 — 그건 속임수다 — 단지 과두제 사회라는 ‘디스토피아(dystopia) 통제사회’를 의미한다. 그런 사회가 도래하면 궁핍한 우리들에게는 메시아가 아니겠지만 과두 세력에겐 엄연한 메시아다. 그들에게 ‘젖과 꿀’을 영원히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에겐 영원한 ‘희생의 가시밭길’만이 기다린다. ‘희생’이란 말이 중요하다. 이상하게도 과두제 국가나 사회에서는 반드시 다수의 희생과 고통이 뒤따른다. 그래서 과두제는 인간에게 자연스럽지 못한 체제가 되는 것이다.
과두제 구축 과정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인 단일권력 군주제 위계질서는 반드시 ‘전복’과 ‘혁명’을 통해 파괴되어야 하고 ‘카오스’ 상태를 만들어야 비로소 인위적으로 통제 가능한 새로운 질서를 앞당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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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무나도 오해하는 개념 중 하나인 ‘모더니티(근대성)’는 결국 알고 보면 소수가 주인이 되어 수많은 이들이 피흘리는 ‘희생’ 속에서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과두 질서와 동의어다. 그리고 모더니티는 정치적 형식으로 ‘공화제(republicanism)’를 선택한다. 역사 법칙처럼 ‘군주제’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그 자리에 ‘공화정’이 들어서는 규칙성을 보라. 분명 ‘일정한 패턴’이 존재함을 감지할 수 있다. 마치 용역깡패들이 동원돼 구점포 주인들을 두드려 패가며 폭력 철거를 하고 나서 대규모 고층 아파트를 짓듯, 군주제를 포크레인으로 허물고 버리고 그 자리에 공화제를 들어서게 하는 것은 그냥 무심코 간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말이 좋아 공화제지, 실상 그 어떤 것도 공화적이지 않은 체제가 바로 공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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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제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왕을 살해해야 한다. ‘왕의 살해’는 ‘카오스’를 소환하는 것이다. 가부장적 신(神)을 죽이고, 가부장적 군주(君主)를 죽이고, 가부장적 아버지를 죽여 ‘단일성(unity)’을 해체하고 카오스를 불러오는 것이야말로 과두들의 정치 로드맵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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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탈리아 공화정 어쩌구 하는 것은 죄다 그저 ‘과두제 정체’를 의미한다고 보면 맞다는 얘기다. 그러면 유럽 근대사에서 과두제 공화국과 군주제 국가 간 대립은 기본 모순이 된다. 전복하려는 자들과 이에 저항하려는 자들로 크게 양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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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영국내전을 보는 관점도 이에 입각해 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엘리자베스 여왕을 끝으로 튜더 왕조의 안정감이 사라지고 약점을 한껏 노출하고 있던 스튜어트 왕조에 승냥이떼처럼 몰려가서 비리리비해 보이는 군주제의 사지를 물어뜯어 전복시키고 잉글랜드를 공화국 베이스캠프로 만들려는 과두들의 숙원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찰스 1세를 살해하고 그 당시의 조지 소로스인 올리버 크롬웰이 범유럽 유대 과두세력의 돈 — 군납업자인 포르투갈 마라노(marrano)인 카르바잘이 건네주는 돈 — 을 받아 꾸린 철기군인 신형군(New Model Army)을 무장집단으로 삼아 ‘공화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영국의 ‘체제 이행’을 도모했던 것이다. 군주체제에서 공화체제로의 이행 말이다.
“신의 형상을 닮은 군주제”는 스스로를 쇄신하지도 못하고 방어할 지력도 무력도 없었기에 결국에는 비극적으로 과두들에게 왕의 머리를 건네주고 공화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크롬웰 공화국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단명했지만 이미 영국에서 왕정 복고 이후의 왕들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중심성과 권위는 모두 증발된 상태였다. 군주제는 있지만 군주는 없는 . . . 단지 허명에 불과한 무력한 왕만 덩그러니 있는 그런 ‘권력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당시 범유럽적 과두세력은 기회가 닿는 대로 ‘왕의 살해’를 실천했고 이후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과 양차 대전을 거쳐 군주제는 거의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는 유럽을 넘어 전세계적 차원에서 과두제가 ‘절대적으로’ 승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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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살해’는 3가지 심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 (1)신의 살해와 (2)군주의 살해와 (3)아버지의 살해 — 지금은 그 마지막 단계인 가부장적 아버지를 여기저기서 목졸라 죽이는 살인이 열심히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완성되면 글로벌 과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백년 동안의 살인’을 마무리 짓는 피날레 축제를 벌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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