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완정 시론

I 라틴 아메리카에 ‘연분홍 물결(pink tide)’이 또다시 찾아온들 . . . I

신현철/국제정치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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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 1]은 《포린 폴리시 Foreign Policy》가 올해 2월 초 세계 각국이 베네주엘라 우고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의 계승자인 마두로(MADURO) 대통령과 이를 붕괴시키기 위해 미국이 뒷배를 봐주는 구와이도(GUAIDÓ) 중 누구를 지지하는가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이다. 주1) 빨간색이 마두로 지지, 파란색이 구와이도 지지, 노란색은 중립이다. 그러나 미국의 지정학 정보 플랫폼인 《스트랫포 Stratfor》에서 나온 인포그래픽에서는 중립인 벨로루시가 마두로 지지로 표시되어 있으며, 또 다른 인포그래픽에서는 인도(India)가 마두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제각기 조금씩 다르다.

 

 

[그림 1] 마두로 지지 VS. 구와이도 지지

사진 출처
https://foreignpolicy.com/…/maduro-vs-guaido-a-global-sc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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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세계가 미제국과 유라시아 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관심사인 중남미 대륙에서 베네주엘라를 지지하는 ‘주요’ 국가가 오직 4개 – 볼리비아, 수리남, 쿠바, 니카라구아 – 밖에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이웃 국가들이 베네주엘라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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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베네주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남미는 약속이나 한 듯이 도미노처럼 다양한 수준의 온건 사회주의 중도좌파 정당들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가이아나, 과테말라, 니카라구아,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 . .

[그림 2] 남미의 핑크 타이드(pink tide)

사진 출처
http://www.geocurrents.info/…/attempts-to-map-latin-america…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89년부터 구소련이 해체되는 지각 변동이 시작됐으니 남미도 그 영향을 받아 일체의 좌파 정당들도 함께 힘을 잃고 소멸의 경로를 밟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는 정반대의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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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 데에는 일차적으로 두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째로는 구소련 붕괴로 인해 ‘자신감’을 얻은 미제국이 그간 남미에서 잔혹하게 벌여왔던 반공주의 노선을 다소 느슨하게 이완시킨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남미 좌파 정당들이 그간 고수해왔던, 정부 전복을 통한 혁명 노선을 폐기하고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 노선을 선회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들 또한 ‘적의 이완’에 부응해 스스로도 느슨하게 이완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반정부 무장 게릴라들이 산에서 내려와 ‘대타협’을 이루고 제도권 정치에 속속 진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이러한 ‘이중적 이완’이 자동적으로 좌파 정당의 부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대다수 국가에서 권력은 여전히 국내 친미파 (금융 우파) 정당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좌파 게릴라들은 대중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고 정치적으로 변두리를 서성거리는 ‘주변적 존재’에 불과했다. 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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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동안 ‘꿔다 놓은 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의 좌파 정당[운동]들에게 약진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국제금융자본이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를 강요한 때문이었다. 미제국은 그간 눈엣가시였던 “공산주의가 스스로 붕괴되고” ‘자유민주주의’의 영원불멸성이 증명된 마당에, 이것저것 눈치 볼 필요 없이 국제 금융과두들에게 전세계 부를 싹쓸이 방식으로 이전시킬 수 있는 경제 약탈 파이프라인을 90년대 남미 국가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깔아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 국제금융 테러조직인 IMF는 80년대 초부터 본격화된 남미의 ‘외채 위기’에 파고 들어 남미의 자원과 부를 체계적으로 이전시키기 위해, 남미 민중을 대상으로 유혈 낭자한 IMF식 ‘지하드(jihād)’를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ㅡ 그로부터 남미 좌파 정권들은 민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 그들은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진입하게 되었으며 순식간에 12개 국가에 좌파 정부가 들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바야흐로 남미 대륙 전체가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집권 기간 동안 ‘핑크 권력들’은 나름 많은 성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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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사회주의’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남미의 ‘핑크 사회주의(pink socialism)’는 미달러 화폐 지배 시스템이나 국제금융 질서 및 국제무역질서 그리고 펜타곤 군사지배의 근본적 작동원리를 혁파하려는 움직임 같은 것은 없다. 고작해야 국가재정에서 차지하는 부채 비율을 축소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한다든지 사회복지 부문을 강화한다든지 하는 ‘분배의 사회주의’에 불과했던 것이다. 게다가 정권을 잡고 나서 국가 내부의 친미, 친IMF 협력 세력의 네트워크 기반을 무너뜨리고 국가를 재조직하려는 생각 같은 건 아예 하지도 않았고, 지정학적 선회를 통한 국내세력 판도 뒤집기 같은 전술도 고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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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미국이 언제라도 야당이라는 ‘개구멍’을 통해 반대 그룹을 조직할 수 있는 정치적 제도를 그대로 온존시킨 채, 초국적 기업이 언제라도 국가경제의 골간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채 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부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지도 못한 채, 그저 ‘분배 지표’의 향상에만 즐거워하는 그런 류의 “사회주의”였다. 국제금융 도당들의 횡포로 인해 남미 민중들이 그렇게 피흘리며 착취와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활개 짓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입안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특히 군사, 첩보, 외교 분야에서). ‘분배’가 좋아지면 그게 민중 지지로 연결되어 선거에서 득표 우위를 점한다는, 대단히 동화적 발상에만 매달렸던 것이다. 이는 미국과 IMF의 레짐 체인지 공격에 무방비 상태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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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핑크 물결의 확산을 막고자 했던 미국은 그 특유의 교활한 전술을 동원하여 몇 년 안에 남미 좌파정권들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대신에 IMF 보이들(boys)에게 권력을 모두 이양시키는 데 성공했다.

즉,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하고 2년이 지난 2015년에 아르헨티나에서 “선거 사기”라고 의심 받는 선거를 통해 IMF 보이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가 집권하는 것을 시작으로 ‘핑크 타이드(pink tide)’를 뒤집어 버리는 ‘IMF 타이드’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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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민주사회주의’의 라틴형 변종인 ‘21세기의 사회주의’는 파산을 맞이했다.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Dilma Vana Rousseff) 대통령은 미국이 원격조종하는 테메르 일당에 의해 부패 혐의로 몰려 탄핵을 당하고 전 대통령 룰라는 72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감옥으로 끌려갔다(12년 1개월 징역형). 지금 현재 국제 외신에 자주 오르락 거리는 아르헨티나, 칠레, 에콰도르도 그간의 정치경제적 성취가 물거품이 되면서, 핑크 타이드 이전으로 모두 원점 복귀했다.

 

 

[그림 3] 남미에서 퇴조하는 핑크 타이드(pink tide)

사진 출처
https://www.mk.co.kr/news/world/view/2018/10/675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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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라틴 아메리카 민중은 다시 원점에 서서 IMF와 그것의 국내 돌격대의 파상 공격에 저항하며 ‘투쟁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칠레 민중들은 IMF 네오리버럴 돌격 보이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án Piñera) 대통령과 맞서 박 터지게 싸우고 있으며(주요 도시에 비상사태를 선포해 군에 통제권을 부여하고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령함), 에콰도르 민중들 역시 라파엘 코레아(Rafael Correa, 재임 2007-2017) 대통령의 후임인 IMF 네오리버럴 보이, “배신자” 레닌 모레노(Lenin Moreno)에 맞서 박 터지게 싸우고 있다(60일 국가 비상사태 선포). 둘 다 공히 IMF 모델을 자국에 심어 나라를 IMF에게 헌납하려고 하니 민중들과 싸움이 불가피하다.

특히 에콰도르의 레닌 모레노는 악질 중 악질이다. 해외 차입이 전혀 필요 없는 멀쩡한 나라에 IMF로부터 42억 달러($4.2 billion)를 빚으로 끌어와 법령 883호(Decree 883)를 통해 나라를 IMF가 난도질할 수 있게끔 길을 터주고 있다(42억 달러는 초국적 기업들로부터 에콰도르가 받기로 되어 있는 각종 과징금 및 벌금의 액수와 동일하다. 받아내서 국가로 환수되어야 할 그 돈을 IMF 대출로 퉁치고 이를 탕감해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대출받은 돈의 대부분은 모레노 일당의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 뻔하다. IMF가 그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다). 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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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만이 3선에 성공해서 2025년까지 집권을 보장 받았으나 선거 결과 발표 후 “성난 야권 지도자들이 지역 선거관리당국[7곳]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한 시위가 이어졌고, 어제 23일 자정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간 상태다.” 야당 반대파의 이러한 반발에 대해 모랄레스 대통령은 ‘쿠데타’라고 주장하며, 이 날 기자회견에서 ‘쿠데타가 진행 중’이며 [친미 친IMF 매국노] 우파가 국제적인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준비한 것으로 보이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말한 상태다. 대단히 어두운 정국이 모랄레스와 볼리비아 민중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이러다 자칫 볼리비아가 ‘제2의 시리아’가 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우려까지 든다. 야당이라는 ‘개구멍’을 통해 미국이 볼리비아에 정치 공작을 전개하고 모랄레스를 제거하겠다는 정치 공작은 너무나 쉽게 예측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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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에서 2019년 올해 대선을 이미 치루었거나 앞으로 치룰 예정인 나라는 모두 6개국이다. 이미 치룬 나라들 결과를 보면, 엘살바도르(2월)는 니이브 부켈레(37세)가 당선되었는데, 그는 우파 정당 국민통합대연맹(GANA) 후보였으며 팔레스타인 계열의 산살바도르 출신의 기업가다(전 서울시장 오세훈의 이미지가 겹친다). 과테말라(8월)에서는 보수 성향의 알레한드로 히아마테이가 당선되었다. 둘 다 ‘친IMF파’다. 파나마(5월)에서는 중도좌파 라우렌띠노 꼬르띠소(Laurentino Cortizo)가 당선되었다. 핑크 정치인이다. 그리고 어제 볼리비아에서는 모랄레스가 당선되었다(그는 차베스 현신처럼 보인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나라는 둘이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다. 둘 다 10월 27일에 대선 1라운드가 치뤄진다. 아르헨티나는 ‘IMF 라틴 돌격대장’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현 대통령과 중도 좌파 핑크 정치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와 부통령 러닝메이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이 한 팀이 되어 맞붙는다. 아무래도 후자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본다(부정 선거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인 호세 무히카(José Mujica, 전직 게릴라 출신. 광역전선 소속)의 나라 우루과이에서는 집권 광역전선(FA)의 다니엘 마에르티네즈(Daniel Maertinez) 몬테비디오 시장과 다수의 경쟁자가 맞붙는다. 마에르티네즈의 당선이 유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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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대국인 브라질의 현 대통령은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다. 울트라 ‘친IMF파’에다가 울트라 ‘친이스라엘’ 정치인이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친팔레스타인, 친이란, 반시오니즘 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는데 보우소나루가 이를 뒤집은 것이다. 주5) 따라서 그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전역에서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대통령 임기는 2023년까지다.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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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와중에 외국의 친구가 이런 소식을 전해왔다.

“칠레에서 프랑스어로 방송하는 사회학자의 유투브 방송을 봤어요. [지금 칠레 대중의 투쟁은] 프랑스 노랑조끼와 같은 ‘민중봉기’네요. 교통비와 전기요금 인상이 촉발 동기지만 신자유주의가 이미 인민들 골수를 빨고 있은 지 한참 됐다네요. 모든 게 이미 민영화되었고 병 있는 사람들은 치료도 못하고 자살해버린다고 하네요. 탄압은 매일 조직적으로 변하는데 민중은 조직 없이 각 분야에서 파업으로 저항하는 중이랍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고,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다들 밤에도 길거리에 나와 있어요! 기득권들은 민중의 [폭발적] 저항을 처음으로 직면하면서 기겁하고 있다고 해요. 칠레에 이렇게 민영화가 진전되어 있는지 몰랐어요!”

 

2019. 10. 23
「칠레 상황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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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에밀리아 티쥬(Emilia Tijoux)는 현재 칠레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IMF 투쟁과 탄압 및 정치 전망을 분석해 준다.

그녀는 국제적 연대의 움직임이 필요하며 이 유투브 영상을 공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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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남미에는 핑크 타이드의 퇴조 이후에도 버티고 있는 저항의 축은 베네주엘라와 볼리비아 그리고 쿠바와 니카라구아 정도가 있다. 제2의 핑크 타이드가 올 것 같지도 않지만, 설령 그런 시기가 또 다시 도래한다고 해도 IMF 글로벌 금융 폭정으로부터 남미를 지켜내는 것은 역부족으로 보인다. ㅡ 칠레와 에콰도르에서 지금 현재 벌어지는 잔혹한 ‘IMF 전쟁’을 보고 있노라면, 가까운 시일 내에 대륙 전체를 ‘반IMF 저항 요새’로 만들지 못한다면 머지 않아 라틴 아메리카 대륙 전체는 병이 들어도 치료를 못 받고 자살해 버리는 칠레 인민의 삶처럼 죽음의 나락으로 곤두박질 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ㅡ [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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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주1)
https://foreignpolicy.com/…/maduro-vs-guaido-a-global-scor…/
FEBRUARY 6, 2019
「MADURO VS. GUAIDÓ: A GLOBAL SCORECARD」
BY AMY MACKIN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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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https://www.e-ir.info/…/the-rise-of-the-contemporary-left-…/
DEC 15 2013
「The Rise of the Contemporary Left in Latin America」
by NESSA KENN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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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https://www.washingtonpost.com/…/was-argentinas-election-s…/
November 6, 2015
「Was Argentina’s election stolen? Here’s how you can tell」
By Francisco Cantú and Sebastian M. Saie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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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https://www.globalresearch.ca/ecuador-imf-killing-s…/5691857
October 14, 2019
「Ecuador – and the IMF’s Killing Spree」
By Peter Koen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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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https://www.atlanticcouncil.org/…/israel-s-latin-america-p…/
MON, APR 8, 2019
「Israel’s Latin America push」
by Grace Wermenb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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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