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완정 시론

I 꾸틴과의 대화 : 터키(Turkey)의 ‘이슬람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I

신현철(꾸틴)/국제정치 대표작가

 

☛ 대화 내용 요약

이 대화에서는 ‘근대적 세속주의’라는 것이 그럴싸한 합리적 외양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늘’을 섬기며 ‘경전(canon)’에 입각해 ‘성인’의 삶을 추구하고 끊임없는 ‘내적 수양’과 ‘성찰’을 통해 ‘이기(利己)’를 통제하고 (아메리칸 인디언들 같은) 다채로운 ‘영적 인간’으로 상승하는 길을 차단하고, 소비와 감각적 쾌락에만 탐닉하는 ‘가축 인간(cattle humans)’을 양성하기 위한 ‘반율법주의 (antinomianism)’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으며, 한사코 ‘전통’을 무너뜨리려는 ‘글로벌 맘몬 왕조’의 전략적 목표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대화는 “근대 혁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신학적 기반이 전혀 다른 두 왕조 즉, “맘몬이 신이다”라는 ‘맘몬 대왕정’이 하늘(天)을 경외하는 유럽 ‘소왕정들’의 모순과 무능을 파고들어 내부에서부터(혹은 사전에 기획된 대전쟁의 후유증의 여파를 이용해, 혹은 이 둘을 조합해) 파열시켰다는 구체적 주장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전지구적으로 권력영토를 넓혀가는 유럽 맘몬 제국의 ‘영구혁명’이 “근대 혁명”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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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참깨군:
안녕하십니까, 꾸틴 선생님! 지난 시간에 이어 ‘터키 현대 정치사’ 얘기를 계속해서 부탁합니다. 저번 시간에 선생님께서는 오스만 제국이 붕괴하고 나서 사바티언-프랭키즘(Sabbatean-Frankism)을 — (정통 랍비 유대교에서는 ‘선행(善行)’을 축적하면 메시아가 도래한다고 가르쳤던 반면에 유대교에서 파문을 당한 이들 이단 지파는 어차피 우리가 성인(saints)이 되기는 불가능하니 차라리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악한 행위를 ‘거룩하고 신성하게’ 저질러 메시아를 ‘빡치게 해서’ 그를 불러내자는 신학 이론이다) — 신봉하는 비밀 유대 집단인 ‘돈메(Dönmeh)’가 권력을 접수하여 터키를 ‘공화국’으로 만들고 이전의 ‘이슬람적 정체성’을 탈각시키고 ‘세속주의’를 강요하는 것까지 말씀해 주셨는데요, 생각해보니 그건 마치 프랑스 혁명 이후 ‘카톨릭 프랑스’ 혹은 ‘앙시앙 레짐(구체제)’이 붕괴되면서 그 대체 이념이자 “신흥 종교”라 할 수 있는 ‘세속주의’의 방향으로 가는 것과도 무척 흡사합니다. 물론 양자 간에 시간적 격차가 크게 나긴 하지만 . . . 어째튼 대단히 신기하게도 두 개의 다른 문명권의 역사 진행이 하나로 수렴되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걸 그냥 ‘역사 보편성’으로 인정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역사를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는 거대한 ‘배후 추진세력’ 혹은 ‘작전세력’이 별도로 있는 건지 궁금해 집니다. 우선 이 부분부터 말씀을 해주시죠.

꾸틴:
네, 알겠습니다! 일단 먼저 프랑스를 보자면 . . . 협의의 프랑스 혁명인 1789년에서 시작하여 ‘공화정’과 ‘왕정’이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격렬한 투쟁 양상을 보이다가, 그로부터 86년이 경과된 시점인 1875년 제3공화정이 수립된 이후에야 비로소 공화파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유민주주의’체제가 확립됩니다. 세속주의 체제 이행에 거의 한 세기에 육박하는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그리고 이 ‘제3공화정’은 이후 1914년 1차대전 개전 전까지 70년 간 존속되는데요 . . . 이러한 프랑스 공화국 수립의 장기 역사를 감안해 보면, 터키는 상대적으로 이런 과정을 초압축적으로 진행시켜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자마자 권력의 공백을 ‘외부 세력’이 쑤시고 들어가 매우 속도감 있게 전광석화처럼 공화국의 수립을 추진해 버립니다. 다시 말해, 메흐메트 6세(재위 1918-1922)가 폐위당하고 나서 623년 간 지속되었던 이슬람 제국이 해체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1923년 터키 ‘세속주의 공화국’을 건국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보여주었던 양 체제 간에 벌여졌던 ‘혈투’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구 그냥 스무드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건 한편으로, 오스만 제국의 붕괴가 전적으로 ‘구린내 나는’ 이슬람으로부터 기인한 것처럼 프로파간다를 치면서 [이슬람=패배와 퇴행 / 반이슬람 근대 세속화=승리와 진보]라는 공식을 터키 국민에게 박아 넣으려고 무던히도 애쓴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실 터키의 ‘케말리즘’은 프랑스의 ‘세속주의 공화종교’와 동의어입니다. 둘 다 똑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프랑스는 카톨릭의 대체 신념 체계로 ‘세속주의 공화종교’를 수립한 것이고 터키에서는 ‘케말리즘’이 그 역할을 떠맡아 ‘구리구리한’ 이슬람을 대신하는 근대적 신념 혹은 근대적 스마트 정체성으로 부각시킨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근대화”라고 통칭되는 신흥 ‘세속주의’를 무기 삼아 불도저식으로 기존의 전통적 정체성을 모두 갈아 엎어버린 것입니다. 고층 아파트를 짓기 위해 구시가지를 철거하듯이 말이죠.

이러한 전통 정체성 뿌리뽑기와 세속주의 이식은 특정된 어느 지역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차 대전 이후 유럽 기독교 왕정들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입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물음은 바로 이겁니다. 온갖 문명권을 기둥처럼 떠받치고 있었던 ‘정신적 반석’인 카톨릭, 이슬람, 힌디즘, 유학(Confucianism) 등등을 왜 뿌리부터 완전히 뽑아 놓으려고 했을까??? 그런 것들이 실제로 인민에게 중대한 해악을 끼친 것을 간파한 제국주의 세력이 식민지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서 . . . 또 오랫동안 그런 그릇된 신앙[신념]들로부터 받은 피해를 안타깝게 여겨서 올바른 방향으로 그들을 계도하기 위해 그랬을 것 같지는 않고요 . . .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대체 정체성’으로 채택한 것이 다름 아닌 ‘세속주의’인데 다른 무엇도 아닌 그것을 꼭집어 특별히 강요했던 이유는 과연 뭘까요. . . 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물론 ‘세속주의(secularism)’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겠죠.

아시다시피 우리 역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보다 근원적으로 들어가 우리는 ‘전통의 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신념 체계로서 ‘세속주의’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혹자는 우리의 전통적 사유인 유학(儒學)은 다른 종교와 달리 ‘비판성’과 ‘합리성’을 내재적 속성으로 가진 ‘세속주의’가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따라서 유학은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 같은 일신교와는 분리의 선을 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유학 자체가 고전적 세속주의이기 때문에 전통 종교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근대 세속주의를 주입한다는 이론 틀이 우리의 경우 잘 들어 맞지 않는 것이 아니냐하는 의문은 나름 타당성이 있습니다.

“유학 자체가 세속주의 아냐? 꺄 우 뚱 . . . .”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유학 이해는 일면적인 것입니다. 유학에서도 분명히 ‘천(天)’의 개념이 있고 ‘하늘’을 섬긴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좀 길지만 아래 인용문을 읽어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장태(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의 「유교의 천(天)•상제관(上帝觀)」이란 제목의 주제 발표문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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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유교의 기본 성격을 일반적으로 현세 중심적이고 도덕적이라 지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교가 현세의 도덕 규범에 속박되어 있는 사상인가 궁극적 존재에 대해 확고한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신념인가의 문제는 좀더 깊은 통찰을 필요로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교 사상의 깊이에는 천(天)-상제(上 帝) 내지 태극(太極)-이(理) 등의 궁극적 존재에 대한 이해 속에 종교적 신념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유교는 합리성을 존중하는 종교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으며,합리적이기 때문에 비종교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유교(儒敎)는 언제나 하늘〔天〕과 인간〔人〕을 두 축으로 구성되어 왔고, 한 축이 전면에 나타날 때 그 이면에 다른 축이 버텨 주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 축에 대한 해석은 다른 축에 대한 해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유교 사상사는 하늘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역사이기도 하다. 상고대(上古代)의 이해는 오경(五經)을 통해 하늘〔上帝-天〕에 대한 유교적 이해가 정착되어 있고, 사서(四書)는 춘추전국 시대 공자에서 맹자에 이르는 유가(儒家)에 의한 하늘의 이해를 제시해 주고 있다. 송대(宋代)의 도학(道學)ㅡ성리학 (性理學)과 조선 시대의 도학(道學)은 천(天) 개념을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신념 기반을 더욱 확고하게 정립함으로써, 후세의 해석에 가장 강한 전통적 권위를 확보하였다. 나아가 근세의 실학과 고증학은 새로운 해석의 시도로 도학적 해석에 도전하였다.

송대(宋代) 도학(道學)이 천(天) 개념을 합리적 •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한 것은 천(天)을 신앙적 대상으로부터 해방시켜 철학적 인식의 대상으로 발전시켰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실제에는 오히려 천을 합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철학적 사유를 더욱 철저하게 추구하였다기보다는 도학(道學)의 천에 대한 신념을 철학적 논리로 강화함으로써, 그 신앙적 기반을 더욱 확고하게 정립하였던 것이라 보는 것이 온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논고에서는 유교의 천(天)ㅡ상제(上帝) 개념을 분석하면서,아울러 이와 관련한 유교의 종교적 성격을 이해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다음의 몇 가지 문제를 검토함으로써 접근하고자 한다. 곧 (1)천-상제와 연관된 유교의 궁극 존재에 대한 명칭과 그 성격을 파악하고, (2)천-상제의 기본 성격과 기능으로서 주재(主宰)와 조화(造化)의 작용을 중심으로 분석하며, (3)천-상제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일치의 실현을 위하여 성(誠)과 경(敬) 등의 수양론적 방법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 ★《유교 사상 속에서 천상제는 결코 하나의 추상적 관념으로 머물 수 없으며, 인간의 구체적 삶과 행위를 통하여 드러나고 실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유학(先秦儒學)은 물론이요, 천의 이법적(理法的)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성리학에서도 그 합리성과 신앙적 성격이 복합적으로 추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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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현대사에 국한지어 말을 해보면 세계1, 2차 대전을 경과하면서 실제로 ‘구체제’인 왕정과 왕정을 기반으로 하는 구제국(old empires)이 도미노 식으로 와르르 붕괴되면서 그 자리에 “민주공화국”이 착 착 들어서는 것을 생생히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이행을 아무런 의심없이 그냥 ‘역사의 합법칙적 전개’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머리 속에는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이 각인되어 있는 거죠.

“마자 마자! 왕과 귀족 및 성직자 나부랭이들만 배불리 먹고 딩가딩가 자유를 누리며 사는 왕정은 극혐이야, 백성들은 지옥이었을 그런 체제 . . . 너무 너무 꼴보기 싫어! 그런 퇴행적 정치체제는 반드시 무너져야 돼! 잘들 무너진 거야 . . .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근대적 민주주의 공화국이 지금처럼 보편적으로 들어서니 얼마나 좋아! 재수 없는 세습왕도 없어지고 ‘왕(대통령)’을 우리가 직접 뽑을 수도 있고, 권력의 남용을 막을려고 입법/사법/행정 3개의 영역으로 권력을 마른 오징어 찟듯이 쫙 쫙 찢어놓는 ‘견제와 균형’의 지혜까지 발휘하여 ‘독재’가 들어서는 걸 막게 했으니 이 얼마나 민주적이야!!! . . . 정말 누가 만들었는지 근대 민주주의 시스템은 참으로 ‘걸작’이야! 아무래도 ‘천재’가 만든 거 같애. . . 암, 그렇구 말구!”

참깨군:
‘근대의 기획’ 혹은 ‘근대 자유주의 통치체제의 기획’에 뭔가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 비판적인 연구자들은 방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데까지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거기서 연구를 더 진척시켜 ‘세속주의’의 출처를 근원적으로 밝히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세속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 자유주의 통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라는 토대 위에 ‘대의제 민주주의’를 살짝 토핑처럼 얹어놓은 뭐 그런 건축물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결국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동안 ‘정치권력(왕권)’에 눌려 행동에 제약을 받던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전복시킨 일종의 ‘쿠데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꾸틴:
맞습니다! 나름 예리한 관찰처럼 들리는군요. 일종의 ‘권력 전복’이죠. “근대 시민혁명”의 본질이 바로 그겁니다. 17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비록 신민과 영토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국가나 제국 전체의 운명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버린 ‘유럽 최강 경제권력’이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을 언터쳐블 ‘맘몬 왕조’로 탐바꿈시키는 ‘외연적 팽창’을 위한 정치군사적 시도가 바로 “시민혁명”입니다. ‘맘몬 대왕조’가 유럽 및 기타 지역에 난립한 소왕조를 무너뜨릴 목적으로 일으킨 전쟁이죠. 사실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말은 너무 경제적 측면만 부각시킨 개념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프랑스 부르주아지’가 혁명을 기획한 것도 아니구요 . . . 위에서 언급한 “초국적 S-F 머니킹즈”가 시민혁명이라는 활극을 총체적으로 지휘한 정치 주체입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주로 그들이 ‘고용한 떡대들’을 말하는 겁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 투사”임을 자임하며 가두 투쟁이 있을 때마다 나타나는 특수 시위부대가 있습니다. 친미 정치인(빅토르 유셴코)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려는 목표 아래, ‘시민’을 가장하여 살벌한 시위를 하는 훈련받은 특수 용병들입니다. 각종 군사 스킬을 이용해 시위를 극렬한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죠. 지금이나 프랑스 혁명 당시나 그런 ‘떡대들’이 도시를 휩쓸고 다니면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다니는 거지요. 물론 부화뇌동하는 빠리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니죠. 그런 사람들은 어디 가도 있게 마련이죠. 그러나 얼마 후 자신들이 앙시앙 레짐 붕괴 이후 몰아 닥칠 본격 ‘테러 통치’의 희생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낭만 가득한 심정으로 떡대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보조를 맞추곤 했습니다. 결국 공화파의 ‘방데 학살’로 인해 “프랑스 혁명”의 반인민성과 테러적 특징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인민의 해방을 위해 혁명을 한다며 거꾸로 인민을 마구 잡아 죽이는 기괴한 혁명들은 정교하게 감추어진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포착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기에 오늘처럼 ‘공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에도 반미 정권 레짐 체인지용으로 기획하여 벌이는 가짜 혁명인 ‘색깔 혁명(color revolutions)’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것이 “민주주의 투쟁”인 줄 알고 열심히 인민을 ‘동원(mobilization)의 졸(pawn)’로 만들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활동가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아니겠습니까 . . . 다아~ 과거에 어디선가 써먹던 수법을 재탕삼탕하여 울궈먹는 방식이 혁명 영역에서도 난무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어째튼 이러한 “시민혁명”과 공화국 모델은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판박이처럼 반복되며 그 입지를 확실히 다지게 됩니다.

근대 세계 이래 지배자 자리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경제권력인 ‘초국적 금융 대마왕(머니킹즈)’ 입장에서 걸리적 거리는 왕권들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기존 왕조(영국의 스튜어트/프랑스의 부르봉/오스만의 칼리프 등등)를 ‘절대악’으로 악마화시키는 기초 프로파간다 작업 이외에도, 왕권을 떠받치고 있는 ‘이론적 서까래’(왕권신수설)와 ‘종교적 서까래’(기독교)마저 뿌리째 뽑아내는 작업이 절실히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행여라도 생길지도 모르는 집단저항의 ‘정신적 기초’를 근원적으로 말살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기억의 말살’ 작업인 거죠. 그러나 말이 쉽지 기존 전통을 일순간에 송두리째 뽑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엎치락뒤치락 ‘정체성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거죠. 위에서 언급한 프랑스의 경우처럼 장장 86년이나 질질 끄는 장기전이 되는 경우도 있고 터키처럼 아주 ‘속전속결’로 한 방에 전쟁이 끝나는 경우도 있고 . . 그건 나라마다 다양합니다.

참깨군: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기는데요, 근대에 벌어진 왕권과 경제권력 간의 투쟁으로 결국은 경제권력이 승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제권력은 ‘부르주아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구요 . . . 그럼 이건 기존의 <’시민혁명’ = ‘부르주아 혁명’>과 다를 바가 없는 거 아닌가요? 선생님께서 용어를 좀 다르게 사용해서 그렇지, 결국은 같은 얘기 아닙니까?

꾸틴:
아주 중요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계급 정치학에서는 이 당시 경제권력을 “부르주아계급”으로 통칭합니다. 그러나 이는 크나큰 오류 . . . 아니, 오류를 넘어서 이 개념이 내포하는 함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하는 규정 짓기에 따라 ‘지배의 저항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글로벌 지배를 측면에서 돕는 ‘무의식적 급진주의 도우미’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막대한 중요성을 가지는 ‘혼동의 메트릭스’가 부비 트랩처럼 설치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치노선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분기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계급”이라는 용어가 주는 함의가 그 대상을 적절히 표현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주아계급’ 하면 프롤레타리트계급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이해하여 자본가계급인가부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부르주아계급 또한 프롤레타리트계급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독자적 역량을 갖춘 정치적 주체가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사회 전반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시적 차원에서 보면 그들은 ‘결단하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그들 또한 ‘장기판의 졸(卒)’ 혹은 ‘시스템의 좀비’에 불과합니다. 쉽게 말해 편의점 알바생이 주인을 부르주아계급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적개심을 갖는 코믹한 상황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악덕 주인에게 적개심을 가지는 것을 탓할 수야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편의점 주인 또한 가맹 본점의 하위 파트너에 불과한 거 아니겠습니까?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 하는 . . .

문제는 피라미드 최상층에 있는 ‘결단하는 존재’ 혹은 ‘빅 브라더’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단지 경제적 우위를 가진 상대적으로 힘쎈 존재로 파악하는 ‘경제주의적 관점’으로는 그들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규명해 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경제적 경계선을 넘어서는 다른 영역의 지정학적, 신학적 전술-전략적 목표를 이해할 길이 묘연해지기 때문입니다. 적(foe)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면서 적과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건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싸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맨날 이렇게 지고 사는 겁니다.

참깨군:
흥미롭군요! 저번엔가 언제 선생님께서 제게 머니킹즈인 ‘런던 머니 파워(London Money Power)’의 존재에 대해 잠깐 얘기해준 적이 있었는데요, 프랑스 혁명 당시 유럽에서 국경을 초월하는 광범위한 상업 네트워크를 가진 세력이야 뭐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로스차일드 패밀리’로 대표되는 범유럽 금융권력을 ‘경제권력’에 대입시켜 보면, 당시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6세를 잡아 죽인 자들이 그 당시 단순히 돈 좀 있는 신흥 부자들이나 혹은 프랑스 내의 자본가집단이 아니라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르주아계급이 아니라 — 전유럽을 그물망처럼 촘촘히 장악한 초국적 네트워크를 촉수처럼 가진 ‘초국적 맘몬 왕조’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꾸틴:
맞습니다! 1793년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를 죽인 자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프랑스 국내의 자생적 부르주아계급의 정치적 대변자인 ‘자코뱅’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그저 무대의 배우처럼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들 역시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다음 주연 배우에 의해 무대에서 숙청 당할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1794년 ‘테르미도르 쿠데타’에 의해 로베스피에르가 숙청당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국에서 ‘수평파(Levellers)(당시 최고의 급진파)가 의회파 수장 올리버 크롬웰에게 숙청당한 것과 동일한 패턴입니다. 이들은 주도적으로 찰스1세 국왕시해의 역할을 맡아 그들의 ‘대의’에 몸바쳐 충성하지만 결국 자기들도 시해당하는 운명을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코뱅이나 수평파나 모두 ‘맘몬 왕조의 졸(卒)’로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팽’ 당하게 되는데요. 유럽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급진주의를 추적하면 그들의 일반적 궤도를 알 수 있습니다. 맘몬 왕조에 고용된 초일류 전략가 입장에서는 굳이 ‘일당’을 주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맘몬체제 구축에 방해가 되는 잡다한 왕정들을 적출하는데 막대한 공헌을 하는 이 급진 세력들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자신들의 정치행위가 ‘자유’와 ‘평등’과 ‘진보’에 입각해 있다고 믿으며 물불 안 가리고 헌신적 희생을 공짜로 해주는 유럽 급진주의 세력을 맘몬 왕조는 적절히 이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만하면 됐다 싶은 지점이 오면 이제 거꾸로 그들을 가차없이 짓밟습니다. 그게 싸이클입니다.

자코뱅 무리들은 왕도 죽이고 성직자도 닥치는대로 죽이고 그리고 ‘방데 학살’에서 보듯이, 귀족과 성직자들이 잘 따져보니 농민의 등골을 빼먹는 착취자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 해결사이자 조정자이고 농민들의 귀감이 되고 존경을 받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반혁명 세력’이라며 죽이고 그것에 항의하는 농민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어린이, 여성, 노인까지 모두 살육하는 모더니티 충만한 근대적 학살극을 벌였습니다. 그러니까 근대 혁명이라는 것이 결국 알고 보면 평소에는 불가능했던 ‘테러통치’를 통해 맘몬 왕조의 저항세력을 몰살시키는 계략인 것으로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참깨군: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선생님! 터키 얘길 한다면서 프랑스 혁명만 진탕 얘기하고 끝나네요.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을 요약해 보면 . . . 결국 서구 근대의 추진세력은 초국적 머니킹즈 세력이 사바티언-프랭키즘(Sabbatean-Frankism)인가 뭔가 하는 사악한 신학적 교리를 밑에다 깔고 ‘순진하고 낭만적인’ 급진세력을 이용해 정권전복을 한 셈이 되는군요. 제 요약이 너무 단순무식한 측면이 있겠지만 아무튼 “프랑스 혁명”에 많은 의심을 가지고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터키의 케말리즘은 “프랑스혁명”의 신흥종교인 세속주의를 ‘복붙’한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터키와 프랑스가 이렇게 연결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케말리즘으로 기형화된 터키가 자기형상 기억처럼 이슬람을 찾아 회귀하는 정치적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잘 나가던 케말리즘에 왜 파열이 생긴 건지, 4번의 쿠데타를 배후조종한 터키의 심층국가(Deep State) 세속주의(케말리즘) 세력이 ‘에르게네콘(Ergenekon) 무기 보관 사건’을 통해 이슬람 세력에게 박멸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4번의 케말리즘 쿠데타를 뚫고 5번째 자기 정립을 하는 ‘4전 5기’의 이슬람 세력(무슬림형제단)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터키의 이슬람으로의 회귀가 지정학적으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소상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순한 정치혁명이 아니라 서구 머니킹즈가 구축한 일극적 체제를 떨쳐버리고 다극적 문명으로 복귀하는 ‘문명 혁명’을 우리의 토양에서 어떻게 구체화 시켜낼 지에 대해서도 화두를 던져주시기 바랍니다.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꾸틴:
사회자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제 자체가 복잡하고 어려운 면이 많아서 그리고 설명이 원활하지 못해서 듣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것으로 봅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ㅡ [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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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