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완정 시론

I 국제금융구조 이해를 위한 시론 ㅡ 3 of 3 마지막 글 I

신현철

 

I 국제금융구조 이해를 위한 시론 ㅡ 3 of 3 마지막 글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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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3회에 걸쳐 다소 긴 글 연재를 마치게 되었다. 홀가분하다. 지금 이 글을 다시 보니 글을 쓸 당시에는 북유럽 노르딕 모델국가가 행한 금융위기 극복 노력을 칭송하는 차원에서 머물며 그 이상 경제 대안을 구체적으로 전개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필자가 당시에 무슨 ‘스웨덴 빠’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글의 주제 범위에 맞게 썼을 뿐이다.

 

2
그러나 현재 국제경제는 머릿속 대안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폰지 사기에 다름 아닌 국제금융구조는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미 달러 순환 메커니즘 자체가 이제는 삐걱거리는 차원을 넘어 아예 노골적으로 붕괴 수순을 밟고 있다 실물경제에 기초하지 않은 공중부양 카지노 경제는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 같다.

 

3
최근 미 달러 몰락과 신흥 금융 질서를 가장 쉽고 생생하게 써 놓은 글을 하나 추천한다. 필자의 주절거림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설명이 명쾌하다. 이로써 국제금융의 개략적 이해라는 최초 목표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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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Is Dedollarizing


July 19, 2019
「The World Is Dedollarizing」
By Peter Koen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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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 경제위기 발생의 원인에 대한 쟁점과 교훈」
신현철
연세대 사회학 학술대회(2016)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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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세 번째로 살펴보게 될 스페인 또한 재정위기의 전체적 경로는 그리스와 아일랜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화된 자본이 부채에 의존해 부의 축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체제 작동원리는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생산적 투자영역이 아닌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의 거품 만들기에 부채를 대량 조달함으로써 구축된 ‘부채 주도의 성장’이 순식간에 무너진 상황에 해당한다.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스페인은 2008년 위기 이전에 독일보다 더 건전하게 국가재정이 운영됐다는 점이다. 아래 [챠트 4]가 이를 말해준다.

[챠트 5]는 스페인의 건전한 재정 운용에 걸맞게 2008년 금융위기 전해인 2007년의 국가부채 규모가 GDP 대비 42.3%라는 수치를 보여준다. 이는 신 재정협약이 제시하는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인 60%를 한참이나 밑도는 수치일 뿐 아니라, 2007년 독일의 국가부채가 64.9%라는 점을 참작한다면 유로존 국가 중에서 재정 건전성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고 볼 수 있다. 스페인을 기준으로 볼 때, ‘방만한 재정운용’ 국가는 독일을 비롯한 여타 유로존 국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운명의 2008년이 오기 전에 스페인은 초우수 재정 건전국가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러나 투기 거품으로 축적된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면서 은행위기가 오고 그것이 재정위기로 전화되고 외국자본이 일시에 철수하고 국채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조차 어렵게 되어 결국 구제금융으로 향하게 되는 판에 박힌 부채•버블 과잉경제의 붕괴와 긴축재정이라는 수렁 속으로 과거 최우수 재정 건전국가인 스페인도 예외 없이 진입하게 되었다.

 

[챠트 4] 독일, 그리스, 스페인의 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의 변화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챠트 5] 유로존 평균과 비교한 GDP 대비 스페인 부채 규모 변화

 

스페인이 구제금융에 이르게 되는 경로를 차례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박형준, 2012 : 7).

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금융공황
➁ 그 여파로 스페인 부동산 가격 하락, 건설경기 위축
➂ 악성 채권으로 은행권 부실화
➃ 지방정부 재정 상황 악화
➄ 중앙정부의 금융지원 강화가 오히려 국가적 재정위기로 확대
➅ 성장전망 취약과 불확실성 확대로 외국자본 철수
➆ 추가로 부채를 늘려 기존 부채를 갚아야 하는 악순환
➇ 자력으로 채권발행 한계점 도달, 구제금융 불가피

스페인 역시 그리스, 아일랜드가 걸어온 구제금융 경로를 거의 흡사하게 거쳐왔지만, 부동산 투기와 건설경기 호황이라는 특수성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유로존 가입 이전부터 개방화와 자유화 정도가 높았고, 유로존 가입 이후에는 은행차입과 국채 매각을 통해 외국자본이 가일층 유입되었다. 그러나 유입된 자본은 경쟁력이 취약한 산업부문에 투자되기보다는, 국제 경쟁에 덜 노출된 부동산 및 서비스 등 비교역재에 집중되었다. 따라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부터 양 국가는 건설 붐이 경제성장을 견인했다(유승경, 2012). 다시 말해, 차입된 자본은 국가 경제의 균형발전을 위한 전략적 산업 육성과 같은 중장기적 계획에 배분되지 않고 오로지 즉각적인 이윤을 추출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을 택해 부동산 부문이나 금융서비스 등의 비제조업 분야로 흘러들어 자본의 왜곡된 배분을 초래했을 뿐이다.

네 번째 국가인 포르투갈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2008년 이전까지 장기적인 경상수지적자와 재정적자를 겪어 왔고, 따라서 외국자본 유입으로 적자를 보전해왔으며 그 결과 국가부채는 지속해서 완만하게 상승해 왔다. 게다가 경제성장의 핵심적 저해 요소로 거론되는 낮은 노동생산성, 임금의 하방 경직성, 미흡한 인적 자본, 낮은 R&D 투자 등은 개선되지 않은 채로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은행업과 금융부문은 상대적으로 견실하게 운영되었으며 아일랜드와 스페인과 같이 부동산 거품은 존재하지 않았다(박형준, 2013 : 45-46).

그러나 [챠트 6]과 [챠트 7]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포르투갈의 재정적자와 부채 상승은 남유럽 구제금융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2008년을 기점으로 급상승하게 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포르투갈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챠트 6] 포르투갈 재정적자와 총부채 추이 변화

 

[챠트 7] 유로존 평균과 비교한 GDP 대비 포르투갈 부채 규모 변화

 

포르투갈 경제는 사실 1990년대 후반에 높은 성장을 이룩하면서 실업이 줄어들고 EU 평균 수준을 따라잡으려는 노력이 성과를 보였다. 유로화로 가는 길목에서 즉, 유럽 경제 화폐동맹(the European Economic and Monetary Union) 두 번째 단계에서 명목이자 및 실질이자가 낮아짐에 따라 포르투갈은 공공재정 안정화와 채무 축소를 위한 구조개혁 기회를 얻었으나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재정을 팽창적으로 확장함으로써 민간•공공 영역 부문에서 채무가 급증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재정 건전화를 위한 재정준칙이 정책적으로 실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럽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나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 같은은 유럽 기구들의 포르투갈에 대한 평가와 모니터링은 낙관으로 일관했거나 정확하지 못했다. 특히 안정•성장 협약(the Stability and Growth Pact, SGP) 초기 버전의 주요 목표는 공공부문 적자에만 치중하고, 공공부채를 살피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탓에, 포르투갈의 잠재된 거대 규모의 ‘공기업 부채’를 간과했으며, 따라서 국내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가 되었다(Pereire & Wemans, 2012 : 24-25).

결국 포르투갈은 유로존 편입으로 일시적으로 낮은 금리를 이용해 자금을 유입할 수 있는 장점을 누리다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그러한 자금순환이 불가능해지자, 2011년 5월 780억 유로(약 111조 2천 700억 원)의 구제금융안을 수용하게 되었다. 지속 불가능한 국제금융 시스템 속에서 취약한 경제구조와 저조한 성장률을 가진 유럽 주변국들 중에서도 주변국인 포르투갈은 국제분업에서 차지하는 낮은 지위와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국제신용을 통해서만 자금조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아랑 리피에츠, 1991 : 169),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에 재정 건전성 향상을 위해 자구적 노력을 했다면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는 가설은 증명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1900년대 북유럽 국가들이 보여준, 금융 자유화로 인해 자국 경제를 위협하는 금융불안정 위기에 대한 ‘능동적 구조개혁’을 단행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구제금융을 ‘내인론(內因論)’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중층적으로 구조화된 가공적 국제금융 메커니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견해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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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유럽에는 독일처럼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자본을 집중시키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남부 유럽처럼 적자를 가질 수밖에 없는 국가들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유로존에 묶인 적자 자본 차입국들은 긴축재정을 상시화해서 자국의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을 후퇴시키고 채무변제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EU와 유로존이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으로 가기 위한 공존의 공간이 아니라, 부채를 통한 금융자본의 착취의 공간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살펴본 남유럽 4개 국가의 재정위기를 살펴보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일 수밖에 없다. 2012년에 제출한 보스턴 컨설팅 자료에 따르면 유로존의 총부채 규모는 유로존의 GDP의 약 60%에 해당하는 약 5조 유로에 달한다고 한다(유승경, 2012: 282). 애초 유로존이 출범된 계기가 달러 중심의 패권적 국제 통화질서에 대한 ‘수정주의적’ 대응의 필요성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브레턴우즈체제의 붕괴로 야기된 국제통화질서의 대혼란으로, 변동환율에 근거한 달러 자본의 금융 세력화가 유럽국가들에 끼쳤던 거시 경제적 피해나 경제적 교란을 제거할 것이라는 목표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부채와 구제금융 그리고 혹독한 긴축만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배병인, 2011: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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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국과 남유럽 국가들의 금융위기 대응

지금까지 살펴 본 남유럽 4개 국가의 재정위기 발생 원인은 제각기 차별적인 속성을 가지고 전개되었지만, 그러나 경제위기의 중핵을 이루는 보편적 속성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장시복은 미국발 세계 대공황이 가지는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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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공황은 자산시장 붕괴, 금융공황, 실물공황과 국가채무위기가 결합한 ‘복합공황’이다. 이번 대공황은 자산시장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발단되어 일어났지만, 곧바로 전 세계 금융시장과 실물부문으로 전이되었다. 금융시장에서 공황은 유동성 위기와 신용위기, 지급불능위기와 은행위기, 그리고 결국에는 금융시스템 붕괴 직전까지 가는 상황으로 심화했으며, 실물부문에서는 생산위축, 자산시장 붕괴에 따른 소비 위축, 대외적으로는 수출과 수입의 하락을 동반하였다. 따라서 이번 공황은 자산시장의 붕괴, 금융공황과 경기 위축이 중층적으로 결합하여 거대한 파괴력을 지니게 되었다. (장시복, 2012: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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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같은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유동성 공급을 위한 연준의 ‘관행적 통화정책(conventional monetary policy)인 페더럴펀드 이자율(Federal Funds Interest-rate) 조정 뿐 아니라, 기축통화국 특권을 사용해 무한정 화폐를 찍어내는 양적 완화를 비롯한 비관행적 통화정책 4) 까지 동원해가며 모든 수단을 세워 경제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할 수 있었던 반면(장시복, 2012: 239-240), 유로존 변방인 남유럽 국가들은 자본차입의 모든 경로가 차단당하고 나서 유로존이라는 ‘구속복’을 입은 채로 채무변제 선결과제인 경기부양을 위한 수요 진작형 적극적 예산정책을 펼칠 수 있는 경제 주권을 트로이카에 박탈당한 후 속수무책으로 장기불황이 그 필연적 귀결인 긴축을 강제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실 미국과 남유럽에서 시간 격차를 두고 발생한 금융위기는 본질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과도한 레버리지(대출)에 의존한 자산가치의 팽창, 특히 금융기관의 과도한 부동산 관련 대출의 부실화 때문에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급격히 상승해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지만 유독 재정위기가 남유럽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것은 미국은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자본유입과 증발을 통해 적자재정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반면에, 유로존 국가들은 우선 발권력이 없어 양적 완화 같은 정책을 펼쳐 위기를 신속히 수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신용등급의 하락으로 자체적인 국채 발행이 불가능하게 되어 자본 유입이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유로존 자체가 단일한 통화를 사용한다는 점 이외에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중앙재정기구조차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역 간 재정 이전이라는 연방 국가적 재정통합이나 재정정책 수립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오로지 긴축재정으로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강압론이 지속할 경우,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의 길과는 정반대로 남유럽 채무국들 내부에서 자신들 부채를 제2의 ‘베르사유 배상금’으로 여기게 되고 그로 인해 “파시즘적 흐름”이 득세하게 되어 유럽연합이 채권•채무국으로 나뉘고 균열과 갈등이 증폭되어 극단적 분리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U가 나아가야 할 길은 지금처럼 수출주도 방식으로 유로를 집중시키는 독일과 프랑스가 경제지배, 금융지배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경제 기조를 내수 중심으로 하되, 수출로 벌어들인 유로를 자국에 분배해 임금인상과 복지로 환류시키고, 주변부 국가들에 보다 확장된 ‘연대적 지원’을 체계화함으로써 유럽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정교화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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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연준의 비관행적 통화정책은 자산매입, 자산 만기연장 및 재투자 정책, 신용 및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등의 정책사용 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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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북유럽 국가들의 경제위기 극복이 주는 교훈

2011년부터 시작되는 남유럽 국가들의 구제금융 행렬과는 상반되게 북유럽 국가들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자신들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미 1990년대 초반 스웨덴, 핀란드 및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발생한 금융위기 주5)에 대처한 경험이 있는 이들 국가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자국 재정위기가 가시화될 때, 대부분 북유럽 국가들은 긴축이 아닌 ‘재정확대’를 통해 경제 활성화를 능동적으로 시행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세계경기 침체에 따른 부작용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2008년 그들이 보여준 제반 정책 패키지는 대부분 1990년대의 그것이었는데, 대표적인 것은 금융 안정화를 위한 신속한 개입(제한 없는 지급보증, 부실채권 회수 등), 변동환율제로의 전환과 물가안정 목표제 도입, 재정준칙 도입, 복지지출 삭감과 세원확대 그리고 R&D 및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 확대와 지역 클러스터 활성화 등이 있다(조은영, 2014).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 역시 1990년대 일찌감치 금융 자유화의 신자유주의적 물결을 맞으면서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스웨덴의 경우 남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금융기관들의 부동산 대출 부실화로 시작되는 ‘은행위기’를 겪게 된다. 이에 당시 스웨덴 연립정부는 수요부양정책에 기초한 케인스주의적 거시정책 패러다임과 단절하고 통화주의 패러다임을 채택하여, 물가안정을 강조하고, 예산의 점증적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총예산액부터 먼저 결정하고 나서 부문별 예산액을 결정하는 등 강력한 예산 지출 통제를 시행하였다. 재정적자와 해외부채 급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정책 영역에서도 대규모 예산삭감을 단행했다. 그러나 동시에 보편주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고(高) 조세-고(高)복지의 복지국가 틀도 건재하게 유지했다. 따라서 스웨덴은 거시경제정책에서는 물가안정을 최우선시하는 통화주의 패러다임과 보편주의 복지국가가 공존하는 ‘통화주의적 사민주의 모델’을 유지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아갔다(신정완, 2012: 294).

스웨덴과 남유럽 국가들의 2008년 위기 대응의 차이점은 스웨덴이 유로존 국가가 아니므로 위기가 전이되지 않았고, 환율정책의 자율성 또한 유지하고 있었으며, 경제위기 발발 이전부터 펀더멘탈이 튼튼한 경제여건으로 말미암아 위기국면에서 재정건전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서도 ‘팽창적’ 거시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불안정한 연정구도와 달리 스웨덴은 사민당이 집권하든 부르주아정당 연립정부가 들어서든 “평상시에는 재정 건전성 유지와 물가안정에 주력하는 통화주의적 정책을 유지하다가, 경제위기라는 비상국면에서는 적극적으로 경기조절에 착수하는 ‘유연한 통화주의’ 기조를 유지”하므로, 남유럽 국가들처럼 은행위기가 재정위기로 곧장 연결되지 않았고 따라서 구제금융과 강요된 긴축으로 연결되는 험지(險地)로 향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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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이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적 금융 자유화에 따른 부동산 버블 현상과 독일 통일 및 유럽의 통합과정에서 금융세력의 투기 등으로부터 기원했으며, 이러한 금융위기는 북유럽 국가들의 재정 적자를 심화시켰다. 과열된 버블 경기호황의 시기가 끝나고 나서 심각한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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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특히 강조할 부분은 경기부양을 위해서 감세 중심의 팽창정책 실행보다는 재분배 중심의 복지국가 모델이 훨씬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는 뚜렷한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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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정책의 경우엔 경기부양을 위한 예산규모가 크지 않았고, 팽창적 재정정책의 수단도 정부지출 증대보다는 감세 중심이어서 경기부양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으리라고 판단된다. 감세 중심의 팽창정책은 단기적 수요부양보다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부르주아정당 연립정부가 원했던 조세구조를 앞당겨 실현시키는 데 더 도움이 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재정정책의 효과와 관련하여, 스웨덴의 경우엔 조세규모가 매우 큰 데다, 사회복지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조세와 사회복지지출의 자동안전장치(built-in stabilizer) 기능이 뛰어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9년 OECD 자료에 따르면, 2009년도 통계자료 및 2010년도 통계 추정치에 따라 계산할 때, 스웨덴의 경우 재량적 재정정책에 의한 경기부양 규모보다 자동안전장치에 의한 경기부양 규모가 3배 정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재정정책의 팽창적 성격 정도에서 스웨덴이 OECD 국가 중 3위 또는 4위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규모가 매우 큰 데다 재분배 효과가 크게 설계된 스웨덴식 복지국가 모델과 이를 재정적으로 지탱해 주는 조세정책이 경제위기 극복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신정완, 2012: 3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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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론
남유럽 재정위기 담론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취약한 경제 구조 탓하기’와 경제위기 ‘불비론’은 대중들에게 마치 신학적 차원에서 ‘죄의식 심어주기’ 같은 역할을 한다. “너희가 원죄(국가채무)를 지었으니, 그에 대한 징벌로 긴축을 수용해라!” 긴축이 진행되는 과정은 부채를 갚아 나가는 과정임과 동시에 소수에게로 부가 집중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때 사회는 모든 대안적인 미래들을 파괴하고 오직 빚을 갚기 위한 기계장치로 변하게 된다. 남유럽 담론의 근저에는 “개인 빚은 최종적으로 그 사람 본인의 방종 문제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논증되지 않은 가정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남유럽 재정위기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기괴한 세계 금융체제라는 늪이 국민국가 단위의 생산적 경제를 삼켜버리고 유럽 시민들에게 채무 노예의 신분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채무 노예제’로 이행시키기 위한 총체적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남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시스템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남유럽 시민들의 방종이 원인이 아니다. 경제구조의 취약성이나 경쟁력 정도와 무관하게 일국 경제에서 신용(외국자본)을 일거에 회수하는 ‘날벼락식’ 밑장빼기 금융에 의존해서는 예측 가능한 경제 발전과 복지 향상은 기대할 수 없다. 경제에서 신용의 역할은 인체에서 혈액이 갖는 역할과 유사하다. 멀쩡한 사람도 혈액을 일거에 뽑아내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복잡한 전개 양상과는 사뭇 달리 남유럽 재정위기 원인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위기 발발 훨씬 이전에 신자유주의적 사회체제가 이식되어 있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이것을 필자는 “1차 경제 레짐체인지”라고 부른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위기’ 진앙이 바로 금융 자유화와 탈규제가 이루어진 ‘신자유주의적 남유럽’이라는 사실이다. 항상 위기는 신자유주의적 이식을 받은 곳에서만 출현한다.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심층화된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편 이후에 비로소 ‘위기’가 도입되어 성숙하고 끝내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도 금융 자유화 등의 신자유주의적 개방이 ‘선행’하고,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거품이 무너지는 시기에, 유럽에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잉여자본을 저리로 풀어 진두지휘하고 지역 은행들이 판을 벌여왔던 ‘유동성 천국’의 세상이 동시에 종말을 맞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금융자본은 천문학적 금융수익을 챙겼다. 이제 유동성 위기가 찾아오게 되었고 국가가 은행에 아무 정당한 근거 없는 구제금융을 제공해주고, 국가는 재정위기를 선언하고 시장은 국채발행을 차단해 경제 주권을 박탈한다. 국가부채를 ‘원죄’로 이제 ‘본격적’ 신자유주의 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계기인 ‘위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구제금융이 시작되면 초국가적 기구들이 개입한다. 채권자 탈을 쓴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뼛속까지’ 이식할 집도의(執刀醫)다(필자는 이를 “2차 경제 경제 레짐 체인지”라고 부른다). 재정위기 진원지는 ‘복지과잉’도 아니고 ‘남유럽적 취약성’도 아니다. 바로 ‘신자유주의적 금융 방종’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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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2012. 「공황의 체제유지적 성격과 체제변혁적 역할: 현재의 세계공황을 중심으로」. 김수행, 장시복 외. 2012.『정치경제학의 대답』. 서울: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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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