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현철
I 국제금융구조 이해를 위한 시론 ㅡ 1 of 3 I
ㅡ 국제금융구조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지정학적 국가 노선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저러한 정치적 신념 중 많은 것들이 ‘엉터리’임을 가려주는 리트머스 종이는 ‘경제해부학’을 정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경제학’이 아니라 ‘경제해부학’이라고 굳이 말하는 이유는 부채(debt)라는 ‘악성 종양’이 깃든 괴물 경제를 당연시하고 근본적 수술 없이 ‘효율적 운용’이나 ‘비본질적 개선’만을 뇌까리는 복잡다단한 엽기 경제학과 차별을 두기 위함이다. 필자의 졸고를 통해 독자들이 국제금융구조에 관심을 끌게 되는 계기가 되고 또 조금이나마 이해의 폭이 확장된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내용이 대단히 압축적이라 경제학적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배려해 3회에 걸쳐 연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일상에 파묻히는 삶 속에서도 끈기있게 ‘총체적 구조’를 고민하는 독자 제현들에게 손톱만큼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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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 경제위기 발생 원인에 대한 쟁점과 교훈」
신현철
연세대 사회학 학술대회(2016) 발표
1. 글을 시작하며
부채에 대한 “사회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역사의 방향이 전쟁, 제국 건설, 노예제도 그리고 부채 노예로부터 멀어지는 한편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세계적 규모의 제도를 창조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작금의 국제 금융 질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부채 노예의 대량 양산과 부채상환의 극단적 수단인 ‘긴축(austerity)’을 전 세계에 강제하는 ‘부채 억압의 세계질서’를 구축하고 있으며, 세계 기축통화인 미 달러가 역사상 그 어떤 통화보다도 확고하게 ‘군사력’에 뿌리박고 있다고 지적한다(그레이버, 2011: 647-648). 이러한 국제 화폐 질서 속에서 자본주의에 따라 혜택을 보는 세력의 숫자가 과거보다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대신 대다수 임금노동자가 이자가 붙는 융자를 상환하기 위해 평생을 일해야 하는 ‘(저임금) 채무노동자’로의 수렴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커다란 특징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와 같은 ‘채무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초기 산업자본의 역동성과 생산적 성격을 상실한 채, 과거 몰락한 봉건귀족들의 소유권으로부터 창출되었던 지대추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금융자본의 지대인 이자만을 추구하는 기생적 속성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형태의 자본주의는 거품(bubble)과 투기로 대표되는 금융불안을 그대로 안고 있으며 실물 경제 영역의 발전을, 즉 생산력 발전을 저해하고 왜곡하며 축적된 자본을 주기적으로 파괴하기도 한다. 가히 ‘초국적 채권자 절대왕정 글로벌 레짐’이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는 현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현실이다.
이 현실은 세계시민들로 하여금 현 체제의 정당성을 의심케 만들고 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국제 금융연계는 “자본자유화” 혹은 “금융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금융자본의 손길이 닿는 모든 곳을 황금이 아닌 ‘부채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장기 역사 과정에서 지금껏 무수한 경제위기가 있어 왔지만 그 중에서 단연코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과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 규모와 파급 측면에 있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본고의 연구 초점은 우선적으로 남유럽 재정위기가 정확히 무엇 때문에 발생하였는가를 국가별로 논구한 연후에, 남유럽 재정위기가 유로존(Eurozone)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진 고립적 사건이 아니라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전세계적 확산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났다는 점에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유럽형 버전’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속성의 금융공황이 발생하여 미국에서 ‘해결’되는 방식과 유로존에서 ‘해결’되는 방식에 대해 비교적 관점에서 어떠한 동일성과 차이점이 있는 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 초와 2008년 두 차례의 세계경제 위기에 대응하여 ‘구제금융’의 길로 들어서지 않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도전에 자신의 방식으로 ㅡ 물론 임시변통적 해결방법이라는 근본적 결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ㅡ 적응하는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의 위기 극복 과정을 스웨덴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고, 재정건전성을 유지하여 재정위기로 들어서지 않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할 것이다.
2. 신자유주의 금융체제의 형성과 특징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진 그리스에서 모순이 국가부도 위기의 형태로 최초로 폭발하여 2010년 5월에 EU와 IMF에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신청하였다. 연이어 여타 EU 회원국들에 비교해 재정건전성이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스페인이나 아일랜드 등도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구제금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에 더해 이탈리아, 포르투칼도 가세해 남유럽은 그야말로 금융공황의 쓰나미 물결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유럽 사태 전개과정에서 2008년 금융공황 이후 G20 주도 아래 진행될 것 같았던 ‘금융시스템의 개혁과 규제’라는 어젠다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세계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고삐 풀린 금융자본은 면죄부를 받고, 그 대신에 ‘국가의 부실한 재정운용’이 위기의 주범으로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박형준, 2003: 5).
남유럽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한 담론의 지형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 번째 입장은 주로 주류 고전경제학의 입장으로써 남유럽 재정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방만한 재정운용’과 ‘포퓰리즘적 복지지출 과잉’의 결과로 보는 입장이다.
두 번째 입장은 위기 원인으로 ‘유로존의 구조적 모순’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애시당초 유로존이 1961년 먼델(R. Mundell)에 의해 제시된 ‘최적통화이론’1)에서 제시하는 최적통화지역 필수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과, 연방제 국가에서 전형적으로 작동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중앙재정기구가 유로존 전체 차원에서 부재했기 때문에 유로존 위기를 조기에 진압하지 못하고 위기가 확산되었다는 점, 그리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진” 남유럽 국가들이 시장을 전면 개방함으로써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기존 북유럽 경제 강국들과의 무역에서 지속적 교역수지 적자를 야기시켰고 이는 곧장 재정수지 적자로 이어졌으며 이 적자 대부분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EU 부자 회원국들 자본으로 메웠다는 점을 들어 국가연합으로서 EU와 단일통화권으로서 유로존이라는 특수한 구조적 원인이 결합해 남유럽 재정위기를 설명하는 방식이다(안두순, 2012).
세 번째 입장은 금융우위의 축적구조로서 신자유주의가 금융자본의 이윤 실현과정에서 지속불가능한 팽창의 모순이 드러났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입장의 경우 ‘전통적 산업자본 중심 자본주의 경제가 글로벌 자본시장에 기반을 둔 전지구적 금융화 경제로의 이행하는 원인에 대한 진단’에 따라, 다시 세분화된 입장으로 나뉜다.2)
남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누적된 경상수지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국가부채가 팽창하게 되어 재정위기를 맞이하게 되거나 혹은 과다한 자본차입으로 형성된 자산가격 거품이 가라앉는 과정에서 유동성위기, 은행위기, 재정위기, 채무위기로 연결되어 결국 국가 부도사태에 근접하는 막다른 상황으로 내몰려 구제금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파국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세계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국가부도사태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1980년대 이후 미국경제는 막대한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와 대외채무의 누적 등 과도한 부채에 의존해 유지되어왔다.”(김정주, 2008: 74)
우리가 남유럽 사태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미국경제가 대내외적 적자와 이를 보전하기 위한 부채 조달에 기반한 신기루 성장 속에서 가공화된 달러의 의도적인 증발과 국제적 (자본)환류 메카니즘을 통해 전세계 잉여자본이 미국으로 유입되고 이를 이용해 벌이는 과잉 유동성 기반의 이윤 추구형태인 거품붕괴형 금융모델이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세계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깊숙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핵심적이다.
이처럼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더 이상 금과 태환되지 않는 하나의 지폐에 불과한 달러가 세계기축통화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달러본위제’하에서 오히려 국제 금융시장은 놀라운 규모로 비약적 성장을 이루게 되며, 이와 같은 국제금융시장의 비약적 성장에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누적을 통한 달러 증발 및 풍부한 달러 유동성 공급이 핵심적 메카니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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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이론은 상품가격과 임금이 경직적이지 않고(수급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고), 상품의 이동과 노동자의 이동이 신속히 이뤄지는 지역에서는 하나의 통화를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자세한 것은 정성진, “2007-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마르크스주의 공황론”, 김수행, 장시복 외,『정치경제학의 대답: 세계대공황과 자본주의의 미래』, 사회평론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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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거대한 규모로 재유입되는 달러에 기초해 미국은 국제적 자금중재자로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배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또한 자본자유화, 금융자유화, 금융의 증권화로 대표되는 미국 중심 금융세계화를 추동하는 현실적 배경이 되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파생상품과 같이 금융거래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새롭고 다양한 금융상품들이 미국에서 개발되어 유통되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혁신”이 끊임없이 추구되었다(김기수, 2006: 166). 결국 최근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탈규제화된 금융세계화 문제는 단지 금융부문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성립한 달러본위제 하에서 자신의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용인할 수 있었던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와 이에 기초한 국제적 달러 공급의 과잉 및 미국의 금융패권이 낳은 문제라 할 수 있다(김정주, 2008: 85).
이와 같이 미국은 엄청난 규모의 경상수지 적자와 부채누적을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이용해 ‘달러의 남발’이라는 유일무이한 특권으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생겨난 달러 유동성 증가는 국제 신용 및 금융시장의 급팽창으로 연결되어 국제적 금융화, 더 나아가 금융우위의 축적구조인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자신의 대외적 채무에 대한 실질적 청산 없이 유입되는 달러의 재활용을 통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적자의 누적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 그리고 적자를 보존해주고 있는 해외로부터의 달러 환류와 세계잉여 저축의 흡수가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루비니(Roubini & Sester, 2005)는 부정적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한정으로 달러를 증발해 적자를 타국에 전가하는 경제 방식에는 ‘근본적 한계’가 존재하며 따라서 미국경제를 비롯한 세계경제 운용방식의 ‘근본적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모순으로 연결된 국제통화체제 속에서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가 소위 “남유럽 재정위기”를 어떻게 창조하는지 그 구체적 메커니즘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남유럽 재정위기”는 지역적, 고립적 사건이 아니라 그물처럼 연결된 국제금융시장의 행위주체들과 남유럽 국가들의 갈등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여기에 EU와 유로존이라는 매개변수가 삽입되어 문제의 복잡성을 증폭시키는 구조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최종심급에서 작동하는 국제 달러 헤게모니체제의 모순이 남유럽에 삼투되는 과정을 생략한 채, 금융위기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별 경제구조만을 강조한다든지 혹은 ‘유로존의 태생적 한계’만을 강조한다든지 하는 것은 태양을 언급하지 않고 주변 행성운동을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가 이토록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근원적 문제의 본질에 대해 던칸 Duncan(2003: 63)은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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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오늘날 국제통화체제는 세계경제의 성장이 다른 나라들에 대한 미국의 부채 증가에 점점 더 의존하도록 하는 상황을 정당화해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누적적 부채증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가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었던 이유라 할 수 있다.
둘째, 오늘날 국제통화체제는 과잉화된 달러 유입을 통해, 그것이 붕괴될 경우 은행 시스템과 정부 재정을 파탄시킬 수도 있는, 자산가격 버블(asset price bubbles)의 형성을 정당화해주고 있다.
셋째, 미국 경상수지 적자로 대표되는 무역불균형의 문제를 통해 전세계에 걸친 과잉화된 달러 공급 및 과잉화된 신용창출이 계속되는 한, 이것은 기업 수익성을 지속적으로 잠식하게 될 디플레이션 압력을 낳게 될 것이다.(김정주, 2008: 8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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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유럽의 재정위기”를 바라볼 때, 다른 많은 구제금융 예와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반복되는 하나의 패턴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국제 금융권의 달러 유동성이 순식간에 집중적으로 유입되는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통제되지 않은 투자 붐과 자산가격 상승이 생산시설의 과잉과 투기와 자산거품의 창출을 필연적으로 야기시키며, 곧이어 벌어지는 거품 붕괴는 신용위기를 낳아 심각한 유동성 부족을 초래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국가는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고 IMF 등 국제금융기구들(유럽의 경우에는 트로이카-IMF, ECB, EU 집행위원회)은 천문학적 액수의 민간 금융부문 손실을 구제해주고, 그 부담은 전적으로 사회가 떠맡는 ‘손실의 사회화’가 이루어지며 국민들은 긴축이라는 내핍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주권국가 단위에서 불황을 탈피할 경제활성화 계획인 적자재정을 기초로 하는 총수요 창출을 기조로 하는 재정정책은 국제채권단들로부터 원천적으로 차단 당하게 되어 주권국가로서의 독자적 경제운용권이 침해 받게 되며 끝내 장기침체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제 국민경제의 방향은 생산과 번영이 아닌 오직 빚을 갚기 위한 ‘채무변제 경제’의 구조로 왜곡된다. 이와 같이 비정상적 유동성 과잉의 국제 금융의 구조적 덫에 빠지게 되면 국가는 은행위기•금융위기 그리고 구제금융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거치는데, 바로 이 구제금융이 재정위기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구제금융은 국가나 국민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해당 국가의 채권은행들에게만 지급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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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세계금융공황에서 각국 정부는 파산 위기의 금융회사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기 위해 거액의 국채(달러•유로 표시 국채와 자국통화 표시 국채)를 발행했다. 이 국채의 원금과 이자를 각국 정부가 상환할 수 없게 된 것이 현재의 국가재정 위기의 본질이다. 구제금융(또는 국가채무의 증가)으로 살아남은 금융회사는 이제 적반하장으로, 국가채무를 줄이지 않으면 국채를 매입하지 않거나 국가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겠다고 국가를 협박하고 있다 . . . . . (중략) . . . . . 그리스 정부는 트로이카로부터 2010년 5월에 제1차 구제금융으로 1,100억 유로를 받았고, 2012년 3월에 제2차 금융으로 1,300억 유로를 지원받기로 합의했다. 물론 비싼 이자를 트로이카에게 물어야 할 뿐 아니라,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긴축내핍정책을 실시해야만 구제금융을 조금씩 몇 차례에 걸쳐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런데 두 번의 경우 모두 ‘구제금융’은 그리스 정부의 국채를 가진 외국 채권은행들(독일계은행, 프랑스계 은행, 미국계 은행 등)에게 원리금을 상환하는 것에 사용될 뿐이고, 그리스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투자하는 것에는 한 푼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형태의 구제금융은 사실상 그리스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에 대한 채권은행들을 위한 것이다 . . . . . (중략) . . . . 긴축내핍정책이 그리스의 국채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그리스 경제를 살릴 수도 없으며, 인민대중만 빈곤과 실망에 빠뜨리게 된다는 것을 트로이카는 미리 알면서도, PIGGS의 모든 인민들에게 국가채무는 노동자와 서민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제적 국가기구’인 트로이카는 고리대금업자인 채권은행들의 채권추심을 위한 깡패 노릇을 맡고 있는 셈이다.(김수행, 2012:398-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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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우리는 복지 과잉과 방만한 재정운영이 재정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국가재정을 위기로 빠뜨리는 진정한 이유는 실상 거대 민간 금융회사들의 무책임한 과잉 차입과 대출 그리고 이로 인한 자신들의 파산에 따른 구제금융의 부담이 국가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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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금융회사들의 파산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대출과 투자가 엉터리였기 때문이었다. 자기 잘못으로 손실을 입어 파산하는 것은 ‘시장원리’나 ‘시장규율’에서는 당연한 일이고, 더욱이 화폐금융자본가들은 항상 ‘우리가 모든 책임을 질테니 규제를 풀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왜 갑자기 ‘시장원리’를 버리면서 정부에게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했으며, 정부는 왜 그것을 그렇게 쉽게 제공했을까? 결국 정부와 화폐금융자본가들이 주창한 ‘신자유주의’는 시장원리나 시장규율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부자를 위한, 부자에 의한, 부자의 정치’를 의미했던 것이다. 부자는 자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부문에서만 규제의 제거를 정부에게 요구한 것이므로, 이제 부자가 정부에게 자기의 사적 손실을 사회적 손실로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도 자기의 ‘신자유주의’와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김수행, 2012: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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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메닐과 레비(Dumenil and Levy, 2004)는 금융 헤게모니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거대 자본 소유자들이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 전지구적으로 자신들의 금융 영토를 장악하고 그들이 거느린 금융기관이나 금융적 방식을 통해 다른 이들에 대해 권력을 더 많이 행사하게 되는 ‘역사적 발전’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특히 이들의 자본의 시대 역사구분법에 의하면 19세기말부터 대공황을 거치는 1933년까지를 ‘제1차 금융 헤게모니’로 구획하고, 미국의 뉴딜(New Deal)에서 자본주의 황금기에 이르는 1970년대까지를 노동생산성과 임금의 동반상승하는 ‘케인즈주의적 혹은 관리자적 타협’의 시대로 설정하며,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제2차 금융 헤게모니’ 시기로 간주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제2차 금융 헤게모니’ 시대의 출발점이 1970년대 초 브레튼우즈 체제가 해체되고 자본이동의 자유가 본격화되며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로의 역사적 이행이 자본주의의 금융적 전환을 일으키게 되어 세계정치경제에서 미국의 지위와 통제력을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한 ‘헤게모니 프로젝트’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장진호, 2008: 323).
그리고 국제 자본시장에 기반을 두고 전일적 금융시스템을 향해 전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금융 헤게모니는 상이한 국민적 자본주의를 동질화시키고 수렴화시킨다는 점에서 남유럽 재정위기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이 1973년 이래로 제조업 생산 중심의 “건강한 자본주의”와 작별을 고하고, 달러 지배체제의 예속 메카니즘을 통해 자신들의 누적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상쇄할 만큼의 ‘조공’을 전세계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금융수탈 지배체제를 구축한 이래로 미국 내에서 끊임없이 가공자본을 만들어내고 금융투기시장에서 버블을 창출함으로써 미국은 자국의 금융 공황의 폭발을 타국으로 이전시키거나 지연시켜 왔고, 한편 세계 금융자본의 잉여달러를 미국으로 흡수하여 달러화가 폭락하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이 잉여자본을 재활용해 전지구적 금융투기장화를 추동해왔기 때문이다(곽노완, 2008).
미국의 대외경제정책이 케인즈주의를 탈피해 신자유주의적으로 돌아서게 된 주요인은 무엇보다 자국 군사비와 사회적 공공지출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누적 대외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속불가능한 경제 레짐으로 인해 브레튼우즈 체제를 파기시키게 되었고 국제통화질서에서 달러-금본위제가 종식되는 계기인 1971년 소위 ‘닉슨 쇼크’ 그리고 이에 이어서 1973년 안정된 환율체계가 붕괴되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고 급기야 1974년 미국의 자본계정 통제의 제거 등으로 인해 ‘전지구적 금융개방화’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자본이동 자유화는 국제자본을 자국 금융시장과 유로달러시장으로 흡수하여 외채상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막대한 수지 적자를 보충할 충분한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에 더해 닉슨 행정부 기간에 주로 미국의 민간은행들에 의해 중동 산유국 석유 달러(oil money) 재순환이 자본이동 자유화에 의해 가능해졌으며 이로써 이제 세계는 세계통화로써 달러에 예속되는 지위에 놓이게 되었다(장진호, 2008: 322). 이제 세계는 노동을 기초로 한 생산 중심 경제가 아닌 허구적 금융에 근거한 이윤추구의 사적 금융카르텔이 국가를 ‘금융적 방식’으로 연결시켜 지배하게 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산업순환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물론 금융수익이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는 ‘부채 중심의 금융제국’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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