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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유진규 마임 공연 관람 후기 ㅡ ‘영(靈)과 혼(魂)의 몸짓 언어’ I

신현철/국제정치 대표작가

 

I 유진규 마임 공연 관람 후기 ㅡ ‘영(靈)과 혼(魂)의 몸짓 언어’ I

/ 데카르트적 근대 과학주의에 의해 ‘말살된 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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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1일 춘천 축제극장 몸짓에서 유진규 선생님의 마임 공연을 봤다. 이제까지 살면서 마임 공연을 이번처럼 제대로 본 적은 처음이다. ‘무료관람’의 기회를 주신 강원도와 강원문화재단에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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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 . . 말(언어) 없이 ‘몸’만을 움직여서 이렇게나 많은 걸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었다. 상상을 해보자면 아주아주 까마득한 옛날에는, 그러니까 문명 이전의 시기에는 언어와 말하기가 지금처럼 발달되어 있지 않았을 테니까 사람들끼리 대부분의 의사소통과 감정소통을 ‘몸동작’으로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명이 정교화되면서 ‘말하기’와 ‘글쓰기’가 발달하고 그 반대로 ‘몸의 언어’는 점점 사멸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는 ‘몸’이 가장 핵심적인 ‘언어의 도구’였었는데 그게 점점 말과 글에 눌려 주변화되고 퇴화되어 지금처럼 입으로만 나불나불대는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고 그걸 신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형태인 글자(혹은 문자)라는 ‘간접 언어’를 통해 감정과 주장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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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진규 선생님의 마임 공연을 보다 보니까, ‘몸짓’이라는 게 중간에 ‘소리’나 ‘문자’라는 매개체가 수행하는, 뭔가 작위적이고 숨기고 미화하고 각색하려는 여과(필터링)가 없는 ‘직접 언어’ 혹은 ‘투명 언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감정의 전달, 특히 말이나 글로써는 도무지 설명할 방도가 없는 복잡미묘한 내면의 감정을 분출하는 경우에는 절대 말이나 글로 하지 말고, ‘몸짓 언어’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기쁨이 몰려오거나 절망의 감정이 나를 뒤덮으려고 할 때 마치 내가 마임배우라도 된 것처럼 몸동작을 극대화시켜 그걸 표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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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험 삼아 유진규 선생님이 공연에서 보여주었던 몇 가지 몸동작을 흉내 내서 집에서 나 혼자 미친 사람처럼 나의 감정을 표현해 봤더니. . . . 뭔가 새로운 경지가 오는 ‘작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한 두 번으로는 안되겠지만 앞으로 계속 많이 시도해보면 뭔가 큰 것을 얻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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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의 (간접)언어는 뭔가 모를 ‘찌꺼기’가 남는 게 사실이다. 개운하지가 않다. 그러나 ‘몸짓 언어’는 모든 걸 연소시켜주는 것 같다. 내면에 케케 묵혀져 있던 숙변과도 같은 감정의 찌꺼기를 비워내고 마음을 ‘공(空)의 상태’로 만드는 것에 마임만한 것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정말 ‘대단한 발견’이다. ‘새로운 언어’로의 진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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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마임을 ‘비언어’라고 하는가 . . . 그것은 정말이지 ‘몸의 언어’이며 ‘영(靈)적인 언어’이며 ‘혼(魂)이 표출된 언어’다!!! 그래서 ‘영혼(靈魂)의 언어’가 된다. 데카르트적 근대 과학주의에 의해 ‘말살된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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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