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완정 시론

I “프랑스 혁명”의 가면을 어떻게 벗길 것인가? ㅡ 1 of 3 I

신현철/편집위원

 

I “프랑스 혁명”의 가면을 어떻게 벗길 것인가? ㅡ 1 of 3 I

/ 세 가지 트랙으로 벗겨 보는 금융영토 팽창 주권 왕정 레짐체인지 민중 학살 ‘가짜 혁명’ 분석 ㅡ “영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유사 수법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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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출 약자
JFK = Jewish Financial Kings, 존 F. 케네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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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을 총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일단 프랑스 내파(implosion)가 어떤 세력에 의해서 그리고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 되었는지를 일람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기가 막힌 깨알 해설이 18세기 프랑스 역사 전문가 마리옹 씨고(Marion Sigaut) 여사가 저술한 『LE TOURNANT DE LA RÉGENCE』에 적혀 있다. 우리말로 하면 『섭정시대로의 전환』인 이 책은 2017년 출간되었다. 아주 따끈따끈한 책이다. 이 책은 태양왕 루이 14세(재위 1643-1715)가 죽은 해인 1715년부터 경애왕 루이 15세(재위 1715-1774) 즉위 초기 1723년까지의 8년 동안을 다루고 있다.

가다피의 리비아가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게 아니라 사실은 그 이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온 미국의 전방위적 레짐체인지(regime change) 공작들(유가 하락을 통한 재정파괴, 내부인사에 대한 체계적 매수, 군사정보 탈취, 미사일 거세 협정, 테러집단 사전 배치 등)이 거둔 결실이듯이, 프랑스 또한 예외가 아니다. 거의 흡사한 패턴이다. 특히 140년 전 이웃 나라 영국에서 벌어진 “퓨리턴 혁명”의 과정을 그대로 복사했다. 그렇다!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그 ‘수법’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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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프랑스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 이 두 “혁명”의 동일한 수법은 무엇인가부터 살펴보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자.

 

1) 국가재정 선제 타격

“혁명” 도입 부분에는 반드시 국가재정이 파탄 나고 의회가 소집되는 걸로 ‘기본 스토리라인’이 깔린다. 그리고 이 의회는 곧이어 “혁명”세력의 소굴이 된다. 국가재정을 남몰래 파탄낸 자는 영국의 경우에는 윌리엄 세실(William Cecil. 1520–1598) ㅡ 1598년 그가 죽었을 때 영국 국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돈을 갖고 튀어라» 라는 영화에서처럼 말이다 ㅡ 인데, 죽기 전에 착실히 공을 들여 작업을 해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많은 돈은 어디론가 증발했다. 세실이 죽고난 지 5년 후인 1603년에 “천일의 앤(Anne of the Thousand Days)”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도 죽는다. 이제 영국서 튜더 왕조는 종말을 고한다. 후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로 건너와 제임스 1세가 됨으로써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의 잔혹한 운명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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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경우에는 죤 로(John Law)와 “프랑스 혁명” 당시 재정장관이었던 쟈크 네케르(Jacques Necker. 1732-1804)가 금융 시스템과 국가재정을 파괴하는 데 앞장선다. 죤 로는 후에 언급될 테니 일단 네케르만 살펴 보자. 그는 프랑스가 루이 16세 때 “앞선 왕들의 사치와 전쟁비용으로 이미 국가재정이 엉망이 되었다”며 국가재정을 대중들에게 까발렸다. ‘깡통 재정’이었다. 프랑스 인민들은 분노했다. “왕실의 사치” 때문에 국가가 거덜 났으니 얼마나 분노가 치밀었겠는가. 이게 “프랑스 혁명”의 직적접 촉발에 중요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이게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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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왜 그런가? 국가재정을 깡통으로 만든 것은 실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War of the Spanish Succession. 1701-1714) 동안에 프랑스 황실 정부가 국제 뱅커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천문학적 액수의 ‘양털깎이’를 당해왔기 때문이다. 해외 파병 프랑스군 ㅡ 주로 스페인과 저지대 지방에서 전투를 벌였던 ㅡ 에 막대한 전비를 송금할 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막대한 국가재정을 털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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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예를 들면, 프랑스가 강력한 상업적 기반이 없었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북부 같은 지역에 송금할 때는 거기서 환어음 방식으로 돈을 융통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고환율’을 지불해야 하고 또 직접 송금을 할 수 없으므로 우회를 통한 송금 루트를 새로 찾아야 하기 때문에 몇 배의 비용이 들었다. 금융에는 까막눈이었던 황실 사람들이 교활하기가 뱀같은 뱅커들이 뭔 짓을 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당연하다.

이 시대 프랑스 금융 역사를 연구했던 로렌드(Guy Rowlands)주1)는 15년 간 지속된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 동안에 전체 프랑스 국방 지출의 1/4 혹은 1/2이 해외송금 전송이었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전송 수수료가 무려 20%에서 30%를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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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Guy Rowlands, 「Dangerous and Dishonest Men: The International Bankers of Louis XIV’s France」. Basingstoke and New York: Palgrave Macmilla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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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국제 뱅커들은 프랑스의 전쟁회계업무 담당 ‘군사 경리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경리관들을 ‘구워삶아’ 막대한 대출을 프랑스에 엥겨주고 역시 고리대로 프랑스를 ‘국가부채 과잉’으로 몰고 가는 폭주기관차에 승차시키기도 했다. 원래 이 군사 경리관들은 전투가 벌어지는 각급 해당 병력 단위에 돈을 배분하는 에이젼트 역할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런데 황실이 그들에게 재량을 주어 ‘대출 업무’도 보도록 ‘방임’했던 것이다. 관리없는 방임은 곧바로 부패 8차선 대로로 향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어차피 내돈이 아니니까 차입할 수 있는 극한까지 차입해서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짭짤한 ‘커미션’을 왕창 챙겼다. 그리고 국제금융업자들은 산더미 같은 송금수수료와 대출 이자 소득에 함박 웃음을 지으며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의 상생(相生)을 이뤘다. 결국 이들의 부패적 상생은 프랑스를 거대한 “대출받는 하마”가 되도록 만들어 버렸다(1997년 IMF 전야의 우리의 대책 없는 차입경제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결국 이 모든 ‘비난의 독박’을 프랑스 황실이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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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티-카톨릭 대안 이념 확산 시키기 ㅡ 퓨리터니즘과 자코뱅이즘 살포

일단 영국부터 보면, 즉위하고 보니 국가 재정부터가 ‘깡통’ 상태인 것에 더해 제임스 1세를 “로마 교황의 똘마니”라며 지랄발광 난동을 부리는 퓨리턴 폭도들이 발흥하기 시작했다. 일찍이 헨리 8세때부터 글로벌 금권세력인 JFK는 잉글랜드를 유대교 2중대인 ‘안티-카톨릭 국제 프로테스탄티즘 세력의 전진기지'(지금의 이스라엘 같이 그러나 당시에는 지금의 미국처럼 JFK의 후방기지는 없는 상태였다)로 삼아 ‘아르마다 해전’같은 것을 통해 스페인 카톨릭 합스부르크 세력을 때려 잡는데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무역/금융 영토를 넓혀 왔다. 그런데 ‘친카톨릭 스튜어트 왕조’가 느닷없이 들어섬에 따라 이러한 금권 영토팽창이 가로막힐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던 것이었다.

이는 굉장한 위협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안티 카톨릭 저항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퓨리턴’이다. 퓨리턴들은 유대인들의 모세 오경인 성경 구약을 통해 ㅡ 여호수아 운운하며 ㅡ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자들(chosen people)”이고 자신들 이외의 모든 지파는 ‘이단’이며 ‘성상숭배’를 일삼는 악마이기 때문에 카톨릭과 ‘무한 전쟁’을 선포하며 스튜어트 왕가의 “혐오스러운 폭정”과 성전(聖戰)을 치루겠다는 일종의 기독교 탈레반으로 성격 규정을 할 수 있겠다. ‘퓨리터니즘’은 쉽게 말해 ㅡ 엘리언 글레이저(Eliane Glaser)의, 그녀의 책 제목이기도 한 표현대로 말해보자면 ㅡ “유대인 없는 유다이즘(Judaism without Jews)”이다. 유대교의 철천지 원수 로마 카톨릭의 죽음을 위해서는 불 속이라도 뛰어들겠다는, 뭐 그런 정신무장을 한 ‘기독교 테러리즘’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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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2세 때 징세 문제로 의회를 소집했다. 이 때 유럽금권세력 잉글랜드 정치용병인 크롬웰을 수괴로 하는 의회파들은 찰스2세의 “폭정”과 “전제정치”에 반기를 들며 막가파로 나오면서 결국 “퓨리턴 난동”의 레짐체인지가 일어났다. 이를 역사학자들이 “퓨리턴 혁명”이라고 그릇되게 부르는 것이다(지금의 우크라이나 정치를 연상하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유럽 금권세력 연계 퓨리턴 = 미국 연계 유로마이단 떡대들 / 로마 카톨릭 = 푸틴의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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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경우에는 “혁명” 전에 쟈코뱅이즘에 근거한 지하 정치조직이 프랑스 전역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이 중앙집중적인 “혁명 조직”은 나중에 인민의 ‘공적 자산’인 카톨릭 교회 재산을 금권과두들이 강탈하도록 도와주며 사제들과 주민들을 ‘반혁명분자’라며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전국적 테러조직으로 눈부신 활약을 한다.

 

3) 의회를 중심으로 레짐 체인지 세력 결집 ㅡ 왕정 타도의 소굴 만들기

4) 왕정의 악마화와 국왕시해 여론몰이 공작

프랑스 루이 16세가 도주하게끔 놔둔 후 그를 다시 붙잡아 처형하는 시나리오는 영국 왕 찰스1세를 크롬웰 의회파 테러 도당들이 잡은 후 일부러 도망가게끔 유도해서 다시 붙잡아 목을 따는 ‘국왕 시해 스토리’와 똑같다. 똑같아도 너무 똑같다. 그렇다!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그 ‘수법’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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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 14세 시기에 금융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를 보냈다. 루이 14세는 뱅커들의 교활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을 몹시 경계했다.

그래서 국가재정 감독관인 니꼴라 푸케(Nicolas Fouquet)가 프랑스 국가를 위해 일하기 보다는 국제 금융업자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을 알고서 ㅡ 반박불가능한 그의 부패 물증을 잡아서 ㅡ 그를 체포해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버린 외딴 섬에 있는 삐뉴롤 성채(fortress of Pignerol)에 종신 수감시켰다. 그곳은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그런 섬이었다.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 시체로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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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말하자면 만약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에서 만약 루이 14세가 승리해 중부 유럽의 헤게모니를 장악해 그의 손자인 앙주 공작(Duke of Anjou) 필립 ㅡ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인 ㅡ 이 광대한 스페인-프랑코 제국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더라면 어땠을까? 당시 지정학적 상황으로 보건데 . . . 영국을 숙주국가로 삼아 잉글랜드 은행과 시티오브런던을 활동무대로 삼았던 국제금융세력은 아마도 치명적 위협을 안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나 열정적으로 이를 방해하려 했던 것이다.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교활한 진의’를 숨기면서 말이다. 국제정치학 용어는 알고보면 죄다 ‘개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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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