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완정 시론

I “프랑스 혁명”의 가면을 어떻게 벗길 것인가? ㅡ 3 of 3 I

신현철/국제정치 대표작가

 

I “프랑스 혁명”의 가면을 어떻게 벗길 것인가? ㅡ 3 of 3 I

/ 세 가지 트랙으로 벗겨 보는 금융영토 팽창 주권 왕정 레짐체인지 민중 학살 ‘가짜 혁명’ ㅡ “영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유사 수법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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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출 약자
JFK = Jewish Financial Kings, 죤 F. 케네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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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러시아 두 국가는 당시 유럽에서 JFK 고리대금 시스템을 배격했던 유일한 국가였다. 프랑스에서는 1720년 11월에 황실 은행(Banque Royale)이 죤 로(John Law)에 의해서 잉글랜드 은행 악귀들 방식 ㅡ 금으로 태환되지 않는 지폐 남발 방식 ㅡ 으로 설립되었고 그렇게 운영되다가 결국 파산했다. 은행 설립자이자 국가재정 장관인 스코틀랜드인 죤 로(John Law)는 다음 달인 12월에 프랑스에서 도망갔다. 프랑스 국가은행 하나 작살내고 어디론가 튄 것이다. 죤 로…. 그는 분명히 냄새가 난다, ‘에이전트’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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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은행과 대주주들에게 프랑스 황실 은행의 몰락은 그간의 스파이 침투와 매수 및 중상모략 비방 작업이 마침내 결실을 본 ‘값진 승리’였으며 ‘굿 뉴스’였다. 경쟁 대상이 될 것에 틀림없는 프랑스 은행을 가만히 두면 되겠는가? 무너뜨려야지! 그래서 그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들 기쁨은 영원히 지속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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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설립한 프랑스 국립] 은행은 이전까지 프랑스 금융을 장악하고 있었던 15개의 사적 은행 ㅡ 대부분이 유대인 소유였다 ㅡ 을 대신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 15개 은행은 1789년에서 1799년 10년 동안에 벌어진 “프랑스 혁명” ㅡ 이 명칭은 실제 벌어진 일을 아주 그릇되게 표현한 용어인데 ㅡ 에 즉 “프랑스 인민을 적으로 삼은 JFK 금융도당의 조직적 반란”에 깊숙이 개입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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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은행들은 나폴레옹 이전에 프랑스 국가 부채를 ‘1억1천만 파운드’까지 급팽창시켜 놓았다. 프랑스 국왕의 대출에 대해서도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를 ‘따박따박’ 챙겨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혁명” 발발한 해인 1789년 무렵에는 프랑스 국가 예산 중에서 50%를 웃도는 금액이 이들에게 이자로 지급되었다. 5%가 아니라 50%다. 이건 뭐 그냥 ‘반띵’이다. 국가 예산 중 절반이 이자 갚는데 가볍게 날아간다. 정말로 “어이가 없네(배우 유아인 버전)!”

사실 필자도 이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국부를 통째로 쳐드시는 이들이야 말로 진정 ‘인민의 주적’이 아닌가…? 그런데 이들을 쉴드치는 좌·우파 친금융 정치용역들은 도대체 뭔가? 유럽 정치지형에서는 본질 중의 본질인 금융약탈 진실을 밝히고 ‘진짜 혁명’을 말하고 실천하면 “나찌”가 되고 “파시스트”가 된다. 또 금융업자들이 주로 유대인들이었다고 언급하면 “인종주의자”가 된다. 이런 주홍글씨 ‘낙인찍기’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안티파(Antifa)같은 좌파 테러 조직을 풀어 거리를 피투성이로 만든다. IS가 중동에만 있는 게 아니다. 유럽판 IS인 안티파도 곳곳에 잠복해 있다. 그들은 ‘진짜 인민 봉기’와 ‘진짜 혁명’을 진압하려고 혈안이다. 안티파는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에 “파시스트”가 섞여 있다고 혹은 “반유대 인종주의자”가 섞여 있다고 ‘개수작’을 부리며 운동의 혁명성과 급진성을 차단하고 있다. 한국 페북에도 침투해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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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최종 지배계급 JFK가 절대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 순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우리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 있다. 저항하는 인민을 분쇄하기 위해 현실 왜곡 지식 매트릭스를 고압 전류선처럼 전 사회에 깔아 놓았다. 게다가 온갖 사회교란 작전을 천재적으로 지휘한다. 그리고 그 작전은 대단히 대단히 대단히…. 정말이지 너무나 대단히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설국열차’ 그 이상이다. 우리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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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집권 초 그는 JFK의 약탈로부터 프랑스를 보호하기 위해 사적 소유가 아닌 공적 소유 기관 위상을 가진 프랑스 국립은행 건립을 실천한다. 3천만 프랑을 초기 목표 자본금으로 정하고 3만 명이 두당 천 프랑씩 갹출해서 이를 달성했다. 그리고 은행 수익을 3만 명이 다 처먹도록 하는 게 아니라 일 년에 배당금을 6% 이내로 엄격히 제한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점점 수익이 많아지고 은행 규모가 방대해지자 200명 대주주가 선거를 통해 15명을 선출해 ‘총회’(General Council)를 만들어 은행 운영위원을 구성하였고 그에 더해 감사(Censors or Inspectors) 3인을 선정했으며, 15명의 운영위원은 다시 3인으로 구성되는 ‘중앙위원회’(Central Committee)를 선출해 상위조직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은행의 총재는 나폴레옹으로 정했다. 따라서 이제 은행은 소수의 사악한 금융도당이나 국제대부업자들 사적 소유가 아니라 국가수반이 책임을 지며 관리되는 ‘공적 소유’ 즉 ‘인민 소유’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화폐발행 특권’을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소수의 금융 도당에게 위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미 연준처럼 소수가 쑥덕쑥덕해서 화폐를 발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화폐발행의 권리를 가지는 자들이 결국 국가를 통째로 ‘꿀꺽’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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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나폴레옹을 비방하는 데 혈안이 된, 금융 도당 똥꼬빠는 당대 지식분자들은 ㅡ 지금도 마찬가지다 ㅡ 이런 것은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폴레옹에 대한 악마화 작업에 돌입한다. 그를 헐뜯는 데 혈안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작업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악마화, 카다피 악마화, 푸틴 악마화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국제 미디어에서 악마가 된 사람들을 가만히 보라. 그가 진정 “악마”인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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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상대로 장사하는 대출 스케일이 천문학적인 국제 대부업자 즉 JFK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유럽 대국인 프랑스가 자기의 국가 대부 사업권에서 썰물처럼 이탈했다.

아니 하룻밤 만에 프랑스라는 대고객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지들이 독자적으로 국가 은행을 세워 자립적으로 운영하면서 국제대부업자 소굴인 시티어브런던(City of London)에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가 거기까지 가서 돈 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국제 대부업자들의 사업은 엄동설한처럼 ‘혹한기’를 맞이하게 된다. 자, 그러면 이제 그들은 자신에게 닥친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고리대금 고금리대출 같은 기생적인 약탈 비즈니스 말고, 건강한 생산활동에 이바지하는 다른 산업 업종으로 구조조정을 했을까……? 불행히도 역사에서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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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제대부업자들은 그들의 소굴인 영국의 모든 미디어를 동원하여 나폴레옹을 악마로 만들기 시작했다. 돈다발을 산처럼 가지고 돌아다니며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스페인, 스웨덴 그리고 심지어 러시아까지 돌아다니며 ‘프랑스와의 전쟁’을 종용하고 다녔다. 물론 이렇게 뿌리는 돈이 만만치 않았겠지만 그건 프랑스를 대부 영업권에서 영구적으로 상실하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얘들아,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제발 프랑스와 전쟁을 좀 해다오…. 제발 부탁이다!” 이게 로비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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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나폴레옹 프랑스는 불필요한 전쟁에 휘말리며 자신을 스스로 고갈시키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 그는 무너진다. 1821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나폴레옹은 금융마귀들이 애용하는 비소를 통한 중독 살인을 당하여 이승과 작별한다. 그는 임종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의 프랑스, 나의 군대, 나의 죠세핀이여!”……. 그는 이 3가지를 모두 JFK에게 빼앗기고 만 것이다. JFK에 의해 주권국가 프랑스가 점령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얼마 후 프랑스는 M씨가 “1830년 체제”라고 부르는 즉 “권력이 소수의 은행가에게 집중되고 중첩되는” ‘금융독재 체제’에 접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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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JFK는 프랑스를 국가 대부 영업 권역으로 다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나폴레옹이 제거돼서 나서 이들은 한시름 놓게 되었다. 이제 프랑스가 공화정을 하든지 왕정복고를 하든지 알 바 아니다.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걸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자신들처럼 돈과 스파이 조직과 작전동원세력을 자유자재로 수급할 수 없는 가난한 민중 나부랭이들이 끽해야 ‘찻잔 속의 태풍’만 좀 일으키다 사그라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주적’이 퇴장하고 이후 벌어진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을 그들은 UFC 경기 보듯 별 부담 없이 ‘관람’했고 빠리 노동자들이 봉기한 ‘6월 혁명’까지 추가로 관람했다.

6월 혁명은 ‘노동에 대한 권리’와 ‘사회적 권리’를 제기하고 더 나아가 ‘자본-임노동 관계에 국가의 개입을 요구했다. 이를 ‘계급’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 평가가 무엇이든지 간에 1871년 “빠리꼬뮌” ㅡ 모두 다 빠져나간 텅 빈 빠리를 거주자들이 옹기종기 지키고 있었던 사건 ㅡ 을 끝으로 다소 지루한 UFC 관람을 모두 마치고 이제 프랑스는 ‘자유민주주의’로 통치 골격을 잡은 제3공화정으로 향후 70여 년 간 이어졌다. 금권 권력에 가장 적합한 정치체제 . . . 바로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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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인물은 가톨릭 황실 군대 총사령관이었던 쟈크 카트리노(Jacques Cathelineau. 1759-1793)다. 그는 국제금융 괴수들의 테러 용병인 쟈코뱅들이 벌인 방데 인민학살에 대항해 영웅적으로 싸웠던 ‘앙주의 성인(Saint of Anjou)’이다. 34살 짧은 인생을 오직 인민을 위해 살다 갔다. 의식이 허약해지고 나약해질 때마다 그를 쳐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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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