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완정 시론

[소설연습] 참깨와의 대화 – 노가리를 뜯으며(1)  

[소설연습] 참깨와의 대화 – 노가리를 뜯으며(1)

 

오랜만에 친구 참깨와 함께 동네 어귀 치맥집에서 노가리를 뜯으며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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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봉쇄 교향곡이 울려 퍼진 지가 벌써 1년이 넘어가는데 국내에 존재하는 그 많은 시민단체와 대중운동 단체 그 어느 곳에서도 항의 성명서 하나 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경쟁적으로 ‘시국선언 배틀(battle)’을 했던 ‘조국사태’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전국적으로 《강제백신접종과 생존권 말살 저지를 위한 범투본》 같은 거라도 결성해 반(反)봉쇄 투쟁을 ‘들불처럼’ 벌여도 모자랄 이 살인적 시국에 모두 ‘딴청’을 부리고 있다. 왜 그럴까? 그들은 이 상황을 무엇이라고 진단하고 있는 걸까? 그들의 ‘정체’는 정확히 무엇인가?

 

뭐 대충 이런 취지의 질문을 참깨에게 던졌다.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참고로 참깨는 우리 동네에 산다. 그는 정말로 여러 가지 놀라운 재능을 가졌으며 혼자서 자유롭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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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국가가 통째로 글로벌리즘 세력에게 장악된 이 나라에서 무슨 놈의 시민단체 대중운동 나부랭이들이 중뿔나게 반글로벌리즘 저항 투쟁을 할 꺼라고 생각하냐? ‘순치(馴致)된’ 저항운동, ‘길들여진’ 저항운동이라고 들어는 봤나? 지배하는 놈들이 그 동네가 급진화, 혁명화되게끔 가만히 놔두겠냐? 진즉에 ‘연장질’ 해버렸지! 글로벌 의제 관철시키는 데 방해되는 시민들 조지라고 만들어진 게 시민단체야! 90년대 초 구소련 붕괴되고 나서 이 나라 사회운동도 세계화 물살을 타고 모두 ‘신사회운동’으로 재편된 거 모르나? 그게 언제 때 얘긴데 철 지난 얘길 지금 하고 있어, 이 사람아! 기후 온난화, 페미니즘, LGBTq 성소수자, 낙태, 병역거부… 뭐 좋은 아이템 많잖아…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손가락 까딱하면 개떼처럼 달려들어 “독재정권”(주로 반미정권) 물어뜯는 동원세력이 바로 오늘날의 NGO 시민단체야! 색깔혁명의 용병들이라고나 할까… 정당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그거, 상식 아닌가?… 아니, 사회학 공부했다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모르나?”

 

“아니, 모르는 건 아니고… 그래도 너무 심한 거 같아서.”

 

“군부독재 치하에서 너나 나나 ‘민주주의’ 하겠다고 ‘가열차게’ 투쟁해서 맞아들일 ‘민주화 세상’이란 게 고작 이런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안 그래? 글로벌 제약회사의 백신 임상 실험장이 되겠다며 자발적으로 투신하는 이 몬도가네 월드, 죽이지 않냐?… 아줌마, 여기 노가리 한 접시 더 주세요~~~ 오늘은 내가 살테니 걱정하지 말라구ㅋㅋ 너 돈 없는 거 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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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80년대 후반 솔직히 “민주주의”가 뭔지 몰랐던 것 같다. 남들이 모두 떠드니까 그냥 좋은 건 줄만 알았다. 우린 그만큼 ‘얼빵’했던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게 듣기만 좋지 실상은 [민주주의 VS. 독재]라는 ‘선 아니면 악’이라는 이원적 대립의 인식구조를 대중에게 이식해 교활한 리버럴 세계의 ‘금권과두제’를 지탱시켜 주는 ‘유일사상’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미국 미디어에서 쉼 없이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미사여구가 나올 때부터 알아봐야 했다. 글로벌 미디어 공장에서 조작-가공된 뉴스를 체계적으로 살포하는 이들이 대중을 긍휼히 여겨 민본(民本)의 세상을 꿈꾸며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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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늘 지배계급의 사상이라고 M씨가 말했잖냐. 지금 시대의 지배적 사상이 뭔지 알아? 그건 바로 ‘소로시언 코스모폴리타니즘(Sorocian Cosmopolitanism)’이야! ‘열린 사회’를 만들려고 세계 곳곳에서 색깔난동을 진두 지휘하시는 ‘박애주의자’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님의 사상이 바로 지배 사상이라구. 80년대 후반에 이 나라에 등장했던 ‘변혁이론’은 그나마 혁명성이 있었지. 프롤레타리트아 독재론을 폐기하고 의회주의 노선을 채택한 서구 신좌파의 맑시즘이 아닌 구좌파의 맑스-레닌주의 이론이 도입되었던 건 너도 잘 알잖아? 물론 주체사상파도 있었지만. 아무튼 그땐 그랬지. 근데 91년 구소련이 날벼락처럼 폭삭 무너져 내리고 동유럽에선 대중이 앞장서서 공산주의 정권을 타도해 버리는 모습을 접하니까, 특히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가 대박이었지… ‘뭐야 이게 아닌가벼?’하고 비명을 지르며 모두 어디론가 도망갔잖아. 멘붕이었지… 한 잔 하자, 꾸틴아! 오랜만에 수다 엔진 터니까 목에서 자꾸 윤활유를 달라고 아우성이네 ㅋㅋ”

 

“그래서? 구소련 망하고 나서 어떻게 됐다고?”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사상도 조직도 뭣도 모두 세계화의 수레바퀴에 깔려 즉사한거지. 그 담부터는 누구도 ‘거시 담론’이나 ‘변혁론’ 같은 거 말 안하고 아닥하면서 소수는 생활정치니 뭐니 하면서 부문운동으로 기어들어갔고 대부분은 청산하고 정체성 세탁하고 살았잖아. 물론 너나 나나 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처지라 그런 거 생각할 시간도 능력도 없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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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말하는 ‘소로시언 코스모폴리타니즘(Sorocian Cosmopolitanism: 이하‘소코이즘’)’이라는 게 결국은 리버럴리즘과 혁명성이 거세된 신좌파가 수렴되면서 빚어진 뭐 그런 사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냐?”

 

“뭐 대충은 맞는 거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네. 왜냐하면 소코이즘은 글로벌리스트 과두 지배 통치에 적합한 코스모폴리탄적 신질서를 구축한다는 ‘지정학적 어젠다’를 중심에 놓기 때문에 기존 리버럴리즘과 맑시즘과는 다른 면이 많지. 양자는 기본적으로 지정학이라는 게 없잖아. 그런데 소코이즘은 국민국가 해체와 세계 단일 과두권력 수립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분명히 하거든. 뭐랄까… “인권 제국주의”라고나 할까!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권과 민주주의 프레임을 이용해 반(反)세계화 정부 혹은 비자유주의적(illiberal) 정부를 ‘색깔 혁명’으로 도륙 내는 스킬(skill)을 쓰거든. 그건 너도 잘 알잖아. 앰너스티(Amnesty International)니 휴먼 롸잇 와치(Human Rights Watch)니 뭐니 하는 글로벌 NGO 조직들을 굴려 가면서 공사 치잖아. 옛날 같으면 CIA가 해야 할 일을 소로스님이 총대 메고 야전사령관 되시어 위탁•집행하는 뭐 그런 모양새지. 아 그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의 민영화’라는 말이 좋겠다. 우리 시대의 핵심적 특징이 민영화니까. 그러니까 소로스님의 소코이즘은 국가를 민영화하는 것으로는 성이 안 차 이젠 아예 세계 전체를 몽땅 민영화하겠다는 팽창적 사상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네. 그래 이렇게 너랑 대화하니까 혼자서는 나오지 않는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쏙 쏙 튀어나오네, 땡큐야! 그런 의미에서 한잔 쭉 들이키자구, 맥주 싱거우면 쏘맥으로 해, 내가 하나 말아줄까, 오빠? 오케이! 근데 여자가 아니어서 미안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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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여자는 무슨… 이번 생은 글렀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 ㅋㅋ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아미타불!! 아 참 니가 저번에 준 책 있잖아. 『이번 청춘은 망했다』… 야 그거 진짜 재미있더라. 앞 부분 조금 읽어 봤는데… 거의 <내가 겪은 한국 현대사>라는 부제를 달아야 할 정도로 역사적 맥락이 팍 팍 가미되어 있던데. 역사와 개인의 2중주… 뭐 그런 분위기였어. 내가 원래 소설 안 읽잖아, 근데 이 소설은 뭔가 쫙쫙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드라구… 다 읽고 독후감 하나 써야 할 정도야. 그래서 나도 이 소설가처럼 뭔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인간미가 물씬 담긴 푸근한 글을 써야겠다는 각성이 들드라구. 맨날 비장한 웅변조로 글을 쓰니까 너무 피곤하드라구! 가뜩이나 건강도 별로여서 피곤한데 글까지 피곤하니 인생 자체가 피곤해지드라구. 계속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다! 뭔가 변화를 줘야 할 시기가 온 거 같애!”

 

“그래 너무 분석적 글만 읽고 그런 생각만 ‘줄창’ 하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법이지. 하긴 요즘은 만남 자체를 금지하고 있으니 집에서 나홀로 모두들 몸과 마음이 ‘자동빵’으로 피폐해지고 있지만 말이야 ㅠㅠ ㅡ 아무튼 니가 처음에 던진 화두는 대충 대답이 된 거지? 그러니까 내 결론은 우리뿐 아니라 서구 국가들에서 시민운동과 대중운동 그리고 정당 활동은 기본적으로 소로시언 코스모폴리타니즘의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거야. 괜히 리버럴리즘 월드가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코로나 봉쇄에 대해서도 그들은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거라고 보면 맞을 거 같다! 걔들한텐 아무 희망도 없어. 신경 꺼라!  ‘침묵의 카르텔’이 상층부에만 있는 게 아냐! 사회운동판에도 있다구. 자금 출처가 어디며 누가 투쟁 이슈를 통제하는지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방 알 수 있어. 자, 그럼 이제 정리된 거지? 야, 이런 칙칙한 얘기 말고 딴 얘기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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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와 함께 치맥집에서 두어 시간 대화를 더 나눈 뒤 우리는 헤어졌다. 어두컴컴한 데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거리에는 송이 송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기분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광경과 서정을 압도할 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테러적’이라는 생각에 우울감이 엄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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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리버럴리즘 세계 – 실제로는 딥스테이트의 지시로 은밀히 운영되는 ‘철권 과두제’인 – 는 항구적으로 ‘테러국가(terror state)’ 상태가 지속된다. 지금 진행되는 코로나 방역테러가 극명한 실례다.

 

급속하게 파괴되는 경제와 대다수 국민의 막막한 생계에 대한 외면, 백신 독극물의 강제 투여, 친글로벌리즘 일색의 일란성 정당들의 이전투구 뉴스만을 양산하는 다당제 엽기 “민주주의”, 부정선거도 마다하지 않는 대담함, 24시간 거짓말만 늘어 놓는 미디어, 외국군대의 주둔, 부채에 짓눌린 국가와 기업과 개인, 국내외 공룡 주주들의 국부 독식, 꽃 직업을 가진 극소수의 엘리트와 변변한 직업 없이 평생 이러저리 떠도는 대다수의 유랑 프롤레타리아트(프레카리아트precariat)의 고달픈 삶, 개선의 여지 없는 대중의 만성적 빈곤, 사방에 널린 유전자 조작 식품, 폭등 일로의 부동산, 빈부격차를 감안하지 않는 ‘평등한’ 세금, 저능아 양산이 목적인 것 같은 덤앤더머 문화, 사회조직 구석구석에 또아리 틀고 있는 다종다양한 이익 마피아 집단들…. 그 무엇 하나 테러 아닌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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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디어에서는 속이고 속이고 또 속인다. 그리고 “각자 알아서 살든지 죽든지 맘대로 하세요, 고객님!”…. 하며 자유 테러국가의 각자도생 표어가 부드럽게 넘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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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계와 안전과 건강을 어머니처럼 돌봐 주는 군주제 국가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세상에는 과두제와 군주제라는 2개의 정치체제만 있다고 E. 마이클 죤스 박사가 말했다. 과두제의 정치원리가 민주주의라고 말이다. 아주 악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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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근대적’ 정치제도이고 군주제는 전근대 때나 가능했던 구닥다리 제도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조까라 마이싱입니다!”

 

민주주의란 과두 통치를 위한 시스템 조작의 중앙관제탑이 표면에 있지 않고 비가시적으로 은밀한 지하세계에 있으며, 그들의 의제(어젠다)는 지하와 지상을 이어주는 촘촘한 네트워크를 통해서 달성된다. 간단히 말해 ‘공작정치’에 기반한 조폭 과두제다. 그러나 대중을 상대로 한 정치영역에서는 민의를 대변하는 시늉을 낸다.

 

① 삼권 분립

이것의 진짜 목적은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니 뭐니 하는 거짓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단일성과 응집성을 해체하는 것이다. “독재자(strongman)”가 들어서면 지하에서 통제신호를 보내는 과두 지배가 활성화될 수 없다. 독재자가 “규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권력을 통해 제도정치 무대에 독재자가 기어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며 설령 들어선다 할지라도 정책을 펼치지 못하게끔 옥죄야 한다. 그런 효용으로 써먹기에 이 삼권분립은 아주 딱이다. 권력을 3개로 찢는다는 이 야만적 개념은 기독교의 성부-성자-성녀 삼위일체론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중세 신학의 연장에 불과하다. 뭐가 근대적이라는 건가? 권력은 본질적으로 하나다.

 

② 다당제

과두 대리 정당 알박기 수단으로 활용된다. 혹시라도 집권정당이 비자유주의적(반글로벌리즘적) 정책을 펼치려 할 때 외부 금권세력이 야당이라는 개구멍으로 침투해 들어가 이를 파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③ 시민사회의 공론장

미디어 통치의 기반이다. 미디어 소유자들은 죄다 과두들이다. 그들이 무슨 신화를 만들고 어떤 서사를 읊조릴지는 안 들어봐도 뻔하다. 시민사회의 공론장은 공룡 미디어들이 싹쓸이 해서 단 하나의 생각만이 동어반복으로 울려 퍼지게 된다.

 

④ 1인1표 선거

돈 없으면 제도정치의 장에 진입할 수가 없다.(진입장벽) 그리고 지배 미디어의 그릇된 정보와 프로파간다에 쩔어 치루어지는 선거가 그게 무슨 선거인가, 미디어 생체실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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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백신 강제 빌게이츠-소로스 글로벌 정치체제는 주지하다시피 ‘극단적 과두제’다. 동시에 이 체제는 금권 과두들이 어둠 속에서 인간으로서는 차마 하지 말아야 할 벼라별 해괴하고 끔찍한 공작을 일삼으며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 ‘왕조(dynasty)’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금권 왕조’ 말이다. 착각하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지금 연대기적으로 보면 ‘왕조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도 가장 질 나쁜 ‘어둠의 왕조’ 속에서 무지하게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근대/전근대의 이원적 대립은 이처럼 체제의 시대 구분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과거 군주제 왕정이 금권세력에게 ‘혁명을 당해’ 붕괴되고 신흥 금권 왕조가 들어선 것이 정확한 역사 인식이다. 중화제국은 원-명-청-CCP(Chinese Communist Party, 중국 공산당)로 이어진다. 그러나 서구 리버럴 제국은 뱅커 세력이 지난 몇 백 년에 걸쳐 ‘국가’를 해체하고 ‘제국(empire)’을 차례로 무너뜨려 가면서 점진적으로 세운 ‘금권 왕조’다. 트로츠키적 ‘영구혁명’으로 이룩된 왕조다. 대영제국-아메리카제국에 이어 이제 바야흐로 ‘코로나 제국’으로 직행하게 될 ‘왕조적 연속성’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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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리즘 정치시스템이 근대적이다? 근대적은 무슨 놈의 근대적… 가장 악랄한 형태의 전근대적 정치체제가 딥스테이트 머니킹들에 의해 운영되는 엽기 리버럴리즘 과두제 ‘왕조’인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견제 받지 않는 패륜•패도의 엽기 왕조다. 전근대 왕정이나 군주정은 백성을 보살핀다는 국가운영의 기본 원칙이 있었고 적어도 그러한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엽기 과두왕조는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오직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전방위적 통제와 지배’[1]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지금처럼 마스크를 씌우고 유전자 백신을 강제 접종시키며 영토를 피로 물들이며 사방을 ‘킬링 필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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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는 간단하다! 돈과 지배력을 잃지 않겠다는 집념이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을 피가 흐르고 감정이 넘실대는 고귀한 생명체로 여겨선 안 된다. 인간은 단지 ‘통제의 대상’이며 ‘저항균의 보유자’일 뿐이다. 모든 이들의 행동과 생각을 통제하고 지배하겠다는 정신병적 강박… 그것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가 글로벌 과두들을 ‘싸이코패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눈이 돌아가게 많은 돈을 소유하고 있고 그걸 움켜쥐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슈퍼리치들은 기꺼이 악마도 될 수 있고 미칠 수도 있다. 천문학적 돈은 사람의 영혼을 간단히 파괴하고 악마로 변환시킨다. EPUB 파일이 PDF 파일로 변환되듯이 말이다. – [완정]

후주

[1] full-spectrum control and domi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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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