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택의 음악산책

[음악산책]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I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I

 

정진택/큐레이터

 

지난 2019년 10월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시위가 일었다. 600만 시민 오분의 일인 12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해 19명이 죽었다. 지하철 요금 30페소(우리 돈 50원) 인상으로 시작됐다. 시위 뒤에는 피노체트 군부독재가 종식된 1989년 민주화 이후 30년이 흘러서도 종식되지 않은 부패와 빈부 격차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30페소가 아니라 30년이 문제(NO SON 30 PESOS, SON 30 ANOS)”였다. 산티아고 거리는 경찰이 쏘는 물대포에 젖었다.

1973년 9월 11일의 산티아고도 비에 젖었다. 기상뉴스에 같은 소리가 반복되어 흘러나왔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피노체트가 이끄는 쿠데타군이 대통령궁을 공격해온다는 것을 알리는 암호다. 시민들은 자기 나라 군대가 공군기를 동원해서 대통령궁을 폭격하는 모습을 숨죽인 채 바라보아야만 했다.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장면도 보았다. 세계 최초로 선거 때문에 세워진 사회주의 실험은 CIA에 사주받은 군부에 의해 이렇게 끝난다.

남반구 겨울이 끝나가는 9월 찬비에 꽃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쿠데타군에 저항하다 카스트로에게서 선물 받은 총으로 자결한 아옌데 대통령, 병 깊은 몸으로 쿠데타가 임박하자 라디오 방송에 나가 노동자, 예술가, 시민의 대동단결을 외친 칠레가 자랑하는 노벨상 시인 네루다, 그리고 독재와 착취에 시달리고 있던 라틴 아메리카에 한 줄기 희망의 노래가 되었던 민중가요 누에바 칸시온의 중심에 선 빅토르 하라(Victor Jara).

네루다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며칠을 견디지 못한 채 지병과 분노 속에서 죽어갔다. 빅토르 하라는 수년 전 제1회 칠레 누에바 칸시온 페스티벌 대상을 받았던 칠레 스타디엄으로 끌려간 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뛰어난 연극인이기도 했던 하라는 안데스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민속 음악에 심취했다. 그는 ‘Gracias a la Vida(생에 감사해)’를 만든 비올레타 파라의 영향을 깊게 받으며 누에바 칸시온의 정점에 섰다. 누에바 칸시온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꼽히는 ‘Te Recuerdo Amanda(너를 기억해 아만다)’에서 그는 민중의 삶과 현실을 노래했다. 아만다는 그에게 기타와 민요를 가르쳐 준 어머니의 이름이기도 하다.

 

 

1971년 아옌데가 집권하고 있던 칠레를 방문한 그리스의 반체제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네루다의 시를 음악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군사정권하에 신음하는 자신의 조국을 생각하며.
그는 네루다의 시 ‘Canto General(모두의 노래)’로 만든 칸타타를 들고 1973년 라틴 아메리카 순회공연에 나섰다. 그러나 급박한 정치 상황으로 칠레 공연은 무산되고 곧이어 칠레의 쿠데타와 아옌데, 네루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1973년 칠레의 처절한 기억은 2년 후 프랑스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Il Pleut Sur Santiago).” 남미 음악을 대표하는 피아졸라는 자신이 만든 영화음악을 반도네온으로 직접 연주했다.

 

대통령궁에서 피노체트의 쿠데타군에 끝까지 저항하는 아옌데 대통령

 

아옌데, 네루다, 하라. 밑의 날짜는 이들이 사망한 날짜

 

산티아고 시민이 들고있는 빅토르 하라의 사진

 

2013년 산티아고의 ‘빅토르 하라를 위한 천 개의 기타 행진’

 

필자 정진택:  학예사(큐레이터)로 고미술 전시분야 전공이다. 우리음악 탈춤 영화시나리오 등에 조예가 깊으며 우리음악과 세계음악 특히 제3세계 비주류음악에 대해서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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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Maintenant ou jamais (feat. Dry) TAL 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