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외부 칼럼

[외고] 미국의 관세 보복과 터키의 기회

이미지 © 김대규 / 관세 약탈로 악명 높았던 (라인란트) 팔츠 백작의 관제탑,

액운을 부르는 요괴가 사는 로렐라이 언덕 부근에 있다. (2017.07)

 

 

김대규/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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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터키 해변으로 놀러 간 친구로부터 엽서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엽서에 붙인 우표를 보니 가격이 무려 5만 리라였다. 최소액 동전이 2만5천 리라였다. 당시 커피 한 잔 가격이 백만 리라를 웃돈다고 했다. 그만큼 1990년대 터키 리라의 가치가 형편없었다. 달리 말하면 터키의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다는 말이 된다. 못 사는 이들에게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데 친미 군부의 방해를 뚫고 새롭게 정권을 잡은 에르도안 총리는 2005년 과감하게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에르도안 총리는 백만 리라에서 0을 무려 여섯 개나 지워버렸다. 놀라운 과단성이었다. 터키 백만 리라=1리라가 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 환율이 1달러에 1천 단위 이상 하는 나라는 졸지에 한국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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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터키 리라가 9%가량 급락했다. 연합뉴스는 “‘터키 위기’ 공포 아시아 금융시장 강타”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태반의 매체들이 연합 뉴스 기사를 제목만 달리 뽑아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 환율 급락에 대한 매체의 과장이 심하다. 커피 한 잔에 백만 리라 하던 시절을 아는 사람은 코웃음 칠 일이다. 연합뉴스의 보도는 터키 에르도안 정권의 몰락을 바라는 서방 매체의 태도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터키 통화는 1970년 달러와 리라의 일대일 교환이라는 고정 환율제를 취한 뒤 화폐 가치가 지속해서 떨어져 왔었다. 불과 화폐 개혁 전까지 매해 두 자리 숫자의 인플레이션을 겪어 왔던 나라였다. 그런데 에르도안 총리가 2005년 화폐개혁으로 물가인상률의 고공행진에 제동을 건 것이다. 연간 인상률도 한 자리 숫자로 낮추었다. 나는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서민에게 해로운 물가 폭등을 잡은 과단성과 추진력 때문에 터키 대중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짐작하고 있다. 그의 친서민 화폐개혁은 터키에서 에르도안 정부 전복을 노리던 훗날의 친미 군부 쿠데타가 실패한 정치, 경제적인 배경이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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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관세 전쟁은 터키만 향한 것이 아니다. 중국에 집중하고 있지만 싸움의 대상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중국, EU, 러시아, 이란, 조선(북한), 캐나다와 멕시코 등 동맹과 비동맹을 가리지 않고 총을 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에 갖은 아부와 충성심을 보여주면서 철강 관세를 계속 면제받았지만 수출 물량이 쿼터제로 묶여서 강관 물량이 70%로 쪼그라들었다. 대관절 아부와 충성으로 무슨 이득을 보았는지 의문이 든다.

터키의 철강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부과 조치에 대한 리라 환율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터키의 대외 부채가 많기 때문이다. 즉 부도 가능성이 커지는 것에 대비해 자본 유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키를 채무국으로 만든 주요 동인은 에르도안 집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친미 사대 정권들의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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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터키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달러 체제에 굴복하고 예전처럼 IMF 구제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방법이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달러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대안을 찾아 저항하는 것이다. 보도를 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는 후자를 택한 것 같다. 그는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미국이 목사 한 명 때문에 지정학적 의의가 큰 NATO 동맹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쿠웨이트통신사 KUNA는 터키가 중국과 러시아 및 이란과 통화 직거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미 달러화를 중간통화로 사용해 왔던 거래 방식을 직거래 방식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이러면 달러화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위안화 위상 강화를 노리는 중국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중국 매일경제신문은 터키가 달러나 유로화 표시로 된 채권 발행이 어려워지면 위안화 표시 채권발행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터키는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이란산 원유 수입에 관심을 보인다. 미국의 2단계 제재에 들어가면 이란산 원유를 국제 시세보다 싸게 수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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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미국의 관세 보복으로 터키는 잠시를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터키는 미국 정부가 국내 정쟁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러시아 및 이란과 함께 시리아의 전후 처리 문제를 대략 매듭지어 놓았다. 지역 패자의 모습이다. 현재 터키와 러시아, 이란은 유엔과 시리아 개헌 문제를 놓고 협의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이들 세 나라는 시리아의 초기 복구비용에 자금을 댄 후 군사기지 유지, 교역로와 중동과 유럽을 잇는 송유관 노선 확보 등의 이권을 챙겨 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달러의 근육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신 패자로서의 전략적 기회를 지속해서 잃고 있다 미국 제일주의는 결국 국내 유권자를 향한 슬로건이기 때문이다. [완정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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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