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 김대규
고 김종철 선생에 대한 단상
김대규/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김종철 선생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녹색평론을 구독했기에 감회가 없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나는 성남 용인지역 녹색평론 독자 모임을 만들고 선생을 초대하여 독자 모임 1주년 기념 강연도 주최한 일이 있다. 또한 선생의 권유에 따라 독자 모임을 기반으로 녹색당 창당에도 관여했다. 사진은 2012년 녹색당 경기도당 재창당 때의 모습이다.
하지만 녹색당 일에 관여할수록 이북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들이 당내에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유럽의 녹색정치나 좌파시민운동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환상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컨대, 2015년 김 선생은 발행인의 글에서 “라틴아메리카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세계에서 희망이 있다면 거기”라면서,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을 거듭 추켜세웠다 <발행인의 글, 녹색평론 3-4, 2015>.
그러나 우루과이는 남미에서도 대표적인 친미국가였다. 호세 무히카가 왕년에 총을 든 좌파였는지 몰라도, 전향하여 제도권에 들어가서 투신한 정당 ‘확대 전선'(frente amplio)은 미국에 우호적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금융자본을 환영했다.
호시 무히카 씨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도 정시 퇴근…. 마당일을 즐기면서 마리화나도 즐기는 미국과 유럽 중산층 백인이 선호하는 이미지를 창출했지만, 실제로는 바지사장에 가까워 보였다. 3선 연임금지조항을 우회하기 위해 푸틴 대신 한차례 대통령을 맡았던 메드베데프 총리처럼, 무히카는 전임이자 후임 대통령인 ‘타바레 바스케스’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마리화나나 낙태 합법화 등 무히카가 선호하는 몇몇 아젠다를 빼면 통치 전반에서 바스케스가 실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였다.
호세 무히카 대통령이 전임 ‘타바레 바스케스 대통령(후임자이기도 하다)’ 밑에서 농축수산 장관직을 역임할 때였다. 바스케스 정권하에서 아르헨티나 접경 라플라 강 상류에 대형 펄프 공장이 건립됐다.
이에 아르헨티나 환경운동가들이 격렬한 반대운동을 펼치자, 바스케스 정권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하여 이들을 쫒아냈다. 분노한 아르헨티나 정부가 전쟁을 불사하려 하자 바스케스 대통령과 호세 무히카 장관은 어떤 태도를 보였던가? 미국에 군사개입을 요청했다.
반환경 개발주의 발자취가 뚜렷한 호세 무히카가 어떻게 라틴아메리카와 세계 생태주의 운동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순응하며 마리화나 합법화를 밀어붙이는 건전 진보 호세 무히카에 열광한 것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리무진 리버랄들이 선호하는 매체들이었다. 김종철 선생이 그린 호세 무히카의 이미지는 영어권 매체들이 전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선생과 녹색평론에 가졌던 호감과 기대가 깨지는 지점이었다.
그런데도 김종철 선생과 녹색평론이 다른 나라의 리버럴 좌파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준 것은 사실이다. 또한 거기에 실린 시와 우리나라 필진이 쓰는 농사와 생명이야기는 아직도 내 시선을 끈다. 그러니 선생의 부고를 듣고 애잔한 마음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삼가 애도를 표한다.
이미지 © 김대규 = 2012, 녹색당 경기도당 재창당식 때 고 김종철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