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동아시아 정치 · 외부 칼럼

[외고] 모랄레스와 노무현의 이중성

모랄레스와 노무현의 이중성

김대규/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1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볼리비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미국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이다.  주인공 부치와 선댄스가 애인과 함께 탈출한 곳이 볼리비아였다. 철로를 타고 전진하는 20세기 철도 자본 힘에 밀려난 구식 은행 강도가 피신한 곳, 볼리비아에서는 미국 퇴물 강도가 성능 좋은 미제 권총으로 명사수처럼 잘난 척할 수 있었다.

 

2
부치와 선댄스가 사라졌지만 미국 자본은 볼리비아에 대한 침략을 계속했다. 광산과 천연가스에 이어 상수도마저 독점했다. 미국 자본에 예속화된 볼리비아 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상수도 민영화를 약속했다. 1999년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상수도시스템이 미국 벡텔 건설에 매각됐다. 벡텔사는 인수 직후 물값을 세 배로 올린다. 이때 코카 재배업자였던 원주민 모랄레스는 코차밤바의 물 전쟁 선봉에 나서며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원주민이 주축을 이룬 저항투쟁에 시달린 벡텔은 노다지 상수도 사업에서 손을 털고 말았다. 모랄레스는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친 대통령 탄핵과 시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국을 주도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미국은 공개적으로 자본 철수를 경고하며 모랄레스 반대를 표명했다. 그런데도 모랄렐스는 마침내 2005년에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야당연합 후보로 첫 원주민 대통령에 당선된다.

 

3
모랄레스 정부는 집권 이후 천연가스 사업을 국유화하여 재정수입을 증대시켰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볼리비아 정부 재정이 흑자로 돌아선다. 도로와 상수도망을 확대하여 건설경기를 촉진하고 농업 보조금을 지급하여 물가를 억제했다. 천연자원 가격 상승과 건설경기 호황으로 1인당 GDP가 2000년대 중반까지 1,000달러 수준에서 2014년에는 3,000달러대로 상승했다. 2015년 이후로 남미국가들이 성장 둔화에 빠졌음에도 볼리비아는 4~5%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4
모랄레스는 천연가스를 국유화했으나, 볼리비아의 독과점적 시장구조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민간 기업이 소유한 광산과 독점기업은 그대로 두었다. 그의 사회주의 혁신은 거기까지였다. 모랄레스는 다국적 자본들과 타협했으며, 오바마와의 정상회담을 갈망했다. 동시에 집권당과 정부의 관료화와 부패도 심화했다. 하지만 천연자원에 의존하던 볼리비아 경제성장 추세는 에너지 시장의 침체와 함께 손쉽게 꺾여 버렸다. 외환이 고갈되고 부채가 확대되면서 재정 긴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랄레스에 대한 지지층의 실망과 불만은 커졌다. 이를 숙주로 삼아 친미사대 극우 개신교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급부상했다. 친미 복음주의 한국계 목사가 대선 득표율 3위를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5
“미국에 갔다 와야만 대한민국 대통령 하는 겁니까?”
“미국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저는 정치범수용소에나 있을 겁니다.”

둘 다 노무현의 말이다. 모랄레스도 노무현처럼 지지층에 등을 돌리고 3선의 어느 무렵부터 다국적 자본과 미국에 뻐꾸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경제 위기에 대비해 시장의 독과점과 종속성을 해소하고 내수시장을 튼튼히 만들기보다는 3선의 한계에 이른 자신의 권력을 견고하게 만드는 데 역점을 두었다.혁신의 이름으로 부동산 가격 폭등을 겪으며 노무현에게 표를 던졌던 세력이 갈라지고 등을 돌렸던 것처럼 볼리비아의 노조와 사회운동세력도 모랄레스 지뢰에 걸려 분열하고 약화했다.

 

6
사탄 마귀는 이중성을 드러낼 때 치고 들어온다! 욕망에 사로잡혀 이중성을 드러내는 인간과 집단을 좋아한다. 예수 집단의 갈등과 분열이 현실화되었을 때 사탄 마귀가 치고 들어왔다.그 많던 제자 집단은 단합하기는커녕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것처럼 도망치고 숨기에 바빴다. 현실 권력도 마찬가지다. 혁신의 이름으로 권력을 쟁취한 뒤에 구체제와 타협하며 동거하려 할 때 사탄 마귀는 득의의 미소를 짓는다. 노무현처럼 모랄레스도 스스로 무너져 버렸다.군부나 경찰의 표변이 일차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의 이중성이 제일 큰 문제였다.[완정]

 

_

5 - 포스팅이 마음에 드셨나요? 왼쪽 하트를 눌러 공감해주세요
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