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서양 근대철학의 인식론적 기원을 찾아서 ㅡ 아베로이즘(Averroism) I
/ 12세기 이슬람 사상가 이븐 루시드(Ibn Rushd)는 신앙과 이성을 적대적 관계로 설정했다. 이븐 루시드가 주창한 이 아베로이즘의 재탕에 불과한 스피노자와 서양 근대 철학자들의 ‘표절 철학’은 인간의 다면적 특성 중 하나인 ‘종교적 인간’ 호모 릴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의 얼과 혼과 전통을 송두리째 도려내고 그 대신 ‘쩐의 종교’를 이식하는 과두지배 사회공학에 아주 효과적으로 쓰였다. 이것이 이 글 요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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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생몰년도는 1632-1677이다. 대략 44년 생을 살았다. 그의 철학이 아주 대단한 것이라고 헤겔도 들뢰즈도 찬사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가까이는 우리 주변에서 그를 칭송하는 자들이 들끓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명망 있는 자들이 칭찬한다고 해서 아무런 검토도 없이 ‘좋아요’를 날리며 칭찬하는 그런 ‘덩달이’는 되지 말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한 것인지 알아야 겠고 그게 과연 칭찬을 받을 일인지 아니면 비난을 받을 일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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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가 살았던 당시 17세기 유럽의 시대 상황은 초국적 유대 금권권력이 가톨릭 제국을 붕괴시키기 위해 해적 기지국가 영국을 앞세워 죽기 살기로 전면전을 벌이고 있었던 때였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1세 때부터 ‘금권 파락호들의 소굴’이 되었다. 미래에 벌어질 인류의 모든 재앙과 불행을 배양하고 있었던 ‘악의 실험장’ 같은 곳이었다. 16~17세기 중후반 유럽은 마치 중국의 ‘5호 16국 시대’와 같은 때라고 말할 수 있다. 30년 종교전쟁 기간이 1618~1648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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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초국적 금권세력은 가톨릭 유럽 제국의 통합적 권력 기반을 프로테스탄티즘 ㅡ ‘유대교화된 기독교’로 금권세력의 앞잡이로 실컷 활용되는 ㅡ 이라는 발명품을 고안해 전 유럽에 힘껏 불어넣고 전비를 충당해주어 상호 격렬하게 싸우게끔 부추겼다. 그럼으로써 구 권력을 다 때려 부수고 그 자리에 점진적으로 유대인의 종교인 ‘자본주의 제의종교’(발터 벤야민)와 초국적 금권세력의 헤게모니 안착을 시스템화하려는 웅대한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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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권력이 정복한 국가에서는 기존의 신념체계를 지워버리고 그들의 정체성을 파괴해야 하는 임무가 부여된다. ‘얼’과 ‘혼’을 말살해야 한다(일제의 조선 식민 통치를 생각해 보라). 그러려면 ‘쩐의 종교’로 개종을 시키든지 아니면 아예 신 자체를 거부하는 ‘무신론’을 권장하는 게 바람직하다. 바로 이러한 정신적 식민 사업에서 신을 말살하는 작업에 철학적 초석을 깔아 준 이가 바로 스피노자다. 따라서 그는 누군가 말했듯 “철학의 왕자”가 아니라 유럽인의 얼과 혼을 무참히 파괴한 “정신적 테러 수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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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업적은 ‘유대 혁명정신사’에서 찬란하게 빛난다. 일단 그는 인간으로부터 ‘영성(靈性)’을 말끔히 도려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의 ‘범신론’은 얼마 후 ‘전투적 무신론’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로서 가톨릭 제국의 통합성을 파괴하는 운동의 선두에서 지휘하는 유대 혁명가를 따르는 다국적 “혁명 세력”을 대량으로 양산해냈다. 반면에 그 길을 가지 않은 대부분 사람들은 ‘유대 자본주의 종교’에 신음하는 무력한 난쟁이들로 만들어 놓았다. 자본주의를 순진하게 ‘경제제도’로만 바라보는 것은 ‘인식의 덫’이다. 그걸 ‘종교’로 봐야 총체성이 비로소 확보된다. 우리에게 24시간 간절히 돈을 생각하게 하며 뼈 속까지 우리 정신을 장악하는 것을 ‘종교’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종교라고 불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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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살았던 시대 즉 17세기 중후반 홀란드 암스테르담 유대인 커뮤니티의 분위기는 이랬다. 전통 유대교로부터 이탈하려는 개종 가능성이 큰 유대인들은 많은 경우 다른 종교적 유대인들이 인간과 자연을 성서 법으로 해석하는 관행을 시큰둥하게 여겼다. 이 집단은 “지성의 종교”를 따르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지성의 종교)은 궁극적으로 계몽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스피노자와 같은 유대인들을 통해 자기표현을 했던 “이성(만능)주의” 즉 ‘아베로이즘(Averroism)’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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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로이즘은 이븐 루시드(Ibn Rushd)라는 1126년 안달루시아 코르도바에서 태어난 이슬람 사상가로부터 기원한다. 그의 이름을 라틴화해서 아베로이즈(Averroes)라고 불렀다. 그러니 그가 표방한 사상체계는 아베로이즘(Averroism)이 된다. 그의 철학은 독특한 아리스토텔레스 해석으로부터 이끌어낸 3가지 설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아베로이즘’은 ‘급진적 아르스토텔레스주의’ 또는 ‘이단적 아르스토텔레스주의’라고도 불리는데 13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에서 기독교 교리와 쉽게 화해할 수 없다며 일단의 철학자들이 대학을 중심으로 벌인 사상운동을 지칭하는 말로 19세기와 20세기에 만들어진 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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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로이즘’의 세 가지 중요한 강조점은 (1) 인간의 개인적 ‘지적 영혼’의 불멸성, (2)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삶의 행복을 달성할 가능성, 그리고 (3) 기독교적 종말이 아닌 ‘세계의 영원성’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베로이즘의 철학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지성(one intellect)’이 있고, 행복은 현세의 삶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으며, 세상은 시작이나 끝이 없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이는 서양 근대철학의 무신론적/유물론적 경향과 대단히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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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로이즘의 신봉자들은 ‘이중 진실 이론(theory of double truth)’이라는 것도 주장하는데, 이는 ‘신앙에 의해 도달한 진리’와 ‘이성에 의해 도달한 진리’ 사이에는 ‘양립할 수 없는 충돌’이 존재한다는 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데도 양자는 다 같이 진리다”라는 주장으로 절충을 꾀한다. 물론 나중에 그들의 사상적 후예들이 이 절충을 파기하고 강력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중 진실 이론’은 기본적으로 신앙과 이성을 ‘적대 관계’로 설정한다. 이러한 적대관계의 ‘인위적’ 설정은 우리에게 치료하기 힘든 인식의 장애를 안겨준다. 즉 “신앙의 시대”인 중세에는 이성이 마비되어 과학의 발전 같은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고 “이성의 시대”인 근대에 와서야 비로소 과학(science)이 만개했다는,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허무맹랑한 가짜 스토리(fake story)에서 헤어나오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는 대단히 치명적인 역사 프로파간다다. 승자의 조작이 집중된 곳이 바로 여기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앙과 이성을 하나의 조화로운 합일체로 보는 것과는 반대로, 아베로이즘 신봉자들은 신앙과 이성의 적대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적대 이론’은 유럽 정신사에서 격세유전 적으로 면면히 이어진다. 근대에 들어 철학적으로는 스피노자, 데카르트, 라이프니츠로 정치적으로는 자코뱅이즘과 마르크스주의로 큰 물줄기가 이어진다. 우매한 종교, 스마트한 과학! (이런 논리로 따지자면 지금 이란(IRAN)은 우매한 이슬람으로 사로잡힌 주술국가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어떤 급진 정파는 이란을 타도해야 하고, 러시아도 정교회국가니까 타도해야 한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도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니 거기 관료집단도 타도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DPRK)도 타도의 대상이라고 한다. 펜타곤을 장악한 전쟁광 네오콘을 능가하는 호전성을 보인다. 이래서 신앙과 이성을 적대관계로 놓는 것은 단지 이론적 말장난이 아니라 상상 외로 엄청난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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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카톨릭 신앙은 물론 더 나아가 종교 일반을 적대시하며 대신 새로운 ‘쩐의 종교’를 확립하여 유럽의 전통 정신을 갈아 엎기를 희망하는 초국적 금권 과두세력들에게 아베로이즘은 구체제(앙시앙 레짐)를 타도하고 금권영토를 팽창시키려는 자신들 의도에 너무나 잘 부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력들은 근대의 무신론적 급진주의로부터 자신의 ‘정치적 동맹’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우리는 서구 근대 사상의 시원이 바로 다른 무엇이 아닌 ‘아베로이즘’이란 것을 알아야겠다. 그리고 스피노자를 비롯한 서구 근대 철학자들이 이를 그대로 베껴서 ‘근대적 재포장’을 해서 ‘신상품’인 것처럼 내놓았다는 것도 알아야겠다.
그런데 이러한 재포장 가짜 신상품은 다음과 같은 ‘악의적 리본’을 달고 나타났다. 우리가 향후 치밀하게 규명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종교와 주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서양 중세는 암흑시대에 불과하며 별다른 과학적 발전도 없었으며 인류 문명에 이바지한 게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회의가 들 정도로 무익한 시절이며 극도의 폭력과 질병과 가난에 쩔어 있어 오직 이성 우위의 근대라는 광명의 시간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중세의 악마화’를 추동하는 세력과 그 저의를 깨알처럼 폭로하는 것이 주제가 아니므로 다음 기회에 상세히 논하기로 하고 일단은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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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스피노자가 살았던 암스테르담 유대인 커뮤니티에서는 심각한 종교적 지각변동이 발생하고 있었다. 메시아를 사칭한 희대의 사기꾼 사바타이 제비(Sabbatai Zevi) 때문이었다. 그의 출현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충격과 전율과 폭포수 같은 희망을 안겨주었다. 가히 ‘개벽’이 온 듯했다.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으니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자칭 “유대인의 구세주”이자 카발리스트 랍비인 사바타이 제비(Sabbatai Zevi, 1626-76)를 추종했던 사바티언들은 ㅡ 그들은 구세주가 출현했다며 거의 종교적 광란에 휩싸여 집 팔고 땅 팔고 가진 재산 다 팔고 도래할 휴거를 준비하는 종말론적 분위기에 심취해 있었다 ㅡ 자신들 메시아인 제비가 어느 날 돌연 이슬람으로 개종해버리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제비의 개종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그건 말이야, 우리의 메시아께서 오스만의 술탄 나부랭이에게 굴복해서 개종한 것이 아니야! 이슬람 내부로 깊이 침투해 그분께서 원대한 역사를 이루시고자 함이야! 어찌 뱁새들이 황새의 큰 뜻을 알리오! 그분을 경배하라! 경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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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은 정신이 나간 사바티언들이 만들어 내는 이런 험악한 분위기와 함께 자신들의 메시아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온갖 궤변에도 불구하고 유대 랍비교는 지층이 흔들리는 격변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당시 랍비 유대교는 완전히 두 동강이 나버렸다. ‘종교적 분단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때 스피노자 파(sect)는 종교의 거부 즉 (1)무신론으로 가닥을 잡았고 나머지 신실한 자들은 유대 신비주의 중 하나인 (2)하디시즘(Hadisism)으로 풍덩 하고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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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
ㅡ 아니나 다를까 조사를 해보니 이븐 루쉬드(Ibn Rushd) 즉 아베로이즈(Averroes)는 ‘비밀 유대인(crypto-Jew)’이였다고 한다. 이들의 특징은 타 종교로 가짜 개종을 하고 나서 해당 종교를 유대 카발라적 관점에서 유대화시키고 파괴하기 위해 탈율법과 신성 파괴 그리고 영지주의와 이성주의로 분탕질을 쳐 놓아 대부분 이단으로 단죄되는 말로를 맞이한다. 아베로이즈 또한 이러한 분탕질에 대해 이단 판정을 받고 그의 저서들은 모두 금해졌으며 당시 유대인 밀집도시인 루세나(Lucena)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영문 위키피디아를 비롯해 그 어디에도 그런 중요한 정보가 하나도 적혀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대교의 ‘타 종교 전복 전쟁’ 혹은 ‘문화 전쟁’이 이렇게 수백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진행되어 오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대단한 집념과 끈기가 아닐 수 없다.
이로써 스피노자 등을 비롯해 계몽과 이성 어쩌구 씨부리는 서양 근대철학은 깡그리 유대 카발라( = “내 자본과 주먹과 이성적 잔대가리가 나의 신이다”)의 세속적 변형이라는 것이 또 한번 입증된다. 아래는 논문 출처다.
『Islamic Legal Thought: A Compendium of Muslim Jurists』
Edited by Oussama Arabi, David S. Powers and Susan A. Spectorsky
(Brill. 2013). ISBN 978-90-04-25452-7
pp. 297-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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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view, both al-Marrākushī and al-Maqqarī were concerned with the suspicion that the Banū Rushd were Jews whose conversion to Islam was only superficial. This assumption, which must have been common knowledge already during Ibn Rushd’s lifetime, became explicit when his grandson fell into disgrace with the Almohad prince Abū Yaʿqūb al-Manṣūr. In 591/1195 Averroes was formally accused of heresy; his books were banned and, treated like a crypto-Jew, he was exiled to Lucena, a city near Cordova with a large Jewish population that was renowned for its Rabbinic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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