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 완정 시론

『계몽의 변증법』의 개몽(夢)
/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사바티언-프랭키즘(Sabbatean-Frankism) /

[이미지1]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의 개몽(夢)
/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사바티언-프랭키즘(Sabbatean-Frankism) /

 

2019년 11월 2일 / 신현철 – 국제정치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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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근대 가치체계를 의심에 찬 눈초리로 대하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일찍이 프랑크푸르학파에 여러 유대인 학자 중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서구 근대 가치 중 핵심인 계몽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가 내린 최종 결론은 건강한 탈근대로 가는 길이 아니라 서구 전통 문명과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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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변증법』은 프랑크푸르트학파 다른 학자들 이론과 마찬가지로, 사이비 비판과 비논리적 비약과 무매개적 결론을 적당한 비율로 짬뽕시킨 결과물이다. 사실 그들이 내세우는 갖가지 이론들은 서구 근대 가치라는 ‘야바위 논리’가 인위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살포된 근본 이유 ㅡ 근대 금권권력 머니킹들이 사회를 재조직하기 위해 정치-경제-사회문화-영적 측면에 두루 걸쳐 기획한 정교한 토탈 프로젝트로서 ㅡ 를 오리무중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물타기 이론들’이다. 사실 그들 이론은 억압받는 자들을 해방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이론 사기단이다. 분노 지점을 진짜 적으로 향하지 못하게 차단하고 굴절시켜 그 분노가 외부 적이 아닌 자기 사회를 파괴하도록 만드는 피학성 사회전쟁의 ‘자살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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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들이 공통으로 골몰하는 문제는 서구 전통 가치와 사회조직 그리고 더 나아가 서구 문명 전반을 ‘악’으로 몰아세워 제거하는 것이다. 그들 논리는 겉으로 보기엔 부드럽고 현학적인 말로 전개된다. 하지만 귀결은 자세히 따져보면 서구 전통 가치와 문명에 대해 가히 테러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그들은 억압받는 자들, 소외당하는 자들의 해방을 들먹인다. 그러나 그들의 레토릭 이면에 감추어진 진정한 의도는 전통문화 사회를 ‘혁명적으로’ 파괴해 카오스 상태로 몰아넣고 글로벌리스트 과두 지배 통치에 적합한 코스모폴리탄적 신질서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이미지 2] 『계몽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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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1944)에서 계몽을 ‘비판’했다. 그는 “계몽이란 인간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운명을 탈피하고 주체가 되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린다. 그런 후, “계몽은 이성과 합리성을 통해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고 주체를 중심으로 객체를 동일화한다”면서 이 과정을 통해 ‘자연의 지배’가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동일화’는 계몽이 배격했던 신화에 이미 내재해 있던 것으로, 인간이 자신을 신과 동일화시키면서 탄생한 것이 신화이기 때문에 신화가 바로 계몽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계몽이 자연의 지배를 통해 만들어낸 문명과 사회를 또다시 ‘자기 동일화’해서 ‘제2의 자연’으로 만들고 인간은 계몽을 통해 자신이 주조해낸 사회를 ‘효율적으로’ 지배하려 했으며 ‘효율적 지배’에 장애가 되는 ‘인간의 본성 속에 남겨진 자연성’마저 정복하려고 덤벼들었고 그리하여 ‘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로 이어졌다는 특유의 ‘자기 동일화 지배론’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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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에 의하면 인간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품고 있었던 계몽이 그 원래 목적을 ‘망각’하고 ‘합리적 사회지배’를 위해 오히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모순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렇게 계몽은 ‘비판적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변모하면서 인간은 ‘합리적 사회’라는 총체성 앞에서 ‘자기희생’과 ‘체념’을 내면화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가 인간을 지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계몽 또한 자기 퇴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계몽이 그렇게도 혐오했던 신화로 퇴화하는 역설의 변증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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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는 이렇게 퇴행의 나락에 빠져버린 계몽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미메스(mimesis)적 화해’를 제안한다(미메스는 모사 模寫나 모방을 의미한다). 즉, 계몽이 근본적으로 주체와 타자를 자기 동일화시켜 ‘타자의 지배’를 이루고자 하는 패러다임의 속성을 지닌 탓에, ‘계몽의 타락’은 우발적 현상이 아니라 그것의 내적 논리에 따른 필연적 귀결이가때문에, ‘자기 동일화’라는 타락의 경로로 빠져드는 것을 멈추고 그대신 “타자 속으로 들어가 동화됨으로써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화해” 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말하는 “타자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설명을 회피한 채 아도르노는 이렇게 주체가 타자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ㅡ 영화 《에일리언》의 괴생명체가 사람 몸속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이 연상된다 ㅡ 지배-종속의 관계가 생기지 않고 상호이해의 관점에서 ‘모두에게 두루 통용되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되며, 상실했던 ‘아름다움에 대한 감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심미적 이성’을 통해 인간은 자기희생과 체념에서 벗어나 ‘자율적 주체’로서 우뚝 설 수 있으며, 그간 ‘합리성의 감옥’ 안에서 사유할 수 없었던 것을 동화와 화해를 통해 사유해낼 가능성의 문이 활짝 열린다고 주장한다.

 

[이미지 3] “미메시스(mimesis)적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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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은 결국 이런 거다.

마빡에 ‘계몽’이란 글씨를 금도금으로 새긴 범유럽 금권 세력이 중세를 종교독재에 쩔어 있는 ‘암흑시대’라고 프로파간다치고ㅡ 이는 중세 시대 자체가 그들의 비즈니스에 방해되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실상 중세는 이성과 신앙이 조화롭게 공존했던 시기였다 ㅡ ‘절대 악’으로 흑칠하면서 서구 기독교 왕정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근대 계몽주의 시대를 멋지게 열었으나,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희망 근대’ 같은 것은 오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계몽 사상쟁이들이 약속한 ‘이성에 근간한 멋진 신세계’는 오지 않고 현실에서는 허구한 날 생존의 고통과 노동에 시달리며 마음 둘 곳 없이 떠다니는 부평초 같은 허무감에 젖어 정신적 안식처를 상실하고 영혼의 탈구 상태에 지쳐갔다.

사방 곳곳에서는 아노미와 카오스적 폭력과 강자들의 교묘한 속임수와 범죄만이 범람하고 있되 그 누구도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며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도덕은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 게다가 제국주의 침략과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이 발발하고…. 이처럼 지옥보다 못한 근대의 현실이 19세기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지자 계몽 사상쟁이들은 뭔가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중세를 암흑이라며 온갖 악담을 퍼붓고 시작된 근대가 이모냥이꼴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뭔가 그럴싸한 대안도 내놔야 했다. 그래서 자로 아도르노가 그 작업을 수행했다. 근대 가치의 우월성 선전이 더는 대중에게 먹혀들지 않고 ‘약빨’이 떨어지자, 이를 수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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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아도르노는 모방을 의미하는 ‘미메시스(Mimesis)’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계몽적 이성의 ‘억압적 동일화(Identifizierung)’ 능력에 대한 대안적 개념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일반적으로 ‘모방’이라는 것은 주체의 입장에서 객체를 ‘모사’하는 것이지만, 아도르노가 말하는 ‘동화로서의 미메시스’는 주체가 객체에 ‘순응’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객체와 유사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체와 객체의 친화성을 전제한다. 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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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아도르노의 헛발질이 한 두 곳이 아니라 그를 비판하려면 견적이 크게 나와 전체 공사가 그리 만만치는 않지만 그래도 시작해보자.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계몽이 타락해 벌어진 일인가? 아도르노는 근대의 계몽 프로젝트가 실상 서구 중세 500년 시기를 면면히 이어온 ‘하늘을 섬기는’ 영적 경외의 심성을 인간 본성에서 제거해 ‘세속화와 유물론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유물론적 금권 과두의 패륜적 신흥 종교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계몽의 내적 프로세스인 ‘자기 동일화’ 과정을 거쳐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은 긍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어 문제가 생겼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아도르노는 서구 근대 시기 전반에 걸쳐 진행한 폭력적 부채 기반 자본주의의 금권 수괴가 다름 아닌 ‘계몽주의 세력’이었다는 것을 전혀 밝히고 있지 않다. 그리고 무슨 계몽이란 사상 때문에 ‘지배’가 발생했다는 둥 정신 나간 너스레를 떤다. 해괴한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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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도르노는 계몽이 중세 시대에는 없었고 오직 근대에 이르러 발견된 독점물인 것처럼 이해하는 방식부터 순전히 엉터리다. 그럼 서양의 중세 사람들은 모두 무지몽매하고 신화와 주술에 쩔어 살았던 야만인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사실 신화로 따지자면 중세 시대보다 근대와 지금이 더 신화가 판치는 시대가 될 것이다. 1인 1표 민주주의 신화, 세계화 신화, 미국에 대한 환상 신화, FTA 신화, OECD 가입 신화, 박정희 경제 발전 신화, MB 성공 신화, 건강 신화, 로또 신화, 성형수술 신화, GMO 신화….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가히 신화로 시작해서 신화로 끝나는 ‘포스트 주술시대’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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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도르노는 ‘신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신화와 상징들이 인간 사유에 존재하는 ‘보편 문법’ 중 하나라는 질베르 뒤랑(Gilbert Durand)의 연구 성과로 주2) 계몽은 이성이고 선이요 신화는 무지몽매고 악이라고 설정하는 얼토당토 않은 이원적 대립구도 자체가 대단한 엉터리임을 직감할 수 있다(이는 이성과 종교를 적대적 관계로 설정하는 엉터리 설정과 유사하다). 따라서 그의 이론이 전제하는 인간의식과 관련한 인간학이 얼마나 부실하기 짝이 없는지도 입증해준다. 따라서 근대 가치의 선두에 서서 폭군 행세를 해왔던 계몽주의는 전반적으로 대단히 엉터리스러운 객쩍은 소리의 집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미지 4] 신화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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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존재로서 인간이 자신을 초극하려는 노력을 신화와 주술로 치부하며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살 것을 권장하는 것은 인간이 영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차단해 물질 굴레에서 맴도는 유물 좀비를 양산하겠다는 ‘인간개조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 권위를 부정하는 것을 동반하게 된다.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피라미드 최상층부 금권 세력이 지배하기 쉬운 ‘중심 없는 모래알 평등사회’ – 마치 목이 잘려나간 잔여 신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 를 만들어 금권종교적 지배 질서에 저항할 수 있는 혼과 영의 힘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저의가 담겨 있다. 이처럼 ‘유기적 평등’이 아닌 ‘비유기적 전체주의적 평등’은 지배를 위한 분할 통치에 적합한 시스템 이론의 요소에 불과하다. 하나의 지도 구심을 향해 강력하게 응집되어 있지 않고, 원심적으로 분리되어 서로가 제 잘났다고 신경질적으로 재잘거리는 사회만큼 통치에 수월한 사회는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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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크하이머와의 공저이지만 오히려 호르크하이머가 자신의 초기 사상을 포기하고, 혹은 수정하고 아도르노에 접근한 것으로 평가되는 『계몽의 변증법』은 계몽을 현대적 병리 현상의 결정적 계기로 간주하는 데서 더 나아가 계몽 자체가 현대의 병리 현상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여기서 계몽이란 칸트의 정의에 따라 삶의 모든 영역을 합리성, 이성의 지도로 재편함으로써 인간의 자율이라는 이상을 방해하는 모든 내적, 외적 요소들, 예컨대 권위와 전통으로부터의 인간해방을 이루고자 하는 운동을 말한다. 계몽에 대한 칸트의 유명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계몽은 인간 스스로 책임이 있는 미성숙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되는 것이다. 미성숙이란 타자의 지도 없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능력이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미성숙의 원인이 지성의 결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용기가 빠진 데 있다면, 이러한 미성숙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 Sapere aude!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모토이다.”

인간 삶의 영역을 인간 지성이 지배하지 않으면 그것은 미몽이고, 미성숙함이며, 그것은 극복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서설에서 존엄하기에 비판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도, 성스럽기에 비판되어서는 안 된다는 종교도 이성의 법정에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인간의 자율성과 그에 근거한 자유로운 사회를 위한 그의 열정을 보게 한다. 이것은 당연히 이성비판을 견뎌내지 못하는 어떤 권위적 정치조직도 그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정치철학적 함의도 지닌다. 이처럼 근대인들에게 계몽은 인간해방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도르노는 계몽이 근본적으로 지배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자체가 현대의 병리 현상이라는 급진적인 주장을 한다. 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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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5] 카발라와 모더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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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용문에서 우리는 근대 유럽 철학에 깊이 스며든 카발라(Kabbalah)의 악취를 칸트의 계몽으로부터 느낄 수 있다. 주4) 그리고 아도르노는 이 위대한 계몽에 사실은 ‘병리적 결함’이 원초적으로 잠복하여 있음을 발견한 척 너스레를 떨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억압적 자기 동일화’의 ‘그릇된 계몽’의 질주를 멈추고, 주체가 객체에 ‘순응’하고 ‘동화’되어 하나 되는 마치 암수 한 쌍의 아수라 백작 식 융합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계몽 만능주의를 떠벌리며 한 세기를 그럭저럭 버텨왔는데 이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을 만큼 근대 세계가 참상으로 뒤범벅되다 보니 궁색하나마 이런저런 변명거리를 찾다가 급기야 이런 말을 내뱉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오 이럴 수가! 알고 보니 그동안 우리가 신봉해왔던 이성과 계몽이 잘못된 것이었네! 어이쿠, 이거 어쩌나…. 우리가 ‘계몽’을 착각했잖아…!! 아, 미안! 그럼 이제부터는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방향을 잡아 볼게. 그래, 감성팔이 장사를 시작해야겠군! 말을 하나 만들자, ‘심미적 이성’…. 오케이, 그럴싸한데! 개돼지들을 현혹하기에 아주 안성맞춤의 용어야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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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학파 일당은 마르쿠제의 모더니티 비판에서 알 수 있듯이, “이성을 강조하는 서구 문명의 전통 문명 자체가 지배망이다”라며 로고스 파괴에 앞장선다. 서구 근대 가치가 ‘이성의 과잉’으로 야기되었다면서 “서구 문명을 지배해온 이성의 역사에 반대하면서 감성을 부활시키고 이성적인 전통에 근거한 억압적인 윤리 기반을 해체” 시키자고 합창한다.

 

[이미지 6] 프랑크푸르트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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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범유럽 근대 금권 세력의 공식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던 계몽주의가 역사를 지나며 “이성의 법정”에서 비판을 견뎌내지 못하고 파산했다면 우리는 그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있었던 정치경제 세력의 분석을 통해 그들이 계몽주의를 왜 만들어냈으며 그럼으로써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따져 보는 것이 순서다. 그러고 나서 계몽 이데올로그 사기단에 의해 저질러진 이론적 악폐를 수습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건강한 철학이론을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도르노를 비롯한 프랑크푸르트 사기단은 이성 중심의 계몽은 나쁜 것으로 판명되었으니 이제부터는 그런 계몽주의를 양산한 서구 사회를 다 때려 부수고 전복시켜야 한다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또라이도 이런 상또라이들이 없다. 덤앤더머는 명함도 못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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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손에 손 잡고 서구 사회 일체의 권위와 전통을 ‘억압’으로 규정하고 ‘인간 해방’을 외치기 시작한다. 아도르노 이론 또한 겉으로는 현란하게 프롤레타리아트와 혁명 타령을 하지만 실제로 보면 서구에 그나마 남아있는 공동체 도덕규범과 전통 사회 질서를 붕괴시키자는 강한 목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인간해방”을 이리저리 탐구해보면 결국 ‘서구 사회의 응집성 해체’로 요약됨을 눈치챌 수 있다. 그들 말대로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권위를 다 무너뜨리면 단 하나 남는 권위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금권의 권위’다. 이제 금권은 사회 속에서 그 어떤 세력의 반대도 받지 않고,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해방’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인간 해방”은 ‘금권권력을 소유한 인간들의 해방’을 말하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사기단의 해방 ‘설레발’이 가진 진정한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들이 내뱉은 말 속에 담겨있는 사회 내부질서 파괴 전술을 밀도 있게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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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사기단의 사상적 연원을 추적해보면 한결같이 서구 전통 문명과 조직 질서를 더한층 깊이 있게 파괴하고 해체하려 혈안이 되어 있는 사바티언-프랭키즘(Sabbatean-Frankism)의 연장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미지 7] 자칭 메시아 사바타이 제비

 

유대정신(Judaism)의 사탄적 형태인 사바티언-프랭키즘(Sabbatean-Frankism)은 서구 근대 좌파 이념의 패러다임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동시에 코스모폴리탄적인 세계지배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글로벌리스트들의 세계전략의 이념 축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맑스의 공산주의, 프로이드의 섹스 중심의 정신분석학, 버네이스(Bernays)의 기업 좌파주의(Corporate Leftism), 호레이스 칼렌(Horace Kallen)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해체구성주의(Dekonstruktivismus)와 역사 유물론, 급진 페미니즘, 대량 이민을 통한 혼종화 전략, 네오콘이즘, 그리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 이론 등은 모두 ‘능동적 메시아주의’를 골간으로 하는, 기존 전통과 권위의 무조건적 파괴를 지향하는 사바티언-프랭키즘(Sabbatean-Frankism)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1850년부터 1950년 사이에 서구 유대 지성사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5) – [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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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주1)
정대성. 「아도르노의 비판이론에서 ‘미메시스적 화해’와 주체의 자율성」 『연구철학논집』 제34집 2013년 8월, pp. 195-217

 

주2)
김종우. 「신화의 구조분석’에 대한 뒤랑의 비판에 관한 연구」.
『인문논총』 제60집(2008), pp. 3~36

 

주3)
정대성. 「아도르노의 비판이론에서 ‘미메시스적 화해’와 주체의 자율성」 『연구철학논집』 제34집 2013년 8월, pp. 195-217

 

주4)
https://s3.amazonaws.com/media.guidebook.com/upload/Zl1DtVlHlSAAwbtNLMqf4sNtRlvRP2HyUiJCPG35/8e8d534e-aef2-11e5-b7b1-064b726d20b1.pdf
「어떻게 카발라는 근대 유럽 철학의 일부가 되었는가? How Kabbalah became part of Modern European Philosophy: IV. Which Blessing Should be Said on the Reading of Kant?」

 

주5)
https://archive.org/details/SabbateanFrankismAsTheParadigmOfTheModernLeft-TheRebbeBlog
「근대 좌파의 패러다임, 사바티언-프랭키즘 Sabbatean-Frankism As The Paradigm Of The Modern 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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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이미지 1] 아도르노
http://www.fourbythreemagazine.com/issue/adorno-and-the-reproach-that-a-view-is-too-subjective

[이미지 2] 『계몽의 변증법』
https://www.sup.org/books/title/?id=1103

[이미지 3]
https://alparslannas.wordpress.com/2008/11/28/concept-of-enlightenment-theodor-adorno-max-horkheimer/

[이미지 4]
https://www.geopolitica.ru/en/article/three-logoi-introduction-triadic-methodology-noomakhia

[이미지 5] 카발라와 모더니티
https://www.amazon.com/Kabbalah-Modernity-Edited-Pasiand-Stuckrad/dp/9004182845

[이미지 6] 프랑크푸르트 학파
http://braungardt.trialectics.com/philosophy/20th-century/the-frankfurt-school/

[이미지 7] 자칭 유대 메시아 사바타이 제비
https://zaidpub.com/2013/07/03/the-satanic-sabbatean-frankist-cult-that-rules-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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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Andres Calamaro - Cuando No Estas 3:30